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바라시는 열매란?
이부기 목사_부산노회장, 영광교회
도심의 골목에 가끔 무화과나무가 잎이 무성하며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얼마 전 교회 옥상에 무화과나무가 언제 자랐는지 벌써 키가 크고 푸른 잎
을 내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무화과나무를 살펴보았는데
열매가 그렇게도 많이 총총 맺어져 있었다.
어느새 불쑥 자란 무화과나무
익기도 전에 호기심에 하나 따서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빨리 자라주기
를 기대하면서, 순간 마음속에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교회도
이렇게 많은 열매가 맺어지기를… 교회가 빨리 부흥되었으면 하는 마음으
로 몰아가고 있었다. 다음 주일에도 많은 성도들이 총총 들어 왔으면 하는
기대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목회자라면 누구나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아니
면 나만이 가지는 마음일까?
그 일이 있은 후 말씀을 묵상하는 중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요한복음 15
장 16절의 말씀이었다.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사역을
마치시면서 제자들에
게 3년 동안 말씀을 가르치신 후에 “내가 너희를 택한 목적이 무엇인 줄 아
느냐?”는 것이었다.
도대체 나의 사명은 무엇일까? 교회의 부흥일까, 큰 능력을 행하는 일일까,
죽은 자를 살리는 슈퍼맨 목사일까,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한 몸에 받는
그런 목회자일까…
무화과나무의 존재(存在) 목적은 오직 한 가지 열매를 많이 맺는 일이다. 무
화과나무가 자기의 존재 목적, 즉 열매를 맺는 일을 잊어버리고 잎사귀만 무
성하게 한다면 이 땅에 존재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
무를 저주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하나님의 창조 속에는 목적 없는 존재란 없다. 성경은 들풀과 참새 한 마리
의 삶 속에도 하나님의 뜻(design)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만물의 영장
인 인간 속에는 마땅히 그가 존재하는 목적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달리 표
현한다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그 뜻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수석(水石)이
나 동물보다도 못한 삶을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 크리스천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무얼까? 두
말할 것 없이 삶속에서 열매를 맺는 일이다. 왜냐
하면 열매 맺지 않는 나무
는 찍어 불어 던져 버린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불에 던져 버린다는 것이 무
엇일까?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인지 생각해 보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없
을 것이다.
이 땅에 존재하는 동안 우리는 누구나 쉽게 접근해서 열매를 얻을 수 있는
무화과나무처럼 살아야 한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에 대한 심판의 소리
(사 5:5-6)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크리스천들은 열매 맺기 위해 이 땅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아니 열매를 맺
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택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요 15:16). 분명 나무는
그 열매를 보아 안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교회와 우리 교단과 우리들의 교회
는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하는가? 아니 나는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하는가? 그리
고 얼마나 많이 맺어야 할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그 열매란 어떤 열매를 말하는가? 바로 사
랑의 열매이다. 주님의 사랑이 동반되지 않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뜻과
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큰 교회에 다니거나 목회를 하거나 작은 교회에 다
니거나 목회를 하거나 주님의 사랑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주님과 아무런 관
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다른 열매를 맺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 사실 사랑의 열매가 아
닌 다른 열매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
을 수 없다. 사랑의 열매가 맺혀지는 그 순간 우리의 삶에는 놀라운 하나님
의 은혜가 있게 될 것이다.
사랑의 열매 없다면 저주가 있을 뿐
이제 우리는 남은 생애 열심히 열매를 생산하되 때 없이 열매를 맺어 언제
어디서나 시장한 사람들이 원할 때마다 사랑의 열매를 내놓아야 한다. 잎사
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는 저주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