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결혼인가? 중매결혼인가?_이주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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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결혼인가? 중매결혼인가?

 

< 이주형 목사, 오정성화교회, 부총회장 >

 

“합신과 장신과 합동 과정에서 상처 입은 동역자들 배려해주길”

 

남녀 두 사람이 서로를 어느 정도 알고 있을 때 지인의 주선으로 만나게 되었고 교제하다가 결혼하여 지금까지 12년 동안 잘 살아왔다. 그러나 때마다 일마다 터져 나오는 한마디 때문에 서로 불편함을 드러내고 주변의 형제들도 함께 편치 않는 모습들을 보게 되었다. 이유인즉 두 사람이 연애결혼인가? 중매결혼인가? 하는 문제 때문이다.

 

한 사람은 우리가 지인의 주선으로 만났으니 중매지 왜 연애라 하는가? 또 한쪽에서는 우리가 서로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지인의 연결은 형식이었으므로 연애결혼 아닌가?

 

이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연애든 중매든 그 형식이 그리 중요한가? 결혼하여 현재까지 잘 살고 있으면 됐지?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연애인지 중매인지는 확실하게 밝히고 가는 것이 올바른 역사 인식이 아니겠는가? 이런 부부싸움의 원인도 삼자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싸우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합신과 장신교단이 연합한지 12년이 되었다. 당시 교계 언론에서 사분오열 되어가는 현실에서 한국교회에 새로운 연합과 일치의 모델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12년 세월을 보내며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 된 모습으로 부부와 같이 형제애로 잘 지내왔다.

 

문제의 발단 원인은 “합신 30년사”가 발간이 되면서부터다. 역사의 자료집에 합동이 아닌 영입이며 교회수도 240교회인데 169교회로 기술되어 있었다. 옛 장신의 목회자들이 우려하는 마음으로 모였다. 역사를 기술함에 있어 오해와 왜곡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모으고 수정을 요청하기로 하고 1년여 동안 잠잠히 기다렸다.

 

이번 제97회 총회에서 총회치리협력위원회 보고서 안에 역사편찬위원회 수정초안과 임원회 수정안 두 안 중에 임원회 수정안이 통과되었다. 그 임원회 수정안은 다음과 같다.

 

<교단합동>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와 대한예수교장로회(장신) 양측이 2001년 4월 30일부터 8월 24일까지 수차례 모임을 갖고 신학과 삶과 개혁의 의지가 동일함을 확인하고 합동하기로 뜻을 모았다. 본 교단의 법에 따라 합동은 2년이나 3년의 절차가 필요하였다. 이를 위해 총회치리협력위원회와 전국 노회를 대표하는 임원들 50명이 2001년 9월 3일에 송파제일교회에 회집되어 장신 측과의 합동을 협의하였다. 그리고 제86회 총회(2001.9.18-20. 총회장 최홍준 목사)는 양 교단의 합동을 전제하고 장신측 240개의 교회를 영입하기로 결의하였다. 마침내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2001년 11월 6일에 감격의 예배를 드림으로 양 교단이 합동되었다.

 

이 내용을 기술하는 이유는 필자가 교단합동 추진위원회 장신대표 7인 중 한 사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한 증인이기 때문이다.

 

양 교단이 합동의 필요성은 충분히 인식했는데 문제는 2-3년 걸려야 하는 시간의 장벽이 있었다. 방법적인 면을 찾다가 영입의 방법을 선택하자 했을 때 장신측에서는 영입은 분명히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합동을 전제로 하되 형식만 영입으로 하는 합동에 준하여 개별심의 없이 노회에서 그대로 수용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장신의 동역자들 가운데 영입이라는 형식을 반대하여 60여 교회가 또 이탈하게 되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연합 감사 예배를 드리고도 노회에서 합동이 아닌 영입이라는 말로 인해서 상처를 받은 동역자들이 또 떠나는 아픔이 있었던 것이다.

 

합동과 영입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인가? 어떤 이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장신의 동역자들에게는 그 단어 하나 때문에 동역자들과 헤어짐의 아픔을 겪어 왔기 때문에 약자의 아픔이요 자존심이다. 결혼하여 잘 살아왔고, 잘 살아 보고자 하는데 마지막 남은 자존심 하나 지켜주지 못하고 건드려서 부부의 갈등을 유발시키는 그 마음은 하나 되고자 하는 마음은 아닐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아파하는 상처를 드러내서 더 아프게 하지 말고 서로 치유해주며 더 이상 과거에 연연해하지 말고 미래 30년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