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그래,물이 문제다
민경희 사모/ 평안교회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전자오르간 소리가 구성지게 들리는 작
은 녹음기를 목에 걸고 몸에는 뒤 따르는 할머니를 끈으로 묶은 할아버지는
지하철에서 만나는 낯익은 얼굴이고, 사고로 손가락을 잃고 팔이나 다리를
절단한 사람,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은 아주머니 등 안타까운 사연들이 있
는 몇 사람이 지나갔는데 또 검은 잠바차림의 아주머니가 앞 칸에서 건너오
는 것이 보여 나도 모르게 휴~ 한숨이 저절로 나서 눈을 감았지만 그들 나름
대로 관상을 보는지 때론 팔을 툭툭 치고 무릎까지 건드리며 한참을 앞에 섰
으니 눈을 감는다고 피할 수도 없고 민망하긴 마찬가지다. 그날은 무릎에 던
져주고 지나가면서 “예수 믿고 병 고치세요” 쉰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TV
에도 방영된 적이 있는 기도원 전단지에는 생수를 먹고, 안수기도를 받고 병
이 나았다는 사람들의 사진과 그들의 병명이 기록되어있었다. 간암, 자궁
암, 뇌종양, 위암, 당뇨병
, 의사들이 병명도 모르던 병까지.
주부들 모임에서 성경공부를 가르친 일이 있었다. 어려운 사람의 소식을 들
으면 헌금을 해서 바로 돕기도 하고 각자의 교회에서 헌신 하는 귀한 사람들
과 성경을 공부하고 중보기도까지 하는데 끝내고 돌아 올 때면 늘 뭔가 미진
한 것 같아 뒤돌아보게 되고 어김없이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믿음이 견고
한 사람들도 아닌데 이 모임에서 느껴지는 여유는 무엇 때문인지, 또 신기
한 것은 아무도 누구를 탓하거나 비난하거나 원망하는 말을 몇 달 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루는 모임을 위해서 한 자매에게 기도를 시켰는데, 나는 그만 눈을 뜨고
감사기도를 하는 사람과 얌전히 고개 숙인 사람들을 찬찬히 볼 수밖에 없었
다. “하나님, 우리로 이렇게 편히 살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 건너
어려운 시영 아파트 주민이 아니라 사모님 소리를 듣게 하시며” 주신 것을
감사하는 기도는 이어졌지만 나는 아멘으로 화답할 수가 없었고, ‘개인사
정’으로 이번 주로 끝내게 됐다고 모임을 마쳤던 것이다.
우리 식구들은 식사기도를 하다가 가끔 웃는다. “아빠는 맛있는 거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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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더 길어지는 거 아세요?”. 웃긴 하지만 그런 날이면 남편이랑 둘이
조금은 심각하게 기도 전에 우리를 점검한다. 일용할 약식으로 감사하라는
말씀 앞에서 맛있는 음식이 더 감사한 건 옳은가? 에덴동산에서 벗고 사는
것이 축복이던 아담과 하와가 가죽 옷을 입게 된 것이 축복이 아니고 오직
은혜일뿐인데, 두벌 옷도 가지지 말고, 속옷을 달라는 자에게 겉옷도 벗어주
라는 말씀 앞에서 밍크코트를 입으면 더 감사한 건가?
나그네 같은 인생여정을 가며 돌아갈 본향이 있는 자로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할 우리가 이 땅에서 견고한 성읍 같은 큰 아파트에서 살게 되면 더 감사한
게 맞는 건가?
피조물이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며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
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을 바라고 있다는 말씀 앞에서 ‘이슬
비를 맞으며 단풍나무가 하는 노래’나 ‘바람이 있는 소나무 숲의 노래’들
처럼 자연이 사람의 병을 치유시키는 힘이 있다며, 물에게도 감사한다는 말
을 하고 먹으면 육각수의 좋은 물이 된다는 가르침들에 흔들리는 건 자연 앞
에서 겸손한 사람들인가? 우리 주일학교 아이들은 “물을 주
신 하나님께 감
사하고 먹는 거지요? 물에게 고맙다 하면서 물 먹는 건 이상한 거 맞지
요?” 하는데 말이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인해 사망이 왔는데 병을 고치는 것이 정말 주
께 영광인가?
막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천식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가 며칠 입원해 있
을 때 손을 잡고 병이 낫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눈을 떴는데 병상에 누운 아
이가 가만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엄마, 그럼 천국엔 언제 가요?”.
그래도, “예수 믿고 병 고치세요” 입 속으로 뇌이며 지난여름 뇌종양으로
떠나보낸 주일학교 꼬마가 생각나서 눈물이 고이고 목이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