추석이면 생각나는 이야기
< 김영숙 사모, 일산 새하늘 교회 >
“나를 부르는 주님의 음성이 있기에 늘 새 힘 얻어”
해마다 추석이 되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습니다.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그날은 오랫동안 떠나 있던 오빠가 집으로 오는 날이었습니다. 당시 8-9살이던 나는 며칠 전부터 오빠가 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나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잘 놀아 주지는 않았지만 당시 대학생이었던 오빠는 나의 우상이었습니다.
오빠가 들려주던 대학교 이야기는 언제나 신나고 재미있어서 상상의 나래를 펴며 듣곤 했습니다. 오빠를 더욱 좋아했던 것은 그 당시 흔하지 않았던 동화책을 늘 빌려다 주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빠가 빌려다 준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읽고 나서 다락방에 올라가 하이디의 흉내를 내면서 하이디의 할아버지를 불러보기도 했습니다.
동네골목에 나가 기다리고 있는 데 멀리서 오빠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다리던 오빠가 왔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반갑게 뛰어가지 못하고 내가 숨을 곳부터 찾는 것이 아닙니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서 쑥스럽기도 하고 부끄러워 숨고만 싶었습니다. 숨을 곳을 찾던 중 급한 나머지 마당에 있는 변소로 들어갔지요.
오빠가 집에 오자 온 가족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하하! 그동안 더 씩씩해졌구나. 서울 생활은 재미있었니?”
“네, 이번 학기에는 장학금을 받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변소 안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오빠 목소리를 듣고 웃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냄새나고 후덥지근한 변소를 어떻게 빠져 나가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나중에는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것이 너무 슬퍼서 소리 없이 울고 있었는데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몰랐습니다.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오빠가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빠는 정말 너무해,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나를 찾지도 않다니.’
집안에서 떠들썩하던 소리들이 차츰 잦아들더니 그때야 누군가가 나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전 까지 있었던 영숙이가 안 보이네요. 얘가 어디 갔지? 오빠를 그렇게 기다리더니.”
비로소 온 가족이 내 이름을 부르며 찾기 시작했습니다.
“영숙아! 영숙아!”
그때까지 변소에서 땀을 흘리며 훌쩍 거리고 있던 나는 이제야 살았다 싶어 마음은 뛰어 나가고 싶었지만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밖으로 나를 찾아 나선 가족들이 집으로 들어오며 한 마디씩 했습니다.
“아직 못 찾았어요? 아니 얘가 어디를 갔기에 안 보이지.”
그러던 중 누군가의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변소에 한번 가 봐요. 혹시…….”
누군가 변소 문을 열려고 하자 나는 그제야 밖으로 튀어 나가 “나 여기 있었단 말이야” 하며 엉엉 울었습니다. 오빠가 미소를 지은 채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나를 번쩍 안아 올리며 말했습니다.
“영숙아! 왜 여기 있었어. 내가 너를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데……”
나는 엉망이 된 내 얼굴을 오빠의 어깨에 묻은 채 환하게 웃었습니다. 동생이 옆에서 놀리건 말건 상관없이 한번 터진 웃음은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흐흐흐, 히히히, 호호호.”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절로 웃음이 납니다. 목회현장에서도 지치고 힘들 때마다 여전히 잊지 않고 나를 부르고 계시는 주님의 음성이 있었기에 새 힘을 얻곤 했습니다.
“얘야 어디 있느냐! 어둡고 쓸쓸한 곳에서 바보처럼 혼자 울지 말고 이리로 나오렴. 그리고 내 어깨에 기대어라. 내가 그 웃음을 되찾게 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