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원, 미풍, 다시다?
< 김성진 목사, 늘소망교회, 수원노회장 >
“신앙은 생명 아니면 죽음을 가져오는 절대적 가치 기준”
어린 시절 내 기억에 의하면 미원은 조미료의 대명사였다. 미풍이라는 다른 조미료가 있었지만 미원의 독주에 경쟁이 되질 않았다. 사람들은 가게에 가서 조미료 달라는 말을 그냥 “미원주세요” 했다. 미원이란 말이 조미료라는 뜻이었다.
어린 시절 내가 받은 인상이 그랬다는 것이니 사실 여부는 지금 중요치 않다. 어쨌든 그후 미풍이라는 이름은 별로 들어보지 못했기에 그 회사는 문을 닫은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주 활발하게 사업을 하고 있었다. 미원의 절대적인 독주를 막고 살아난 방법은 다른 이름의 조미료를 또 생산 하는 것이었다. 제품의 종류가 많아지자, 단순히 두 가지의 제품이 경쟁할 때와는 달리 유일하고 절대적인 상품은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어떤 이름의 제품이 어떤 회사 것인지도 모르고 묻지도 않고 입맛대로 사게 되었다. 지금은 오히려 그 회사 제품이 더 잘 팔리는 것 같다.
난데없이 조미료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것이 시대상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제품 가운데 절대적이고 독보적인 것은 없다. 아무나 아무 것이나가 그 와중에 살아남는다. 그것이 종교와 진리 분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진리는 입맛을 돋우려는 조미료가 아닌데도 말이다.
최소한의 타당성과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기준이 있던 시대는 지나갔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면 그것이 의견이 된다. 나의 신념과 다른 사람의 신념을 비교해서도 판단해서도 안 된다. 교리를 남에게 주장해서도 안 되고, 받아들여야 할 의무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전도는 사회악이고 민폐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현대 세계의 모습은 암담하다. 모든 것을 상대화 하고 나니,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하나 딱히 어떤 것을 선택해야만 할 이유 또한 없어지고 말았다. 세상은 표류하고 있다.
레슬리 뉴비긴은 ‘가치’의 세계와 ‘사실’의 세계를 뚜렷이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가치라는 것은 개인의 선택 사항이다. 그러나 사실이라는 것은 누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어디까지나 사실이다. 현대 문화에서는 교회와 복음 전파는 당연히 ‘가치’의 세계에 속한다.
“교회는 선한 사람들이 지지해야할 ‘여러 선한 운동’의 하나로서 그런 지지가 없으면 금세 쓰러지고 말 것이다. 교회는 대체로 사실과 관련된 기관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세계를 다스리는 실재들과,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결국에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들과 무관하다는 뜻이다. 이런 문화적 분위기에서, 기독교 신앙을 자신 있게 선포하는 일은 자칫 자기 가치관을 남에게 강요하려는 교만한 행위로 비치기 쉽다.
교회가 자기 신앙을 이데올로기의 슈퍼마켓에 진열된 여러 브랜드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얌전하게 내놓는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진리는 사실의 문제다. 그것은 참 아니면 거짓이다. 예수께서는 부활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무덤에 있다.
둘 다일 수는 없다. 신앙은 실제로 생명 아니면 죽음을 가져온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반포하면서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다”고 했다. 그것은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도 심각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성경의 진리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진리다. 그리고 말씀의 의미도 읽는 사람이 각자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하신 분이 의도한 뜻이 있다. 오직 그것만이 참이다. 그리고 참이 아닌 것은 거짓이다. 생명을 가져다주지 않는 것은 죽음을 가져온다.
물론 누구도 자신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 두려움과 긴장을 피하기 위해 진리의 문턱을 낮추고 아무거나 허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자기를 용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바울도 자신이 온전히 이루었다고 여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들리는 얘기로는 미원, 미풍 전쟁을 벌였던 두 기업이 지금은 사돈지간이 되었단다. 재미있는 세상이다.
변변한 간식거리가 없던 어린 시절, 미원 가루 조금씩 입에 털어 넣고 그 희한한 맛에 키득거리던 그때가 그립다.
그래서인지 오늘날의 다원주의라는 말 속에 담긴 이상한 느끼함이 싫다. 우리에게는 절대 가치와 진리를 추구하는 생명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