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렐 형제님께
< 장수민 목사, 칼빈아카데미 원장 >
“어느 시대나 군주에게 아양떨려는 비굴한 자들 있어”
내용 _ 파렐의 형제 고티에(Gautier)가 투옥된 데 대한 안타까움과 제네바에 창궐한 역병과 관련한 소식.
형님께서도 이미 그 슬픈 소식을 들으셨겠지요. 이 편지를 전하는 사람이 형님의 형님 고티에께서 붙잡혀 족쇄를 차고 있으면서 아주 급박한 생명의 위기에 처해 계신다는 것을 전해드릴테니 말입니다.
제가 항상 예견하면서 두려워했던 일이 그만 실제로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저로서는 이렇게 불길한 일을 예견하고 있었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불평을 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큰 형님을 돕는 문제에 있어서 저로서는 베른 사람들의 힘이 과연 얼마만큼이나 미칠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게다가 현재의 시점에서 그들이 과연 이 어려운 일에 발벗고 나서 줄런지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습니다. 이 모든 상황들에 대해서는 저보다야 형님께서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장 슈트름(Jean Sturm)을 통하지 않는 한, 독일로부터 시기적절한 어떤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슈트름이 아무리 이 대의를 위하여 노력한다고 해도, 상황이 그렇듯이 큰 형님과는 사이가 안 좋지 않습니까.
형님께서 시간이 있는 동안 잘 생각하셔서 뛰어난 친구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생각해 보실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게다가 이 기회에 군주에게 아양을 떨려는 비굴한 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형님도 모르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여하튼 그 지역에서 무언가 시도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고 생각하신다면, 형님께서 슈트름에게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가장 효과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형님 곁에는 지금까지 그 어떠한 것도 함부로 거절한 적이 없는 부써(Martin Bucer) 선생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부써께 다녀오시라고 하기에는 길이 너무 먼 듯 합니다. 그러니 부써께 부탁하셔서, 해결책이 너무 늦지 않도록 인편으로라도 베른 사람들을 독력하시라고 부탁하십시오.
그건 그렇고 형님과 관련한 소식이 아무 것도 없었기에 우리는 매우 놀랐습니다. 비레는 형제들이 모두 결정을 다 내렸다는 것을 저에게 알려왔는데, 그의 편지를 종합해본 최대한의 정보에 의하면, 의회에서는 아직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 문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불투명한 상태에 놓여 있겠습니까? 형님도 아시듯이 이곳의 우리들 역시 아주 힘든 문제에 봉착해 있지만, 형님은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계십니다.
마테우스(Matthaeus)는 병원에서 역병 환자들을 위해 열심히 땀흘리고 있습니다. 형님을 부르고 있는 동안 우리의 가장 뛰어난 형제이자 신실한 동료인 제니스톤(Geniston)을 잃었습니다. 이제 다른 이들도 이렇게 역병으로 계속 우리를 떠난다면 어째야 좋습니까? 만약 단 한 명만이 살아난다면요? 그것이 바로 제가 된다면요? 목사들이 이곳 마을 사람들의 말도 안 되는 미신에 휩쓸려 스스로 폐쇄적으로 변한다면 또 어떻겠구요?
최근에 많은 목사들이 다소간 제한적인 생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형님께서 우리를 돕는 것을 더 이상 미루시지 않도록,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들에 대해서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비레가 언급하고 있는 것은 바로 형님쪽 형제들이 형님께서 우리가 투쌩(Toussain)의 계승을 가져올 수 있다는 조건 하에서 우리에게 동의했다는 말을 덧붙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 우스운 일입니다. 우리가 그 문제에 있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혹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그 일을 시도할 수 있겠습니까?
요약하자면, 우리는 절대로 어떤 특정한 시간을 정하지 않을 것이고, 형님께서 최대한 부지런히 움직여 뇌샤텔을 떠나시기만을 바랍니다. 형님께서 즉시 족쇄에서 풀려나 우리에게 오시도록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파렐 형님께서 이곳에 오시기만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을 보아서도 형님께서 충분히 아실 것입니다. 제니스톤의 아내는 거의 죽을 만큼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그의 어린 딸도 지쳐만 가고, 아들은 다른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편지의 나머지 부분 소실됨)
1545년 9월 칼빈 드림
해설 _ 이 편지는 날짜를 알 수 없고 결미 부분 역시 생략되어 있다. 아마 유럽을 휩쓴 흑사병 창궐 시기, 즉 1545년 9월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고티에 파렐(Gautier Farel)은 개혁자 파렐의 형으로 복음 때문에 투옥되었지만, 예상 외로 곧 자유의 몸이 되었다.
목사 루이 드 제니스톤(Louis de Geniston)은 앞서 역병으로 삶을 마감한 피에르 블랑셰(Pierre Blanchet)의 고귀한 본을 따라 자발적으로 병원으로 달려가 역병에 걸린 사람들을 위해 봉사했지만, 헌신적으로 일하던 중에 1545년에 역병에 걸리게 되었고, 이로 인해 아내와 두 자녀들과 떨어져 지내야 했고, 결국에는 사망하고 말았다. 당시의 역병은 너무도 심각하여 몇몇 도시는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할 정도였다.
칼빈은 당시 어려움에 처해 있던 파렐에게 제네바로의 망명을 간청했지만, 파렐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후로도 20년 넘게 뇌샤텔 교회를 지키면서 꿋꿋하게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