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추둘란 집사_수필가쪾홍동밀알교회
“7년 가까이 농사를 지었건만 이런 수익은 처음”
가끔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어째서 하나님은 다른 가정처럼
가장이 경제를 책임지게 하지 않으시고 나에게 이 큰 짐을 지우셨을까?’ 나
도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잘 할 수 있는 것이 많은데, 직장 일은 직장 일대
로 해야 하고, 퇴근 후에나 주말에는 늦은 시간까지 또 다른 부업에 매달려
야 하니 365일 쉼이 없는 내 삶이 참 고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깨에 온통 짐만 올려놓은 것같아
남편은 무보수로 장애인의 권익을 위한 사회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바쁜 것
으로 치면 둘 다 비슷하지만 그래도 남편은 만날 사람 다 만나고, 하고 싶
은 일 다 하고 그러면서 좋은 일한다고 칭찬도 다 받는 듯이 보입니다. 반면
에 나는 친구를 만난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고 가보고 싶은 곳, 해보고 싶은
일을 뒤로 한 채 집과 직장
, 교회만 뱅뱅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생활이 못 견딜 정도로 답답한 것은 아닙니다. 집에서는 몸과 지혜
가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며 행복하고, 직장에서는 동료들과 화목하며 특히
전도대상자를 섬기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 또 교회에 가면 예배
드리고 말씀을 듣는 일이 행복하고, 성도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때
마다 감동과 은혜를 한아름 받곤 합니다. 주님께서 어느 공간에 있든지 좋
은 것들로 채워주시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서운함이 가시지 않고 남아 있었습니다. 남편
의 벌이가 나보다 못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내 어깨 위에만
그 짐이 지워져 있는 듯한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한때는 가정의 경제를 책
임지라고 바가지도 긁어보았지만 하나님께서 장애인을 위한 사역의 길을 시
간이 흐를수록 더 크게, 더 활짝 열어주시는 것을 보며 한 걸음 물러서 버렸
습니다. 남편도 기도하는 사람이니 그 길이 가야 할 길이 아니면 하나님께
서 먼저 막아서실 터인데, 하는 일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니 나로서
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오죽 했으면 ‘당신
은 이 땅에서 박수 받고 칭찬 다 받았으니 하늘나라 상급
은 내가 더 클 거야’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거나 ‘내 돈이 내 돈이랴. 필요
한 만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더 필요하면 더 주실 테지’하고 마음을
다독이곤 했습니다. 그래도 마음 깊은 곳의 서운함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사실 남편은 바쁜 중에도 짬을 내어 농사를 짓습니다. 내 땅, 내 기계가 없
다보니 밭농사는 엄두도 못 내고 논 열 마지기 농사를 빠듯이 짓고 있습니
다. 내가 직장 일과 부업에 매달리다보니 농사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남편 혼
자 다 감당하고 있는데 농사수익이라는 것이 땅 빌린 값, 기계 빌린 값, 퇴
비 값 주고 나면 그뿐이어서 잠시 내 손에 들어왔다가 눈앞에서 금방 다 빠
져나가 버릴 만큼의 액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신도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있다고 말하는 남편의 당당함이 저는
좀 얄밉습니다. 1년 동안 걱정 없이 유기농 쌀 넉넉하게 먹는 것과, 친지들
과 나눠먹는 재미만 없으면 벌써 손을 놓았어야 할 일이 농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올해 농사는 남편이 스스로 인정할 정
도로 ‘한심한
농사’였습니다. 논의 물 관리를 비롯하여 잡초 뽑는 일, 논
둑의 풀 깎기, 제 때에 비료 내기, 심지어 수확 후 건조하는 일까지 모두 적
당한 때를 놓쳤습니다. 급하게 부랴부랴, 마지못해 해치우듯이 농사를 지었
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까지 홍성 지역의 장애인부모회 회장만 맡았던 사람이
올해에 갑자기 충남도회장과 전국 공동대표를 맡아버렸고 대학원에서 사회복
지 공부까지 하고 있으니 시간을 내려야 낼 수 없는 형편이 되고 만 것입니
다.
그런데 엊그제 검정쌀과 빨간쌀 도정을 끝내고 수익을 따져보니 열 마지기에
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7년 가까이 농사
를 지었건만 이런 수익을 내기는 처음입니다. 1년 내내 종종걸음으로 출퇴근
하며 벌어들인 나의 연봉과 똑같은 금액이 올해 남편의 농사 수익으로 나왔
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통쾌하게 하나님은 나의 서운함을 날려버리셨습니다. 서운해하지 말
라고, 내 고생하는 것 다 아시니 내 어깨에만 그 짐 지운 것 아니라고 말씀
하시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신명기의 말씀이 생각나게 해 주셨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
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여
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
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그 말씀대로 벼농사의 핵심인 물 관리
를 정말로 이른 비와 늦은 비로 다 해결해 주셨으며, 오해가 있어 인사도 받
지 않던 이웃의 맘을 열게 하사 그분들의 손으로 벼 건조 작업을 대신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요즘 추수철에 이곳 홍동에는 집집마다 여러 곡식들로 곳간이 채워지고 있는
데, 벼농사말고는 다른 농사를 전혀 짓지 않는 우리 가정이지만 하나님께서
는 인심 좋은 이웃들의 손길을 통하여 심지 아니한 과실과 곡식도 부족함 없
이 채워주고 있습니다.
살고 있는 집도 세를 내지 않고 공짜로 살고 있으니 ‘너희의 수고하지 아니
한 땅과 너희가 건축지 아니한 성읍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
거하며 너희가 또 자기의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과실을 먹는다’
하신 여호수아서의 말씀과 일치하는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목자 하시오’ 하는 목사님의 권유에 두말없이 순종하고, 우리 형편도 빠
듯하건만 다른 장애인 가정의 희망 없는 삶을 가슴 아파하며
사회운동에 그
아까운 시간을 다 헌납하여 버린 남편, 그러면서도 집에 오면 설거지와 청
소, 빨래 널고 걷는 일을 귀찮아하지 않고 다 해주는 남편입니다. 나보다
더 바쁘고 나보다 더 힘들고 나보다 더 피곤했을 남편이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맡은 모든 일에 순종하고 충성하였기에 이와 같은 복을 누리며
삽니다.
남편의 수고 덕분에 복된 삶 누려
그렇게 순종하고 충성하면 가정에 ‘이른 비와 늦은 비’의 복을 누릴 수 있
다고, 믿지 않는 이웃들에게 삶으로 본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
이 아닌 내 남편인 것이 감사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