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그 이후
송영찬 국장 daniel@rpress.or.kr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전 12:13)는 전도서의 결론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유일한 관계성을 확인해 주고 있
다. 처음부터 전도자는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존재로 말미암아 그 앞에서 무력
한 인간으로서 ‘허무’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존
재하게 하는 근원이시다. 비록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 하나님의 뜻이 사
람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대신 하나님은 계명을 주심으로써 인간
이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하셨다. 때문에 인생은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꼭두각시 같은 존재가 아니다.
이 사실은 최초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 아담을
거기 두시고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신 것에서 확인된다. 하나님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6-17)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하
나님은 아담에게 그 명령을 기계적으로 순종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다. 하나
님은 아담에게 자신의 이성적 판단에 따라 행동에 옮기는 자유를 주셨다. 이
것은 그에 따른 책임이 인간에게 있음을 의미하며 인간이 하나님의 꼭두각시
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이 세상이 부조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하게 지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부패로부터 시작된 것이
다. 그 중에 가장 불공평한 것이 죽음이지만 그 죽음으로 인생이 끝나지 않
고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점에서 불공평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사실 전도자
가 바라본 죽음의 불공평성은 ‘해 아래’라고 하는 제한된 시, 공간의 영역에
국한되어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전도자는 인간이 궁극적인 삶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는 ‘해 아래’의 시간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이 세
상에서의 삶이 의미 있기 위해서는 ‘해 아래’의 삶을 넘어 존재하는 죽음 이
후의 삶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해 아래’에서의 삶은 ‘허무’로 종결되지만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심판과 죽음 이후의 부활은 ‘해 아래’에서의 삶을
의미 있게 하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최종적으로 인생을 ‘해 아래’로부터 ‘영생’에게로 눈을 돌리게 유도
하고 있다. 영생이 없다면 인간은 ‘해 아래’에서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으로
종결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세계에 눈을 돌리게 함으로써 하나
님의 영원한 통치와 그 안에서 인생이 누리는 영원한 삶을 통해 ‘해 아래’에
서의 삶이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