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약화가 진짜 위기다
< 도지원 목사, 예수비전교회 >
“강단에서 허탄한 이야기 거둬내고 말씀 선포되어야”
올 여름 나는 휴가를 받아 오랜만에 다른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릴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찾아 간 곳은 신선하면서 동시에 성장하는 교회로 소문난 곳이었다.
나는 주일 아침 일찍 예배당에 도착하여 기대를 갖고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주보를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 교회는 주일 예배를 소위 구도자 예배로 드린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날 예배 중에는 드라마 공연이 있었고 이어서 설교자가 등장했다.
설교는 성경봉독 없이 바로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설교는 상당 시간 시사적이고 경험적인 이야기와 논증으로 채워졌고, 설교의 뒷부분에 가서야 몇 군데 성경 구절을 함께 읽거나 인용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야말로 청중의 필요에 초점을 맞춘 시의 적절하고 실용적인 설교였다.
그렇지만 예배가 끝나고 밖으로 나올 때, 나에게 든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만일 이런 설교를 매주 듣게 된다면, 그 성도들의 상태는 어떻게 될까?’ 그것은 현재 주목받는 교회에서 듣게 된, 그렇지만 말씀이 빈약한 설교에 대한 우려였다.
그로부터 수 주 후 나는 밤늦게 운전하다가 우연히 어느 목사의 방송 설교를 듣게 되었다. 그 분은 한국의 대표적인 교단에서 개혁적인 성향으로, 또는 교회를 크게 성장시킨 분으로, 또는 많은 책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분이었다. 나는 끝까지 설교를 들었는데 20분 정도 지난 듯싶었다.
그런데 그 분의 설교는 성경 한 두 절을 간단히 언급한 것을 제외하면 시종일관 자신의 인생 경험과 상식 수준의 논증으로 전개되었다. 거기에는 어떤 신학적인 내용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그 분의 설교를 듣고 난 후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설교란 무엇인가?’ 왜냐하면 그 분은 설교를 잘하기로 유명했지만, 정작 그 분의 설교에는 말씀이 희박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날 교회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의 약화라고 생각한다. 사실 설교는 많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어렵다. 홍수 때에 마실 물이 없다는 아이러니가 오늘날 한국 교회 강단에 그대로 적용된다. 이것은 성장하는 교회나 큰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설교자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앞서 내가 방문했던 교회처럼 주일 예배를 전도 집회로 바꾼 시도는 바로 그런 현실을 보여준다. 일찍이 오스 기니스는 이러한 하나님 중심적인 접근에서 사람 중심적인 접근으로의 변화를 이렇게 지적했다.
“교회 성장의 가르침이 수직적 차원에서 수평적 차원으로, 신학적인 것에서 실제적인 것으로, 예언자적인 자세에서 구도자 중심적인 자세로, 영원한 것에서 적실하고 현대적인 것으로, 예배 우선에서 전도 우선으로, 삶의 전 영역에서의 크리스천 제자도라는 우선 순위에서 교회 내에서의 영적인 사역이라는 우선 순위로의 전환을 보여준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설교자는 청중의 필요에 부응하는 설교를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설교가 얼마나 적실하냐의 여부다. 일단 이런 기준이 세워지면 설교에는 변화가 따라오게 마련이다. 교리보다 체험이 강조되고, 심리 분석과 그에 따른 치료 중심의 접근이 애용되며, 시사적이고 오락적인 비중이 증대된다. 결국 나타나는 현상은 말씀의 약화다. 나는 이것이 진짜 위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준 마지막 명령을 다시 생각할 때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 4:2-4).
우리는 교회 강단에서 허탄한 이야기를 거둬내고 말씀, 바른 교훈, 진리로 채워야 한다. 그 길만이 교회와 강단이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