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석의 북카페| 하나님은 왜 혼인 제도를 내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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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왜 혼인 제도를 내셨는가

< 조주석 목사, 영음사 편집국장 >

김홍전 | 혼인, 가정과 교회 | 성약출판사 | 335쪽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함께 이루어 가는 것에 혼인의 목적 있어

 

 

지인들의 자녀들이 혼인하는 식장에 가는 일이 종종 있다. 가보면 주례사도 천차만별이고 혼인 예식도 참 다양하다. 

 

대다수 주례사는 예수님 모시고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라는 것이 공통된 특징이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본서는 부부의 사랑이나 행복을 혼인의 최우선 목적으로 삼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이 혼인 생활에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일 수는 있겠지만 혼인 생활의 목표나 지향성일 수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런 것인가?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롬 14:8)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품고 살아야 할 생활의 큰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랑이나 행복을 혼인생활의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다면 일반 세상 사람의 혼인생활과 뭐가 다르다 하겠는가? 하나님이 우리 삶의 중심에 와 계시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결국 그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창세기 2장과 에베소서 5장에 따르면 부부가 연합하여 한 육체가 되었고 그 비밀이 크다고 말씀한다. 혼인이란 부부가 한 육체가 되는 데 있다. 이 말의 깊은 의미는 사람이 독처하기보다는 거룩한 사명을 같이 붙들고 나갈 짝과 혼인하는 것이고 혼인을 했으면 같은 생각을 품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서 남편 따로 아내 따로 각각 주장하고 나간다면 하나의 몸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혼인을 앞두었든지 아니면 혼인생활 중이든지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사명을 두 사람이 하나로 여기고 나가겠는가, 따로따로 가겠는가 하는 문제는 아주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거룩한 사명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은 다시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나는 일생 무엇을 해야 할 사람인가? 이 물음에 답을 가지려면 자기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바로 알아야 한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까닭에 나에게 주신 은사를 낭비 없이 사용하여 일생 동안 그 은사를 잘 사용하여 점차 받은바 거룩한 사명을 구체화시켜야 한다. 즉 목회자가 되었던 다른 직업을 가졌던 그 자리에서 내 영광이나 명예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부가 맹목적으로 한 지붕 밑에 살아가고만 있다면 그 혼인생활이란 어떤 것일까? 남보란 듯한 직장에 다니고 멋진 주택을 마련하고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혼인생활의 최고 목표였다면 설교자는 그것을 뭐라고 단정하는가? 사실상 혼인 부재 상태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부의 인생에 그들 자신이 중심에 서 있는 것이므로 그것은 육적이요 세상적인 것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혼인 부재 상태가 자꾸 늘어가는 것이 오늘의 세태라고 설교자는 탄한다.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심같이 아내를 사랑해야 하고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가르친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부부의 중요한 도리다. 그런데 혼인 초기에는 그 도리가 사실상 무슨 말인지 실제로 알기란 어렵다. 혼인생활에 들어가 고단하고 팍팍한 현실 생활을 살아보면 아! 자신이 거기서 얼마나 먼 존재인가를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가 서로 간에 모든 점에서 만족스럽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싫을 때도 있고 짐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서로가 연약하고 결함이 있는 까닭에 자기의 결함을 반성하고 자기가 져 줄 수 있는 짐이 있다면 져 주는 것 자체가 주님께 대한 봉사요 사랑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혼인제도를 내셨는가? 이 책을 펴든 어느 순간에 내 가슴 깊이 파고들었던 질문이다. 이 내용이 본서의 등줄기를 이루는 핵심으로 보인다. 근 20여 년 전에 혼인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당위나 원칙을 배웠던 책이지 않았던가. 30년 넘는 혼인생활을 되짚어 보니 그런 당위나 원칙이 나의 현실 삶과는 참 거리가 나 있었다. 그러니 꾸불꾸불 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세월의 행로가 반듯하고 풍요로웠어야 좋으련만 그렇지는 못했다. 하나님의 긍휼과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