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단상<7>
믿음과 확률
조석민 목사_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교수
“믿음은 무모한 모험에 도전하는 것 아니다”
요즈음 온 나라가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결과를 놓고 매우 시끄럽
다.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게 되어 국민들이 값싸고 질 좋은 먹을거
리를 확보했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이와는 반대로 정부가 발표한 미국산 쇠
고기 수입 협상 결과는 국민들이 광우병 위험에 결코 안전할 수 없으니 재협
상하라는 주장 때문이다.
확률 앞세우는 것으로 신뢰 얻을 수 없어
정부를 신뢰하라는 목소리와 더 이상 정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목소리가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안전하다는 정부의 홍보
는 국민들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매우 낮다는 것과 다른 사고의 위험보다
확률이 적다는 것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국민들을 설득하고 있으나 국민들은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다. 확률을 근거로 광우병의 위험을 축소하면
서 그 위험을 감수하
라고 설득하는 정부의 눈물겨운 노력이 매우 안타깝고
실망스럽다.
확률을 근거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교회 안에서도 자주 보게 된다. 특
히 그 확률을 믿음과 연결시켜서 말하면 사람들은 확률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면 예배당을 새로 짓기 위하여 수억 또는 수십 억의 융
자금을 얻으려고 할 때, 여러 성공적인(?) 사례들을 나열하면서 어느 어느
교회가 수억 또는 수십 억을 융자받아 예배당을 지었지만 몇 년 안에 모두
융자금을 상환했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놀랍고 위
대한 믿음이라고 말하면서 확률적으로 실패할 수 없음을 말하면 교회의 성도
들은 쉽게 설득 당한다. 확률을 믿음에 접목시켜서 성도들을 설득할 때, 성
도들은 그 허상을 보고 사실을 착각하며 그것을 믿는 것이 위대한 믿음이라
고 생각하는 것이다.
광우병에 걸릴 위험을 확률적으로 말하면서 로또에 당첨되기보다도 어렵다
고 말하는 이 나라의 정부 관료들이나, 예배당을 새로 지으려고 융자금을 얻
기 위하여 교인들을 설득하면서 수억 또는 수십억의 융자금을 수년 내에 갚
을 수 있는 확률을 제시하면서 설득하는 목
회자들이 너무 유사한 모습처럼
보여서 씁쓸하다.
확률을 근거로 믿음을 요구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확률을 요약하
여 정의하면 하나의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수(數)로 나타낸 것으
로 같은 원인에서 특정의 결과가 나타나는 비율을 의미한다. 여러 가지 확률
이 제공되는 것은 신뢰를 얻기 위함이지만 진실이 확률로 왜곡되는 경우가
오히려 많다.
확률을 근거로 하는 믿음은 허상을 붙잡을 가능성이 오히려 많음에도 불구하
고 사람들은 확률을 의지한다. 사람들이 확률을 신뢰하는 것은 확률이 과학
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과학적 진리를 절대 진
리로 알고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한다.
그러나 현재 알려진 과학적 진리는 더 이상 알려지지 않은 영역과 알 수 없
는 영역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을 뿐이며 이런 점에서 절대 진리이기보다는
상대적 진리이다. 어제까지 과학적 진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 오늘 밝혀진
또 다른 과학적 발견에 의하여 하루아침에 진리의 목록에서 사라지는 경우
를 많이 본다.
참된 믿음은 확률을 근거의 터전으로 삼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
는 믿음은 확률을 근거로 하고 있지 않고 분명한 진리에 근거한 것이다. 예
를 들면 예수의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가 부활했을 가능성이나 확
률을 의지해서 예수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분명한
사실에 기초하고 있고 분명한 객관적 증거가 있기에 믿음을 갖고 있다.
성경은 믿음에 대하여 분명하게 정의하고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
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
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1-3).
확률을 동원하여 사람들의 믿음과 신뢰를 독려하는 것이야말로 사기 행각이
다. 예배당 건축을 하면서 다른 교회들이 이런 방식으로 일을 했고 모두 성
공했기에 우리도 그렇게 하면 확률적으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면서 예
배당 건축을 독려하는 것은 성도들을 속이는 것이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어야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은 무모한 모험이 아니며 모험
에 도전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상식에서 벗어난 모험
을 강요하거나 그런 모험적 개척 정신을 확률과 함께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
은 더 이상 위대한 믿음도, 능력 있는 믿음도 아닌 확률로 포장된 사기행각
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