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 칼럼|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시간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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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시간 개념

<김영규 목사>

  • 개혁주의성경연구소 소장
  •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시간의 원형은 하나님께서 그 시간을 공급하신다는 사실에 근거해야

 

빛의 속도는 등속을 넘어 가속을 향하여 달릴 때, 흔히 물질의 형태들이 변하고 시간도 변한다고 가정하고 있다.

빛의 등속은 아직 가속이 아니다. 블랙홀들은 중력의 힘이 이미 충분히 커서 그 중심을 향하여 등속에 있어서 빛의 속도에 도달한 세계를 표상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불랙홀이 가속으로 빛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불랙홀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론적으로 불랙홀 중에서 중력의 힘이 빛의 속도로 가속하는 불랙홀도 가능한데, 그런 불랙홀들의 경우에는 중력장의 반경이 무한대로 가능하더라도 빛의 속도 크기의 반 이하인 반경인 경우는 불가능하다.

지금의 우주가 슈퍼클러스터 별로 마지막 차가운 세계로 가속화된 세계로 여긴다면, 아직 우주의 끝의 정보가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중력의 장의 반경이 빛의 속도 크기의 반경 이하의 불랙홀이 인간에 의해서 관찰되는 일은 불가능하고, 아마 최초 우주에서만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해도 빛의 속도 크기의 반경보다 큰 무한대한 크기의 중력장의 반경을 가진 세계가 가능하기 때문에 우주 팽창에 있어서 등속이나 가속에 대한 가설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예를 들어 우리의 은하계가 우주에 있어서 아주 오래된 별로서 그 은하계의 중력장, 태양의 중력장, 지구의 중력장, 달의 중력장 등 다양한 중력의 장들이 겹치면서 어떤 질서로 있을 때, 각 중력장의 중력 상수들에 어떤 정보의 세계가 질서로 숨어 있느냐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가속과 힘의 개념을 없애버리면서 그들 사이의 관계로 이해하여 모두 에너지 개념으로 정리될 때, 그런 상관관계는 질서로서 정보의 세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중력의 장들이든 정보의 세계가 선행하는지, 또는 가속의 세계가 선행하는지도 알 수 없다.

우리가 생산하거나 관찰할 수 있는 힘의 세계는 대부분 질서로서 정보가 없는 힘의 세계이고 단지 힘의 직선 운동을 위상기하학적으로 외부적 질서의 운동으로 변경하는 방식으로 마치 거기에 질서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이용할 뿐이며 그런 힘의 개념은 ‘자연’의 가속이나 힘의 본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가정할 수 있다.

자연의 힘이나 가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정식이 정보로서 존재하는 그런 힘이나 가속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공을 던지는 가속에는 정보가 없다. 그런 점에서 인간에 의해서 재생하는 자연과 원 ‘자연’ 자체는 다른 것이라고 말해야 될 것이다.

우리가 흔히 가정하는 타임머신은 잘못된 가설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등속이든 가속이든 빛의 절대속도보다 더 큰 절대속도가 있다고 전혀 가설하지 않고 추론된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영혼이 없거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만 해도 그런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부활을 마치 양자들의 공간 이동으로 간단하게 생각하는 것도 자연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인간이 생성이 되고 자라며 그 생명이 유지되는데 있어서 있다가 사라지는 수많은 유도 인자들의 신비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기에 그런 허무한 상상을 하게 된다. 물론 문화에 사실을 강조하면 돈도 되지 못하고 문화도 되지 못한다. 그러나 삶에 진실을 제거하면 너무 허무한 삶으로 전락된다.

자연은 그 자체로서 아름다움이나 신비라는 무게가 있는 세계이다. 도덕이나 엄밀한 과학도 그런 진실이나 자연에 약간 가까울 뿐이다. 여하튼 중력장의 반경이 빛의 속도 크기의 반 보다 큰 반경을 가지면서 무한대로 큰 반경을 가진 불랙홀들도 수 없이 가정될 수 있지만, 그러나 우리 은하계의 중심에 있는 불랙홀에는 ‘자연’이라는 어떤 질서가 있다는 점에서 고유하고 독특한 ‘본성적’ 블랙홀이라고 해야 될 것이다. 즉 모든 자연적 빈 공간들도 시간으로 풀어야 할 ‘나머지’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시간이란 것은 무엇인가? 반복하여 말하지만, 일상적인 시계에서 표상이 되어 있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주 역사의 방향을 전체적으로 운동이라고 본다면, 그 운동에 비해 영원히 정지되어 있는 부동 자체가 가상적 시간의 원형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주의 전체 역사가 거꾸로 가지 못하는 전체 운동과 정반대로 정지되어져 있는 것이 시간이라고 한다면, 그런 시간은 데카르트 좌표 식으로 기존 차원에 직각으로 있는 새로운 차원으로 이해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주의 모든 운동 방향이 전체적으로 비가역적인 성격으로 남아 있는지가 여전히 증명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의 숨어있는 차원들이 얼마나 있는지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칼럼의 글에서 소개했듯이 물질의 근원적 입자들의 경우에도 그런 가역성이나 차원들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의 음전자 혹은 더 높은 에너지대에 존재하는 양전자, 기타 힘의 입자들이 광자들로 몰락할 때 그 광자들이 빛의 속도로 몰락하는 방향에 마치 시간 자체가 숨어 있다가 풀어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없으며 그 전에 스핀을 가지고 존재하는 입자의 생성과 정 반대 방향에 가상적으로 시간이 있다고 해야 된다.

그런데 우주의 현 중력의 법칙에 따라 등속으로든 가속으로든 빛의 속도로 빛의 속도 반경보다 더 작게 수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창조의 원리 외에는 그런 입자들의 생성을 설명할 수 없는 이상, 시간의 원형은 창조자에게 있다고 해야 된다. 그렇다면 피조물의 시간여행은 더욱 더 불가능한 것이다.

화산이 폭발하는 것이나 전자(電子)가 부서져서 빛을 내는 것이나 자연의 기존 질서가 몰락 할 때마다 혼돈으로 관찰이 되는 것 자체가 이미 자연 자체가 그 원형인 정보의 세계로 갈 수 없음을 증명하는 좋은 증거로 남아 있다.

더 높은 에너지 대의 힉스 입자들을 발견하였다고 해서 잃어버린 힉스의 장에 있는 ‘자연적 정보’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좀 더 지속적인 핵융합 발전기를 개발하기 위해서도 이 차이를 간과하지 않으면 실패하기 쉬울 것이다.

 

창조 세계 속에는 그것이 거꾸로 가지 못한다는 면에서 혼돈만이 발견이 되는 것이다. 반면 하나님께서 항상 주시는 자로 계시기 때문에 항상 질서가 발견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