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세월 속에….
“인생의 종착역까지 행복한 여행하고파”
김영자 사모_채석포교회
따스한 봄볕으로 수많은 봄꽃들이 수줍은 듯 살포시 꽃망울을 터트리는 복
된 계절입니다. 나무 위의 연꽃이라 불리는 목련도 눈부시게 자태를 자랑하
고 있습니다. 철 따라 옷을 갈아입는 산천의 꽃, 나무들로 인해 모든 사람들
이 행복해 하는 것 같습니다.
철따라 옷 갈아입는
자연으로 행복해
봄의 계절이 너무 짧아 봄이 없다고 하는 이곳에서는 어부들의 바빠진 일손
과 그물에 걸리는 생선의 종류로 계절을 알 수 있습니다. 진달래꽃이 필 때
는 주꾸미 철이라든지…..
우리 집에는 우리 부부와 같이 하는 식구들이 여럿 있습니다. 따뜻한 햇살
이 내리 비치는 날이면 현관 앞에서 수문장 역할을 하며 큰 단추 같은 두 눈
에 혀를 길게 늘여 빼고 턱을 다리 사이에 고이고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면
서 오수를 즐기다가 자기 코고는 소리에 깜짝 깜짝 놀라는 돌이가 있습니
다.
강아지 때 서울 아파트에서 살다가 입주를 거부당해 짐승을 좋아하는 남편에
게 맡겨졌습니다. 개 나이로는 10년이 넘었으니 사람으로 치면 노년이 되었
습니다. 요즈음에는 가끔씩 마당 한가운데다 실례를 하는 것을 보니 하직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늙게 될 것입니다. 나무나 골동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볼품
이 있고 웅장한 느낌을 줍니다. 소나무와 향나무 그리고 느티나무와 은행나
무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는 늙으면 겉모습부터 보기가 흉하고
일반적으로 마음도 아집으로 인해 때가 끼기 쉽습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그 누가 늙음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년 수는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
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는 시편의 기도처럼…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해 누구나 건강히 오래 살기를 원하고 행복한 여생과
더불어 아름답게 늙어가기를 위한 노인 10계명도 만들어 실천해 보기도 합니
다. 나이가 들다 보니 흘러온 세월들을 생각해 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남편
과 같이 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생
각하며 감
사하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됩니다. 행복이라는 것을 내 자신 속에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흐르는 세월 속에서 소
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면서 아늑하고 그윽한 삶의 기쁨을 누리는 것 같
습니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선배 사모님이 있습니다. 본인의 몸도 추스르기 어렵
지만 몸이 불편한 남편을 몇 십 년 동안 내조하면서 느낀 것은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동행으로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삶에서 이제 눈빛만 보
아도 아련함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우러난다고 했습니다. 남편의 얼굴에
서 자신의 얼굴을 볼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분을 볼 때마다 많은 어려움
과 시련 속에서 진실한 행복의 침착함이 서려 있음을 알고 공감했습니다.
또 내 이웃에는 아름다운 부부가 있습니다. 안수집사님과 권사님이 있습니
다. 많이 배우지도, 젊지도 않은 초로의 부부입니다. 10여 년 전에 집사님
이 과로로 쓰러지기 전까지의 삶은 큰 저택에 경제력이 있는 삶이었습니다.
20여 일 동안 산소 호흡기의 도움으로 숨을 쉬고 있는 집사님을 살릴 수 있
었던 것은 성도들과 권사님의 기도였습니다.
2년 동안의 병상
생활을 털고 처음 한 일은 페인트칠이 벗겨진 시골 교회를
아름답게 도색한 일이었습니다. 그 교회가 채석포 교회였습니다. 우리가 그
분들을 만났을 때는 지팡이로 겨우 몸을 지탱하고 바로 서지 못해서 두꺼운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데리고 온 인부들을 지시했습니다. 육신은 망가졌지
만 말은 할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죽음에서 깨어난 집사님의 삶은 새로워졌습니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
해 어린 나이에 상경하여 오로지 페인트로 1인자가 되기를 원했다고 했습니
다. 부도 얻고 사장이라는 직함도 얻었지만 하나님께서 흩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자가용을 타고 쇼핑을 즐겼던 권사님은 남편의
불편한 몸을 보호하기 위해 운전을 배워 자가용이 아닌 트럭에 페인트를 싣
고 다니며 남편 대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권사님께서도 남편의 병간호와 부
도로 인한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다시 만나 그 모든 것에 감사하며 새 삶을
산다고 합니다. 이제는 올바르게 걷지는 못해도 지팡이를 짚지 않고 발을 디
딜 수 있습니다.
집사님은 성경 속에 나오는 인물 중에 욥을 가장 좋아한다고
합니다. 채석
포 가까운 곳에 30여 년 전에 나이 들어 여생을 보내려고 작은 집 하나를 장
만했었습니다. 그때 권사님은 본인은 서울에서 살겠으니 남편만 시골이 좋으
면 그곳에 가서 살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간 있을 때마다 텃밭에
한 그루 한 그루 심은 나무가 큰 동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바닷가에 철새 수 백 마리가 무리지어 노닐고 앞산의
나무 위에는 하얀 백로가 앉아 있는 것을 보며 그 아름다움에 눈물이 난다
고 합니다. 유명한 화가가 그린 미술 작품도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싫증나
지만 하나님이 주신 정원은 계절마다 다른 감동을 주어 하나님의 솜씨를 찬
양한다고 합니다.
권사님이 행복해 하는 마음은 세상만사를 모두 아름답게 볼 수 있도록 했습
니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을 꾸미고 포장하며 과시하면서 시간들을 보내지
만 나이가 들면 신뢰로써 믿음을 가지고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것 같습니다.
가끔씩 혼자라고 느낄 때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 한 가닥이 가슴 밑바닥에
쌓일 때도 있습니다. 해지기 전의 해와 노을이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노년에 얻는 행복 비할 데 없어
n내 인생의 여정에서 영영 날이 새지 않을 것 같은 때도 있었지만 춥고 세찬
바람을 극복한 후에 핀 새로운 꽃에서는 먼 곳까지 향기가 퍼져 나가 듯, 흐
르는 세월 속에 내 삶의 여행에서 종착역에 이르는 시간까지 가슴 두근거리
며 행복한 여행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