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고백서에서 찾은 시대정신_권형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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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서에서 찾은 시대정신

 

 

< 권형록 목사, 안산푸른교회 >

 

 

“신앙고백서는 현실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

 

 

종종 스스로 이렇게 묻는다. ‘우리에게 내일은 있을까?’ 생뚱맞은 물음이다. 내일이라는 시간은 늘 그렇듯이 오기 때문이다. 반면에 어떤 면에서는 반기독교적이거나 믿음이 없는 물음으로도 여길 수 있다. 시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염두하지 않고 인간적인 표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물음이 종종 일어난다. ‘과연 우리에게 내일이 있을까?’ 다른 말로 우리가 개혁자들에게서 받은 소중한 신앙을 고수하며 교회를 섬길 수 있을까, 치열한 생존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복음을 증거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지식은 빛과 같이 구별하는 힘이 있다. 특히 신앙의 체계에 대한 지식은 본질적이라 더욱 그렇다. 신조에 대한 지식이 깊지 못하고, 중요성도 잘 인식하지 못하면서 교회를 섬길 때에는 교인들에게 내 나름대로 성경을 가르치고 교인들과 관계를 잘하면 막연히 잘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역사 속에 남겨진 귀한 신조들을 소개받고 알아가면서 우리 신앙의 정체성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7년)에 있고 그 이전의 벨직신앙고백,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도르트신경 등과 같은 신조들도 개혁정신을 같이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와같은 역사의 참된 지식은 단순히 구별하는 힘만이 아니라, 신앙 양심의 쉼을 주었다.

 

세상 안에서 힘을 줄 것 같고 세상 안에서 평안을 줄 것과 같은 미혹하는 지식이 아니었다. 진리를 보수하고 증거하기 위하여 정리된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에게서 영혼의 안식을 얻게 되었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 진리를 지키고자 하였던 개혁교회 목회자와 성도의 고백을 담고 있는 교리와 글들에서 동일한 기쁨과 감사와 위로를 얻었다.

 

역사적인 글을 읽는 실력이 부족하지만 개혁교회들이 남긴 교리와 교회역사의 흔적에 관한 번역서만을 보고도 그 글들이 고백하는 진리에 동일한 기쁨과 위로와 안식이 있었고, 그 신앙고백(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헌법에 명시한 우리 교단이 소중했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앙을 고백하는 교단에 어울리지 않는 일들이 들릴 때마다 원론적으로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교단에서 내 자신이 진리 안에 동지적인 평안함을 누릴 수 있을까, 과연 우리에게 내일이 있는가 하는 물음을 종종 하게 된 것이다.

 

예전 어느 목사님이 목사안수식에서 말씀하시기를 “목사는 최선의 성도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목사는 어느 성도보다 더 앞서서 말씀보고, 기도하며, 거룩한 삶을 살려고 애를 쓰고, 삶으로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최선의 성도가 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감동이 있었다. 감동이 된 나는 다시 내 자신에게 물었다. ‘최선의 성도란 무엇인가?’ 하고. 결국 그 답은 예수님의 말씀에 있었다. 자기를 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탐심을 버리는 것이다. 최선의 성도이자 목사도 결국 자기를 부인하는 것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안목을 주시되 마음에 일어나는 죄를 알게 하시고, 그 죄와 싸우도록 하실 때 비로소 최선의 성도의 삶을 살게 하시는 것이다.

 

시간은 늘 그랬던 것처럼 흘러갈 것이다. 그리고 시대적인 상황도 바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원칙은 바뀌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의지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고, 성취된다.

 

비록 진리를 지키고자 애를 쓴 성도들의 눈물이 잊혀지고, 개혁교회의 신앙고백들이 오늘날 힘이 없어 보이고 무관심을 받는 것처럼 보여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역사를 정리하고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내일이 세상 안에서 어둡게 보일지라도 하나님 안에서는 분명하다. 그래서 진리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성도의 삶이 귀한 것이고, 여전히 그 길을 따르고 있는 동역자와 그 개혁정신을 외치는 선배들이 우리에게는 소중하다.

   

우리도 하나님 안에서 소망이 있는 그 신앙의 길을 겸손히 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