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뉴턴의 권면_변세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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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뉴턴의 권면

변세권 목사_온유한교회 

1787년 영국, 한 젊은 국회의원이 노예제도 폐지 법안을 작성하고 있었다. 
당시 영국은 노예매매가 골치 아픈 문제이긴 하지만 만일에 중단되면 경제
적 파산을 우려하는 상황이었으며 노예매매를 죄악시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노예매매 극성했던 영국

윌버포스는 “나는 노예매매를 폐지하기 위해 싸울 것을 굳게 다짐한다. 전
능하신 하나님은 내게 두 가지 과업을 주셨다. 그것은 노예제도의 폐지와 관
습의 개혁이다”라고 결심하고 50년 동안 거대한 의회의 반대와 폭력적 위협
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성취했다. 역사가 트레벨 얀이 그 일은 “세계 역사
상 가장 획기적인 사건 중 하나”라고 평가할 정도로 한 사람의 결심을 통
해 영국과 유럽의 역사 전환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윌버포스도 한 순간 자신의 정치 소명을 잃을 뻔했던 때가 있었다. 
그의 나이 25세, 그는 정치를 포기하고 목회자의 길을 걷고자 고민하고 있었
다. 그때 당시 노예 상인으로 살다가 회심하여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
신…”을 작사했던 존 뉴턴이 윌버포스를 설득했다. 하나님께서 그가 목회
자보다 정치인으로 남기를 원하신다고 말했다. 
“나는 주님이 국가를 위해 일하도록 당신을 세우셨다고 믿고 있으며 또 그
렇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윌버포스는 많은 시간을 기도하고 뉴턴의 권면이 하나님의 소명임을 깨달았
다. 만일에 존 뉴턴의 권면이 없었다면 영국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소명(Call)은 구원과 동의어다. 소명(부르심)은 이중적이다. 그리스도를 따
르는 자로 부르신 일차적 소명과 가정 주부로, 법조인으로, 교사로, 직장인
으로 부르셔서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게 하시는 이차적 소명이 있다. 하나님
께서는 다양한 직업으로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셨다. 
그러나 윌버포스의 경우처럼 우리는 자신에게 주신 소명을 잘못 판단하고 엉
뚱한 길을 걸으려 할 때가 많다. 찰스 스펄젼은 목회 사역의 소명에 대해 이
렇게 말했다.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느끼십니까? 피할 수 있는 데까지 피해 보십시오. 그
것이 가능한 한 소명이 아닙니다.” 
그렇다. 거룩한 소명을 느끼지 못한 사람이 외로운 광야에서 
한 사람을 준비
하시는 하나님의 영적인 훈련을 감당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진리로 섬기고자 하는 타오르는 열망과 잃어버린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영
혼의 연민과 그 일을 위하여 자신을 바치는 것밖에는 더 이상의 소망이 세상
에는 없다고 믿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거룩한 결단이 그의 의식 세
계 속에서 확인되는 사람만이 그 길을 가야한다. 
소명 받지 않는 세속적인 사역자가 하늘로부터 보냄 받은 사람인 것처럼 자
신을 위장하는 것처럼 어려운 게 없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필자도 목회
를 하다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거나 열매없는 사역의 결과를 볼 때 
“나는 아닌가 봐! 내가 정말 하나님이 허락한 종일까?”하며 소명이 흔들
릴 때가 있다. 
혹 주님께서 부르신 1차 소명자가 아닌 것 같고 내가 자원하여 2차 소명으
로 이 길을 가는 것 같은 불충한 사역자 같아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2차 
자원 소명자라 목회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이 들 때도 있
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첫 번째 부름은 철이 없어서 주님을 실망시켰다 할
지라도 두 번째 소명만큼은 그렇게 살고 싶
지가 않다.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
게 쓰실지 모른다. 
우리는 주님께서 그 모든 사람에게 맡기신 일이 다르며 또한 일을 맡기는 시
기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과 
베푸시는 구원에 동참한 사람이다. 

최후 한 사람을 위한 목회

우리 안에 들어있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비롯한 최후의 한 명까지도 구원
해 내기 위하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찾아 들어가는 목자의 심정을 가지
고 목회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목회! 그래도 해야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