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같은 자에게도 귀한 직분을 맡기시니
추둘란 집사_수필가,홍동밀알교회
“벽에 걸어 둔 집사 임명장 보고 충격받아”
이번 주일에 목장 분가식이 있었습니다. 새로 임명되는 목자가 목자 서약을
읽고 축하받는 모습을 보면서 2년 전 같은 자리에 서 있던 남편과 저를 떠올
렸습니다. 그리고 직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올해 초, 집사 직분 받게 돼
우리 교회에서 남편과 제가 처음으로 받은 직분이 목자입니다. 집사 직분을
받지 못한 때였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또 한편으로는 얼떨떨했던지…. 목자
직분을 받으라는 목사님의 권유에 남편이나 저나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그 자
리에서 바로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가정을 사랑하시고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목자의 직분이 너무 자랑스럽고 좋았던지, 올해 초 집사 직분을 받
을 적에는 오히려 무덤덤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에 온 지 9년 만에 받은 집
사 직분이
건만 뜻밖에도 가슴이 벅차지 않아서 스스로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다른 교회 성도들이 남편과 저를 집사라고 부를 때마다 계면쩍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그분들에게 우리는 집사가 아니라고
완강하게 표현하기도 했지만 나중엔 딱히 부를 호칭이 없어 예의상 그리 부
르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서는 그러려니 넘어가곤 하였습니다. 그런 상태에
서 정말로 집사 직분을 받았으니 자랑스럽고 감사해야 함이 마땅한데 실제로
는 감동이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 목장 분가식을 통하여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있던 한 기억
을 떠올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미루고 있던 일을 결단하고 실행하게 해주셨
습니다.
두어 달 전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최고 연장자이신 이석순 집사님이 기운이
많이 쇠약해지셔서 몇 주 동안이나 예배를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여
러 성도님들과 함께 심방을 가게 되었습니다.
삼 대가 모여 사는 집사님 댁은, 함께 간 성도님들이 눈치껏 자리를 좁혀 앉
아야 할 정도로 작고 낡은 집입니다. 넉넉지 않은 살림인 것을 다 아는데,
그럼에도 식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에는 평안
과 기쁨이 충만하여 보기
에 참 좋았습니다. 한창 혼담이 오가는 손녀딸이 지극한 정성으로 집사님을
섬기는 모습도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저는 더 큰 감동을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큰 충격을 받
았습니다. 벽에 붙여둔 두 장의 증서 때문이었습니다. 두 손자의 대학 졸업
사진 옆에 당당하게 보란 듯이 붙여둔 것은 집사 임명장과 ‘생명의 삶’ 성
경공부의 수료증이었습니다. 저는 혼자서 무릎을 쳤습니다.
‘아하! 사람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평생에 자랑할 것이 무엇이랴? 주신 직
분에 대한 감사와, 하늘나라를 알게 된 것에 대한 감사 외에 달리 무엇이 있
으랴?’
그렇게 깨닫게 되자 무덤덤하게 집사 직분을 받았고 임명장을 어디에 두었는
지 정확히 기억하지도 못하는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일흔 살이 넘는 어르신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집사 직분을
줍니다. 어려운 세월을 믿음 지키며 살아오신 것에 대해 예우해 드리는 것이
며, 인생의 값진 지혜와 경험을 많이 갖고 계신 나이이기에 직분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뜻은 그렇지만 나이만 차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명예집사이
니 누가 귀하게 여기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술 더 떠서 어르
신들이 받는 집사 직분과 젊은이들이 받는 집사 직분은 차원이 다른 것이라
고 교만하게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석순 집사님은 그 직분과 성경공부 수료증이 감사하고 자랑스러워
서, 손자들 대학 졸업만큼이나 가문에 길이 남을 기쁜 일로 여기셔서, 들고
나는 사람들 다 보도록 방 한 가운데에 붙여두셨던 것입니다.
그 모습 보고서 심방 끝나고 돌아가면 집사 임명장부터 찾아보아야겠다고 속
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뿐 그날의 감동과 결단을 까맣게 잊고 있
었습니다. 집사 된 지 다섯 달이 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 기억이 떠올랐고
직분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교회에서 목자나 집사 직분을 주기 전에 남편과 저는 자원하여 따로 받
은 직분이 있습니다. 남편은 차량봉사를, 저는 꽃꽂이를 자원하였습니다. 이
런 일을 두고 직분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9년 전 처음 우리
교회에 와서 각자의 달란트를 따라 자원할 때부터 우리는 직분이라고 여겼습
니다.
그런 마음이었기에
그 해 가족별로 특별찬송을 드리는 시간에 ‘천하고 무능
한 나에게도 귀중한 직분을 맡기셨다 그 은혜 고맙고 고마워라 이 생명 바쳐
서 충성하리’라는 찬양을 올려드렸던 것입니다.
그 찬송을 하나님이 귀기울여 들으셨기에 오늘까지 이렇게 충성할 수 있도
록 건강을 주시고 섬길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고 부족한 우리를 목자 가정
으로 세워 주셨다는 확신이 듭니다.
주님 섬기는 복된 직분 감당할 것
이번 주 안에 집사 임명장과 목자 서약서를 액자에 넣어 걸어 두려합니다.
들고 나며 바라볼 적마다 주님이 인도해 주신 시간들이 떠오를 것이며 ‘큰
열매 눈앞에 안보여도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 얻으리라’는
약속도 새록새록 새겨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