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라는 또 하나의 종교
-교회의 정체성 회복을 기원하며-
< 김수환 목사, 군포예손교회 >
타 종교인들은 우리 기독교를 향하여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사람들’이라고 비판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세상의 구원자는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라고 아주 태연하게 응수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타 종교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인본주의이며, 우리 기독교만이 신본주의이다. 따라서 우리 기독교를 굳이 종교라고 부른다면 타 종교는 종교라는 용어를 사용치 말아야하며, 정신적인 문화집단(?) 이라고 해야 옳다’고 강변하며 자부심을 가진다.
그렇다. 우리는 배타적일 만큼 유일한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 타 종교와 차별화 할 만큼 절대적인 신앙의 내용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명분일 뿐 현실에 있어서는 타 종교와 다른 점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신앙의 대상과 종교단체란 이름 이외에 다른 것이 없어 보인다.
일반적으로 종교란 미약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의 도움을 받아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기독교의 현실도 표현의 방법만 약간 다를 뿐, 일반 종교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즉 문제 해결과 소원성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하다.
교회마다 “나는 이렇게 해서 문제를 해결했고, 성공했다”는 간증거리로 넘쳐난다. 그리고 그런 간증에 회중들은 열광하며 “나도 더 열심히 믿어서 간증의 주인공이 되어보겠다”고 소위 거룩한 다짐을 한다.
물론 교회가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지만 우리 기독교 신앙이 땅 위의 일로 멈추고 만다면, 타 종교에 대하여 가진 차별성과 자긍심은 허구에 불과 할 뿐이다. 그것은 출세와 성공뿐만 아니라, 행복 역시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 결혼주례사 준비로 에베소서 5장의 본문을 다시 한 번 살펴보다가 심한 자책과 함께 반성을 했던 적이 있다. 우리 기독교의 가장 근본적인 진리의 본문을 ‘결혼 주례사’나 ‘가정생활 세미나’ 용도 정도로만 알고 다뤄왔던 것이 몹시도 마음에 걸렸다.
이 땅의 모든 가정들은 행복해야 한다. 우리 기독교인의 가정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 신앙이 ‘가정의 행복’에서 멈추고 만다면, 이 또한 타 종교와 아무 차별이 없는 또 하나의 종교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 기독교는 ‘가정의 행복’을 뛰어넘어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통한 영원한 신적인 삶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는 가정의 행복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해서가 아니다. 가정은 아무리 행복하고 또 행복하다 할지라도 보이는 현 세상을 초월하지 못하지만, 우리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이 세상을 뛰어넘는 영적이고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가정의 행복은 모든 종교들이 추구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가정의 행복과 같은 이 땅위의 현실들이 궁극적인 목표라면 구태여 우리 기독교까지 종교의 대열에 끼여들지 않아도 될 만큼 이미 많은 기성 종교들이 있지 않은가?
일반 종교가 절대자의 힘을 빌어서 단순한 인간의 뜻을 이루어 내는 것이라면, 우리 기독교는 비밀하신 하나님의 뜻(골 1:27)을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이다(빌 1:6). 그러기에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무리 거창한 인간의 뜻을 이룬다고 할 찌라도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기독교는 또 하나의 종교에 불과할 따름이다.
교회 간판을 달고 십자가 종탑을 세우고, 교회 안에서 어떤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타 종교와 다르다고 하는 것은 너무 안일한 생각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 종교의 숫자가 모자라서 기독교를 하나 더 추가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종교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기독교가 타 종교에 대하여 정말 배타적이고 독선적이어야 할 만큼 유일한 신앙의 내용을 갖고 있는지 우리 교회와 우리의 신앙을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