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_정요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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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 정요석 목사, 세움교회 >

 

“사람에게는 객관적 기억이나 해석 존재하지 않아”

 

 

파티가 의례 그런 것처럼 칵테일 파티는 매우 시끄럽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끄러운 소리까지 칵테일 된 파티장에서 끼리끼리 잘도 대화를 나누고, 어디서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매력적인 이성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귀를 쫑긋하고 그 대화 내용을 듣기까지 한다. 사람은 이처럼 시끄러운 곳에서도 어떤 소리에 집중하면 그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데, 이런 현상을 “칵테일 파티 효과”(Cocktail Party Effect)라고 한다. 사람이 이렇게 특정한 소리만 골라 들을 수 있는 것은 사람에게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소리만 골라서 집중하는 능력이 있다. 이러한 능력이 실제로는 뇌의 움직임에 의한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2012년 4월 19일에 국제학술지 “네이쳐”(Nature) 인터넷 판에 발표되었다. 뇌는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들리는 여러 목소리 중 하나의 목소리만 처리하기 때문에 칵테일 파티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녹음기를 한 번 생각하여 보자. 녹음기의 특징은 균일성이다. 녹음기는 들리는 모든 소리를 수동적으로 녹음한다. 능동적으로 택하여 녹음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능동적으로 택하여 듣는다. 듣고자 하는 것을 듣지, 절대로 그대로 듣지 않는다.

 

사람은 택하여 듣고 보기 때문에 그 택하여 듣고 본 기억도 기억자의 성향과 의도에 따라 기억이 된다. 그래서 사람에게 객관적 기억이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객관적 해석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무언가를 지향하는 불안정한 존재인 것이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8장 18절에서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각자 자기의 지향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자기의 지향하는 바와 다르면 보아도 정작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기억을 하여도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은 자기의 지향하는 바를 보고, 듣고, 기억하며 객관적으로 옳게 보고 듣고 생각한다고 여긴다.

 

하나님은 노아 시대에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그 형상을 잃고 그 계획이 항상 악하면 그는 이미 존재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라, 하나님은 젖먹이까지 모두 이 땅에서 죽이셨다. 오직 은혜를 입은 노아와 그 가족 8명을 제외하고!

 

홍수로 그들을 전멸하신 후 하나님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이유는 사람의 마음이 선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이다. 본디 악하기 때문에 선한 것이 나올 것이 없으므로 기대하시지 않는 것이다,

 

이 땅에서 많이 성취한 이들은 대개 지향성이 큰 이들이다. 자신의 목표를 관철하기 위하여 강한 집념으로 시간과 노력을 목표에 집중하여 열심히 행한 이들이다. 그런데 때로 신앙의 내용과 목표마저 이런 세속의 집념과 큰 성취로 오해된다.

 

성경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라고 한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자신의 욕심을 작정기도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굶으며 협박을 하면서까지 기도를 한다. 하지만 성경은 사람의 계획이 어려서부터 악한 줄로 알라고 말한다. 그 계획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면 그 집행을 포기하는 싸움을 피 흘리면서까지 싸우라고 말한다.

 

신자는 진정 이것을 위하여 금식 기도하여야 한다. 어느 곳으로 향하는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키는 곳으로 돌이키는 싸움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자칫 하면 자신의 욕구와 지향을 드러내는 행위를 신앙의 이름으로 열심히 하기 쉽다.

 

의인은 없다. 하나도 없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선을 행하는 자도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사람들은 갈수록 모든 상황에서, 아무리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자기와 관련된 조그마한 내용만 있어도 그 소리를 듣고야 말 것이다. 이런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이 그의 말씀과 영으로 부르시지 않으면 누가 깨닫고, 하나님을 찾겠는가?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나님의 일을 깨닫게 하시고,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여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고, 의지를 새롭게 하여 선한 것을 하게 하시지 않으면 우리 중 누가 스스로 선을 알고 진리를 알겠는가? 누가 십계명을 하나님의 영원한 도덕법으로 알겠는가? 그 어느 사람이 영생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의지하겠는가?

 

구원을 받은 신자여도 남아있는 부패성 때문에 악한 것을 원하여 저 멀리서도 나를 부르는 소리에는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싸움에서 누가 승리를 하겠는가? 사람을 알고 사회를 알수록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