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교수의 목회서신 연구(39)-여자의 자리 (딤전 2: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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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자리 (딤전 2:13-14)

조병수 교수

“네가 어디에 있느냐?”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첫 번째 질문이다 
(창 3:9). 첫 사람 아담은 타락의 상태에서 무화과 잎을 엮어 몸을 가리고 동
산 나무 사이에 숨어있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이 질문을 받았다. 물론 아담 
곁에는 하와가 있었다. 하나님은 아담의 자리를 물으셨다. 사실상 타락은 아
담에게서 시작되지 않고 하와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담
에게 질문하실 것이 아니라 하와에게 질문하셨어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
문은 하와가 아니라 아담에게 주어졌다. 하나님은 하와로부터 아담을 이해하
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와의 문제를 하와의 문제로만 보시지 않고, 하와
의 문제에서 아담의 문제를 보셨다. 하와에 의하여 아담이 이해된 것이다. 하
와는 아담과의 관계에서 이해된다. 이런 이해의 배후에는 아담이 하와보다 먼
저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이 있다. 하와는 아담으로부터 지음을 받았다. 정리
하자면 
타락의 문제는 창조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사도 바울은 아담과 하와의 관계를 창조와 타락의 조망에서 이해한다. 창조
에서는 여자가 남자보다 후에 지음을 받았다.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
가 그 후며” (딤전 2:13). 타락에서는 여자가 남자보다 먼저 꾀임을 받았
다.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딤전 2:14). 사도 바울은 남자와의 관계에서 여자의 위치가 무엇인지 설명한
다. 여기에서 한 가지 놓쳐서는 안될 것이 있다. 이 단락에서는 사도 바울에
게 남자의 위치에 관하여 말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다른 
문맥에서라면 여자와의 관계에서 남자의 위치를 설명했을 수도 있다 (고전 
11:11-12). 하지만 이 단락에서 사도 바울은 순전히 여자의 위치에 관하여 말
하는 것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본문은 사도 바울이 일방적으로 여자
를 깎아 내리기 위하여 기록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창조에서는 여자가 남자보다 후에 지음을 받았다. 이것은 여자가 남자를 존
중해야 할 것을 의미한다. 남자와의 관계에서 여자에게 부여된 중요한 역할
r
은 도움이다. 왜냐하면 여자는 남자를 돕는 배필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창 
2:20). 그래서 이와 같은 창조의 질서는 “높다”와 “낮다” 사이에서 나타나는 
계급관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낫다”와 “못하다”로 표현되는 품질관계
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나중에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남
자를 돕는 배필이 되었다는 것이며, 여자가 남자를 돕는 배필이 되었다는 것
은 남자가 진실한 남자로서 모든 것을 구현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타락에서는 여자가 남자보다 먼저 꾀임을 받았다. 이것은 여자가 남자보다 
신중해야 할 것을 의미한다. 남자와 비교해 볼 때 여자에게는 훨씬 더 꼬임
을 받고 싶어하는 습성이 있는 듯이 보인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여자는 
머리를 손질하고 보석을 부착하며 의상을 차려입기를 좋아한다 (딤전 2:9). 
미용과 화장과 장식은 여자에게 누군가로부터 주목받고 싶어하는 성격이 있다
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서 여자는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단장하고 선행과 경건으로 치장해야 한다. 여자가 남자보다 먼저 꼬임을 받았
다는 것은 여자
에게 신중한 삶을 요청하며, 여자는 이와 같은 신중한 삶으로 
자신을 진실한 여자로서 드러낼 수 있다. 

창조와 타락의 조망에서 볼 때 남자와 관련하여 여자에게는 여자의 자리가 
있다. 창조와 타락을 순전히 여자의 자리와 관련하여 설명하자면 이렇다. 창
조는 여자가 자신의 자리를 얻은 것이며, 타락은 여자가 자신의 자리를 떠난 
것이다. 하와가 자신의 자리를 받은 것이 창조이며, 하와가 자신의 자리를 버
린 것이 타락이다. 창조에서 여자의 자리가 확립되었고, 타락에서 여자의 자
리가 상실되었다. 여자가 자신의 자리를 지킬 때 창조의 행복은 지속되며, 여
자가 자신의 자리를 떠날 때 타락의 불행이 반복된다. 그러므로 여자는 아담
이 하나님에게서 질문을 받았던 것처럼 스스로 물어야 한다. “네가 어디에 있
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