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란히톤 선생님께.
< 장수민 목사, 칼빈아카데미 원장 >
(내용) 루터의 횡포에 대해 불평하면서, 멜란히톤이 더 큰 결단력과 단호한 태도를 보여줄 것을 요청함.
” 우리는 후손들에게 적당한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할 것 “
제가 선생님께 위안이 될 수 있어서, 마음의 짐을 함께 느끼는 동료애로써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나 선생님의 슬픔을 덜어 드릴 힘이 될 수 있을지요? 취리히의 사람들이 걱정거리라고 말할 정도로 그 문제가 중요하다면, 그들이 시간을 내어 편지를 쓸 것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페리클레스(루터)는 자신의 천둥 같은 사랑으로 모든 부담의 한계를 넘어서려 하시는 것 같습니다. 특히 자기 자신의 경우가 둘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분께 어느 정도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제 자신의 뜻을 거스려 굴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루터 박사께서 중대한 변화를 견디셔야 할 것입니다. 그분이 절도 있게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인간에게 지나친 존경을 표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모든 것보다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선생님을 아무리 기쁘게 하더라도, 교회는 모든 권위 위에 있습니다. 특히 자신이 얼마나 나아가도 되는지 그 한계에 대한 도덕관념이 없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사람이 다른 주장을 하고 있고, 견해의 차이도 큰 상황에서는 문제가 되고 있는 물길을 틀어 냉정함을 회복하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온 정신을 집중한다면 일말의 치유책이 발견될 지도 모릅니다. 분명히 우리는 후손들에게 적당한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한 사람을 조금 성가시게 하는 것보다는 아예 자유 전체를 던져 버리는 것을 오히려 더 선호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그의 성격이 다혈질이어서 그의 성급함을 제대로 다스릴 길이 없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격렬함은 어떠한 강한 무력으로라도 다스릴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두들 루터 박사께는 너무 관대한 것 같아, 박사께서 제 마음대로 하시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이제야 교회가 다시 살아나 봄을 맞이하려고 하는데 이와 같이 우쭐해 하는 독재자의 표본이 벌써부터 발견된다면,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해야 합니까?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이 오히려 더 악화되지 않을런지요? 그러니 이제 교회에 닥친 재앙에 대해 슬퍼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슬픔을 침묵으로 삼켜버리지 말고 자유를 위해 신음하는 일에 과감하게 나서십시다. 게다가 주님께서 선생님으로 하여금 바로 이 논문에 더욱 충만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도록 선생님을 이러한 협곡에 놓으신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항상 동의하듯이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은 항상 진실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선생님께서는 항상 친절한 교육 방식으로 고난과 논쟁에 빠진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부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오셨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신중함과 절제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지금 어떤 숨겨진 암초가 나타나 이 문제에 끼어들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너무 집착하신 나머지, 선생님으로부터 어떤 견고한 기초를 얻어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을 여전히 혼란과 긴장 속에 팽개쳐 두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전에도 제가 여러 번 상기시켜드렸듯이 우리가 많은 성인들이 피로써 맹세하기를 망설이지 않았던 교리에 대해 잉크로라도 서명하기를 거부했던 것은 매우 명예로운 일입니다. 그러니 이제 주님께서 선생님의 마음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도록 선언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계신 것입니다. 선생님의 권위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영원한 의심과 망설임을 벗어나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듯이 이러한 사람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제가 선생님의 행동의 자유를 자극할 목적이나 마음의 위안을 드리기 위해 이러한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이러한 안타까운 붕괴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저는 깊은 절망에서 완전히 지쳐 버릴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일이 평화롭게 잘 마무리 되도록 인내로 기다리십시다.
이는 주님이 허락하시도록 기쁘게 할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답장을 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클로드(Claude)에게 보여주신 친절에 대해서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 친구가 장담을 하면서 그쪽 사람들의 호의를 제게 전해주었습니다. 제 친구에게 그토록 깊은 예의를 갖추어 친절을 베풀어 주신 것을 보건대 정말로 선생님께서 저를 얼마나 소중히 여겨주시는가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는 주님께 감사를 돌리고 싶습니다.
선생님과 제가 함께 검토해 본 문제들에 관해 상호 아무런 견해 차이 없이 동의할 수 있었던 데 대해서 말입니다. 물론 특정 세부 사항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인 관점에 있어서는 동의를 했기 때문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545년 6월 28일
존 칼빈
해설: 루터가 주의 만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짧게 고백하는 자리에서, 취리히 교회 목사들의 교리에 반대하는 말을 함으로써 새롭게 시작된 루터의 공격에 충격을 받은 취리히의 목사들은 1545년에 반박서를 출판하였다. 하지만 루터의 공격적인 자세에 감정이 상해 취한 취리히 목사들의 이러한 대응은 열성적인 루터 교파들의 심기를 건드렸고 멜란히톤까지도 감정을 상하고 말았다. 이러한 때에 칼빈이 멜란히톤에게 편지를 보내어 루터와 취리히 사람들 간의 갈등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이 문제에 대해 취리히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반박할 이유는 있다는 입장을 밝힌다. 칼빈은 루터의 태도가 불만이어서 좋은 말을 해줄 수가 없었다. 칼빈이 보기에 벼락 같은 소리나 지르고 있는 루터를 진정시키려고 애쓰는 사람이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멜란히톤이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혀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멜란히톤의 우유부단한 생각에 대해 의문을 품으면서 아쉬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