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죄와 작은 죄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
< 김영길 목사 · 더불어사는교회 >
“남의 허물 용서할 수 있고 우리의 교만 꺽을 수 있어야”
요즘 세상이 뒤숭숭해서 그런지 각종 사건 사고들이 교회 안에서도 자주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복이라는 이름으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하는 대형교회들에게 더욱 이러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름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뉴스들을 통해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내용들이지만 사건에 연루된 분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깜짝 놀라기도 하고, 분통해 하기도 합니다. 세상에 어찌 그런 일이 교회 안에 있을 수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하고, 자조 섞인 말투로 한탄에 가까운 전율을 느끼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할 일은 그러한 죄악이 우리들 심령 속에도 숨겨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죄의 경중을 따져서 판단하기를 좋아합니다. 다시 말하면 가벼운 죄가 있고 큰 죄가 따로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사회에서 이슈가 되어지는 큰 죄를 범한 사람들은 법률에 근거한 최고형에 처해야 한다고 말하고, 큰 이슈가 없는 범죄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인간이 바라보는 죄의 기준과 하나님께서 바라보는 죄의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라보는 죄의 기준은 작고 큰 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인간이 생각하는 것처럼 죄라는 것이 가벼운 것이 따로 있고 무거운 죄가 따로 있다면 거기에 합당한 체벌을 가하기 위해서는 죄의 경중을 따져서 지옥의 형태도 다양하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최후의 심판 때에 나타날 지옥의 형태는 단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판단하실 때 죄인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인간들은 죄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똑 같은 지옥에 처넣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죄인과 의인만을 나누는 것이며, 죄인은 모두다 똑 같은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의인 역시 모두다 똑 같은 천국을 상급으로 받습니다. 최후의 심판 때에 나타날 지옥과 천국은 인간의 행위 여하에 따라서 어떠한 죄인들은 고통이 덜한 지옥을 간다거나, 어떠한 죄인들은 고통이 아주 심한 지옥을 가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행위 여하에 따라서는 좋은 천국이 있고, 그보다 아주 더 좋은 천국이 차별적으로 나뉘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죄인들을 똑 같이 취급하시는 것은 모든 죄의 근원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욕심의 산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짓는 모든 죄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모든 죄가 한통속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남의 허물을 판단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사람들의 눈에 들어난 죄는 크게 바라보고 내 속에 보이지 않는 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자신의 허물은 아주 가볍게 여기고 남의 허물은 크게 바라보는 인간의 잘못된 시각을 하나님의 심정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어주신 주님의 사랑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남의 허물을 통해서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자신의 보이지 않는 허물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항상 겸손을 잃지 않는 신앙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 역시 여러 가지 상황과 여건들이 남들과 동일한 위치에 있었다면 우리의 욕심에 이끌리어 얼마든지 우리들도 죄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절대 그러한 일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지라도 같은 상황이 우리에게도 나타난다면 사단의 미혹은 우리들을 순식간에 나락으로 빠뜨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계하면서, 항상 죄의 품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악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러한 우리들의 허물을 용서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은혜 없이는 우리는 한시라도 죄의 그늘을 벗어 날 수 없는 우리의 존재를 하나님 앞에서 바라보는 사람이야말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참된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죄를 저지르고 비난받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바로 우리 자신들도 비난받아야 할 마땅한 죄인임을 깨닫는 자들이 심령이 가난한 자들일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고 말입니다.
주님은 눈에 보이는 죄 뿐만이 아니라 억누르고 나타나지 않은 죄까지도 바라보고 있음을 우리는 경계하고 있어야 합니다. 단지 억누르고 밖으로 표출하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롬 13:9).
이는 모든 계명을 다 지키고 한 계명만 지키지 않아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거부한 죄로 취급된다는 사실 속에서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심판은 죄의 경중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인정하는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의인과 받지 못한 죄인들을 갈라놓는 작업임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남의 허물을 용서할 수 있고 우리의 교만이 꺾어지고 낮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