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의 정체성과 신학자의 직무
< 이광호 목사, 실로암교회 >
“성경을 기초로 하여 판단하지 못 할 특수영역 없어”
우리 시대 한국 교회는 말하기조차 부끄러울 만큼 심각한 문제들을 가득 안고 있다. 교회가 이렇게까지 된 데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신학교의 직무 태만이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가 진리를 이탈하여 비성경적인 행태를 보인다면 신학교와 그에 속한 교수들은 마땅히 그것을 지적해야 한다. 그에 소홀하거나 무관심하게 되면 결국 지상교회는 세속화의 물결에 휩쓸리게 된다.
그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 시대의 신학교가 점점 세속화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 단계에는 신학자들이 교권의 눈치를 보며 시녀노릇을 하다가 점차 스스로 세속화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 가운데 다수는 세속적인 번영추구를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최근 들어 모 신학교 교수들이 학생들을 모집하기 위해 일반대학을 방문해 ‘입학설명회’를 개최하는 일이 있고 이런 현상이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이 문제될 것이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과연 그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신학교는 일반 학교와 달리 교회에 속한 특별한 기관이다. 그곳은 목사를 양성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교육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런 신학교가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일반대학을 찾아가 홍보한다면 기업이나 백화점의 고객 모시기와 무엇이 다른가? 교회를 위한 건전한 신학교라면 굳이 그런 억지 방법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신학교가 교회의 직접적인 의도와 무관하게 세상에서 탁월한 인재들을 발굴해 입학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신학교는 노회와 교회가 위탁한 목사 후보생을 말씀에 따라 양육하기 위해 힘써야 하기 때문이다. 신학교는 교회로부터 위탁받은 학생들을 책임 있게 교육시켜 다시 교회로 돌려보내 주어야 한다. 우리는 신학교가 세속적인 차원에서 실력 있는 학생들을 불러 교육시키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올바른 원리에 기초한 자세를 상실하게 되면 신학교의 기능은 변질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교회를 어지럽히는 비성경적인 사상과 교권주의적인 행태에 대해 냉철한 비판을 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신학교와 교단은 항상 상호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신학교가 교단의 세속화와 교권주의적 행태를 냉철하게 비평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신학적인 분명한 원리 위에 서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때문에 교단이 세속화되어 부패해 간다할지라도 신학교만은 말씀의 원리 위에 굳건하게 서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신학교가 세속화된 종교 기득권자들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멈추고 있는 것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교회 가운데 순수한 말씀선포가 이루어지지 않아 강단이 허물어져 가도 신학자들은 침묵하고 있다. 교권주의자들의 종교적인 타협에 의해 무분별한 강단 교류가 이루어져도 그것을 지적하는 신학자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교회에서 올바른 성례가 시행되지 않아도 그것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신학자들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성경과 교리에서 벗어난 의미 없는 성례가 되풀이되어도 그에 대한 아무런 지적이 없다. 군부대에서 교회를 배경으로 하지 않은 수천 명의 장병들에게 한꺼번에 무책임한 세례를 베풀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한국교회에서는 정당한 권징사역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 되었다. 교권주의자들이 부당한 징계의 칼을 휘둘러도 신학자들의 입은 굳게 닫혀 있다. 사악한 종교지도자들이 불신자와 같은 부정한 행위를 하며 교회를 어지럽히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신학 교수들은 원리적인 말조차 하지 않는다.
교회의 신학을 위한 신학교는 세속적으로 유능하고 머리 좋은 자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신학교는 교회에 속해 있으면서 교회를 건전하게 감독하는 직무를 감당해야 한다. 성경을 기초하여 판단하지 말아야 할 특수한 영역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신학자들이 정도의 길을 가기를 기대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성경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교회에는 더 이상 소망을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