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
원영대목사_경기서노회장, 부천평안교회
“남은 생애 이웃 위해 살겠다는 신념 돋보여”
박운서씨, 일명 ‘타이거 박’으로 알려진 그는 호랑이 같은 근성과 추진력
으로 유명한 전직 관료이자 거물급 기업인이었다. 행정고시 합격, 통상산업
부 차관 등의 공직을 지냈다.
은퇴 후 더욱 빛나는 사람
공직 퇴임 뒤에는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사장으로 부실 투성이었던 공
기업을 여봐란 듯 살려냈고, 데이콤 회장 시절에는 만성 적자이던 회사를 흑
자로 돌렸다. 2004년 은퇴할 때 와주십사 하는 곳이 많았으나 그는 거절했
다. 쉬고 싶었다. 그만하면 열심히 산 인생이라 자부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그런 그가 사라졌다. 바다 건너 필리핀, 전기 뚝뚝 끊기고
제대로 된 농기계 하나 없는 오지에서 논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
서 적어도 팔십까지는 건강히 살아야 할 이유를 비로소 찾았다고 한다.
그가 일하고 있는 곳은 필리핀 민도르섬 오리엔탈 민도르 남부 로하스
란 곳
이다. 그는 친구들과 골프하기 위해 필리핀에 갔다가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
다. 그가 사는 곳은 로하스에서 다시 비포장 도로로 2시간, 차에서 내려 3시
간을 걸어 들어간다. 산 속에서 그는 딴 세상을 본 것이다. 오래 전부터 거
주해온 원주민 망얀족이 사는 곳이다.
“다 같은 사람인데 왜 저렇게들 살아야 하나… 사람이 그렇게 살 수는 없
어요. 개처럼 돼지처럼.”
필리핀 사람들도 망얀족이라면 같은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먹는
건 바나나, 고구마, 소금 약간이 전부다. 댓잎이랑 야자나무 잎으로 얼기설
기 엮은 움집에 산다. 평균 수명 40세. 학교도, 경작할 땅도, 미래의 희망
도 없다 보니 사람들은 게으르고 의욕이 없었다. 답답한 가슴을 안고 돌아왔
다. 그는 깊은 묵상에 잠겼다.
“40년을 나와 가족을 위해 일했으니 남은 생은 이웃을 위해 살아도 좋다 싶
었어요.”
2004년 5월 다시 필리핀에 가서 ‘모리아자립선교재단’을 설립했고, 재단
이름으로 논 16㏊(5만 평), 그에 딸린 망고나무 밭 1㏊(3100평)를 샀다. 물
소 500마리를 끌어다 경지 정리에 나섰다. 폭풍에 쓰러진 망고나무로 그득했
던 땅도
깨끗이 손을 보았다.
농장 안에 300m 길이의 도로를 만들고 다리도 두 개 놓았다. 전문가 도움 없
이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뛰었다. 전주 9개를 세워 전기를 끌어오고 지하수
도 개발했다. 그 모든 일을 불과 6개월만에 해냈다. 첫 번째 쌀 농사에서 45
㎏들이 쌀 3400가마를 생산했을 때 주변의 농부들이 그를 주목했다. 그러나
포기하려고 세 번이나 보따리를 쌌었다고 한다.
이제 민도로에서 그는 유명인사다. 도와달라고 찾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금도 몇몇 교회며 학교, 망얀족 마을에 적지 않은 기부를 하고 있지만 그
의 생각은 확고하다.
“노 워크, 노 페이(No Work, No Pay). 일하지 않는 자를 거저 도울 수는 없
습니다. 전 농장 도로를 이용하려는 이들에게도 ‘공짜는 없다, 돌 하나라
도 날라 오라’고 주문해요. 진정한 자립이란 당장의 호구를 넘어 정신을 바
로 세우는 데 있으니까요.”
한시름 놓은 그는 요즘 또 새 사업을 구상 중이다. 중국 진항도에 하층민을
위한 자립 재단을 만들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뭐 팔십 살까지야 안 살겠습니까. 죽는 날까지 두 팔 두 다리, 놀리지 않
으렵니다.”
편안
한 노후를 위해 황혼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두 팔 두 다
리가 움직일 때까지 남들을 위해 봉사하려는 사람도 있다.
남 위해 봉사하는 삶 필요해
며칠 전 신문에 방지일 목사에 대한 기사가 났다. 방 목사는 이렇게 말했
다. “저는 녹슬기보다는 닳아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런 삶이 되기를 소
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