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문지기’(시 84:1-12)의 의미_김영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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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하게성경읽기

김영철 목사_미문교회

‘하나님 문지기’(시 84:1-12)의 의미 

“우리의 중심이 주님을 의지하고 있는가 깊이 생각해야”

시편 84편에서는 하나님을 다양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
와’, ‘나의 왕’, ‘방패’, ‘하나님’, ‘나의 하나님’ 등 이렇게 여
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다양한 묘사 나타나

그런데 이 시인은 어떻게 다른 곳의 천(千) 날과 이곳에서의 하루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이는 그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
고 그분의 어떠하심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시인이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
는 중심적인 내용입니다. 
한 마디로 여호와는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시 
84:11). 여기서 ‘정직히 행한다’는 말은 ‘솔직하게’라는 뜻이라기보다
는 정말 전심(全心)으로 그분 앞에
서 행하는 것, 또 다른 말로 말하면 주께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시 84:12). 
이처럼 여호와를 전심으로 의지하는 자에게는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좋은 것
을 아끼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으로 알기에 그런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에 들어
가지 못하고 밖에서 밤을 새우면서 문을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다
른 곳에서 천 날을 지내는 것보다 낫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84편 10절은 우리말 성경에서는 그저 막연히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라는 말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자세히 직역
(直譯)하면 이런 말입니다. “내가 문지기로 있기로 선택하였습니다(결정하
였습니다).” 
이렇듯 자신의 다짐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확히 말해
서 악인의 장막에 거하는 것보다도 내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기로 결정한 이
유는 무엇입니까? 주님계신 곳에서 주님을 뵙고 있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천 날을 지내는 것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이 시편에서 묘사된 대로의 하나님을 제대로 인식하
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이론적으로 알뿐 아니라 
정말 실제로
도 그렇게 의지하는 것인가? 그분을 순전히 의지하는 것인가? 하는 점을 생
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이 시편을 기록한 시인은 이런 하나님을 의지하기에, 그분이 다름 아닌 ‘나
의 왕 나의 하나님이심’을 알기에 그분 앞에서 비록 좀 멀리 떨어져 있는 
문지기로라도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떠합니까?
그리고 덧붙이자면 ‘여호와의 장막’은 그분이 계신 곳을 의미하는데 신약 
시대에 속한 우리는 참으로 그분이 계신 곳의 문간에 서서 기웃대는 것이 아
니라 그분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와 더불어 사는 삶을 누리는 것입니
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삶이 좋기 때문에 감격해 하고 고마워하기보다는 
여기서 피해 도망가든지 아니면 ‘이렇게 발을 들여놓지 말걸’ 하고 후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생길까요.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 그분 안에서 모
든 것을 얻고 그분을 의지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
문일까요? 아니면 안다는 것이 단순히 이론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일까요? 
이 사실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눈물 골짜기”를 지

날 때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는 것이고 예수 믿게 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입
니다. ‘왜 나를, 예수님 믿는 것이 내 힘으로가 아니라는데 왜 나를 부르셔
서 이렇게 힘들게 하시나’ 하면서 말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갖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자신들이 정말 천사들도 귀히 
여기고 사모할 만한 그런 행복 가운데, 복됨 가운데 있어도 전혀 그것을 맛
보거나 느끼거나 만족하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시 84:5), 그리고 이
렇게 순례의 길을 가는 자, 그것을 시편 기록자는 12절에서 한 마디로 “주
께 의지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과연 주님을 의지합니까? 아니면 무
엇을 의지합니까? 그저 결국에는 하나님 자신의 명예와 명성 때문에 우리를 
버리지는 않으실 것이라는 그것 하나는 믿을 수 있고 그 나머지, 즉 우리가 
거지가 되어 빌어먹든지 처박히든지 그저 다 내버려두실 것이라고 생각되는 
하나님이라면 그분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그분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분에게서 모든 것을 얻
고,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살기를 원
하십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진정으
로 좋은 것을 많이 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 
즉 ‘너희가 악한 아비라 할지라도 자식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
을 주겠느냐?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어찌하시겠느냐?’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머리 속에 그려 놓고 있는 하나님은 도대체 얼마나 크신 하나님이
십니까? 혹시 여러분의 필요에 따라 고무풍선 불듯이 늘렸다, 줄였다 하는 
그런 하나님입니까? 좀 과하게 표현해서 우리 삶의 상황이 전개될 때 모든 
희망이 사라진 절망 가운데 처해 있다 하더라도 그 순간에 다시 결정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과 그리스도를 믿는 것, 바로 이것을 
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자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할 수 있
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거든 ‘주를 의지한다’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많
은 사람들이 실족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행함의 잘잘못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의 중심이 주님을 
의지하고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움과 온갖 역경 가운
데서도 주
께서 주시는 이른 비와 모든 은택과 좋은 것을 누리기를 바랍니
다. 그래서 그분이 정말로 나의 하나님,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외칠 수 
있는 기쁨을 가슴에 간직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볼 수 있어야

우리들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자녀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
니하고 주시는 하나님. 그분이 비록 보이시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분을 늘 우
리 눈앞에 뵙고 살아갑니다. 그런 하나님을 볼 수 있음을 감사하면서 우리
의 평생을 살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