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성경’(sola scriptura)과 ‘전체성경’(tota scriptura)_박창욱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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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경’(sola scriptura)과 ‘전체성경’(tota scriptura) 

박창욱 집사·양의문교회

“철저한 개혁만이 교회를 회복할 수 있어”

얼마 전 가까운 분이 베이징의 ‘유리창’(琉璃廠 : 북경에 있는 유명한 골
동품 상가)에서 산 꽤 오래된 도자기를 깨트려버려 금전적인 아쉬움을 토로
한 적이 있었다. 

조선 근대 문화 공급처 ‘유리창’

몇 달 전까지 꽤 친숙한 지명이었음에도 쉽게 잊어버렸던 이 지명을 뜻하지 
않은 계기로 다시금 되새기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유리창하면 아쉬움과 
‘개혁’에 대한 미련이 새롭게 일어나는데 이것은 나도 모르는 일이다. 
18세기 조선의 지식계에 형성된 새로운 기운도, 우리가 실학이라 부르는 사
유의 기원들도 베이징의 유리창(琉璃廠)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면 몇 푼 금
전적 이해 관계가 별 의미 있겠는가마는 유리창은 단순한 골동품 가게가 아
니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고려의 금속활자는 2세기나 앞서 존재했으나 오

n늘날 우리나라를 벗어나면 고려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든 것이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최초일 뿐이다. 
최초의 발명자가 어떤 의도로 금속활자를 만들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중요한 
것은 고려시대의 인쇄, 출판 전체에 금속활자가 활용된 풍부한 사례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미완의 혁명가 삼봉(三峰) 정도전(1342-1398년)이 서적포를 설치하여 다량
의 책을 출간해 문예부흥을 꽤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의 생각은 세상으로 나
올 수 없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정도전의 정적인 태종을 거쳐 세종에 이르기까지 계미
자, 갑인자 등 다수의 금속활자가 개량되어 다량의 서적이 출간되게 만들었
지만 금속활자는 여전히 사대부의 전유물이었으며 기껏해야 성리학적 윤리서
(삼강행실도)와 사대부를 위한 주자대전(朱子大全)을 보급하는데 일조했을 
뿐이다. 이처럼 금속활자는 시대의 소명을 감당하지 못했다. 
호학(好學)한 군주 정조(1752-1800년)에 대한 관심이 우리 시대에 풍미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MBC드라마 ‘이산’ 때문은 아닌지, 혹자는 정조
를 일컬어 조선의 개혁 군주로 조선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군주로 정조를 근
대와 연결시키려는 시도에 집착한다. 그러나 그 역시 주자대전(朱子大全)의 
그 마르지 않는 거대한 호수에 갇힌 조선의 유림으로 ‘문체반정’을 주도
한 폭군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을 뿐이다. 정조는 율곡과 퇴계가 걸었던 
그 길에 서 있었다. 
주자(1130-1120년)의 주해(四書五經)가 국가를 경영하는 인재 선발의 척도
로 규정된 조선은 성리학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조선의 사림(士林)
은 최고의 도덕적 인간을 양성했고, 그 자신들부터 소학(小學)에 의해 의식
화된 도덕적 존재가 되어야 했고, 피지배층과 별도의 존재로서 사회적 습관
과 윤리적 모범을 창출했다. 
조선의 지배 계급을 위한 장치였던 성리학을 곱씹어 보노라면 ‘근대’적 모
티브에 충실한 르네상스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지
만 조선에 르네상스와 개혁의 기운을 불어넣은 것은 실학 사상가들이 아니었
는지 조심스럽게 평가해 볼 수 있다. 
베이징의 유리창은 조선의 굳어버린 상부 구조, 곧 ‘주자의 세계’를 타파
할 유일한 대안이자 근원지였다. 유리창은 조선의 르네상스를 갈구하는 많
은 지식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금속활자라는 뛰어난 지식의 매개를 가졌음에도 베이징의 유리창을 통해 서
적을 공급받아야 했던 18세기 조선의 지식인들의 비애는 그들이 집필한 서
적 속에 곧잘 묻어난다. 주자의 세계에 갇혀 해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
던 건조한 서적들… 사실 정조의 개혁은 그들만의 개혁이었다. 조선의 수많
은 백성, 그들의 일상과 동떨어진 ‘개혁’이었다. 
오늘날 교회 개혁을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우리가 그들을 신뢰하
지 않고 또 그들의 개혁에 기대하지도 않는 것은 다름 아니 동일한 이유 때
문일 수 있다. 그것은 거짓 개혁이기에 그러하다. 
개혁파 그리스도인은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그리고 이것과 짝
을 이루는 ‘전체 성경으로’(tota scriptura)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데, 
이것을 통해서만 ‘교회개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짝퉁 ‘개혁’에 혹시나 하는 미련은 버려야 한
다. ‘철저한 개혁’만이 진리의 기둥과 터로 교회를 회복할 수 있다. ‘오
직 성경, 전체 성경’을 통해서 말이다. 

명분 개혁 아닌 실질 개혁 이뤄야

누구를 위한 개
혁이고 무엇을 위한 개혁인지 이제는 분명히 해야 할 때가 되
었다. 말씀과 신앙고백으로의 복귀는 개혁 그리스도인의 당면한 의무요 책임
이다. 분리는 말씀과 역사적 개혁주의 신앙고백으로의 복귀를 전제해야 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