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기억 하나
< 강승주 목사, 섬기는교회 >
“적당히 때우며 관록과 재주만으로 목회 하는 일 없기를”
꼭 30년 전, 합신 1학년 첫 학기에 강의실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난다. 물론 오래된 기억이라 이야기의 자세한 내용은 다를 수 있겠지만 느낌만큼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는 남서울교회에서 공부하던 시절이었는데, 교수님께서 강의 도중에 건너편에 보이는 한 호텔의 가격이 얼마인지 물으셨다. 정말 값이 얼마인지 물어볼 리는 만무하고 뭔가 의도가 있어서 그러는 것 같아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답답하셨는지 그냥 바로 말씀해주셨다. 천 원보다는 비싸고 천억 원보다는 싸지 않겠냐고 하셨다. 그 순간 우리들은 모두 웃었다. 다들 황당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다음 말씀이 가슴을 후비고 들어왔다.
가격을 말하려면 이렇게 하면 안 되고 각종 데이터를 동원해서 5백억 원쯤 된다고 말하면 훨씬 설득력이 있는 것인데, 우리가 설교자로 말씀을 대하는데 안타깝게도 늘 이런 식으로 대한다는 것이었다.
교수님의 말씀은 본문이 말하고 있는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전해야 하는데 두루뭉술하게 맞긴 맞지만 정확하게 딱 맞는 말씀을 전하지 못하는 설교자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었다. 그동안 들었던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은데도 이 이야기만큼은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누구든지 딴 짓 하지 않고 나름대로 오래 목회한 사람이라면 그동안 받았던 도전과 훈련만으로도 성경을 큰 오류 없이 전한다고 자부할 자신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합동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목회자라면 더욱 그렇다
요즘에는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 설교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무척 많다. 안타깝게도 수없이 많은 설교들 가운데 본문을 정확하게 이해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어쩌다가 한두 편에 지나지 않는다. 놀랍게도 유명하다고 하는 분들에게서도 그런 모습을 자주 본다. 꼭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설교해서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겨야 유명해지는 것만은 아닌가보다!
지난 총회 기간 중 드렸던 한 예배 시간에 평소 존경하던 증경 총회장님 한 분이 말씀을 증거하셨다. 말씀을 들으면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분은 누가 봐도 그 본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주해를 근거로 작성된 설교 원고를 들고 강단에 서셨음이 분명했다.
그 연세에도 그렇게 하신다는 것에 자극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그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지 않아 진심을 확인해볼 수 없었지만 굳이 확인이 필요하겠는가? 같은 목회자로서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무엇이 있지 않은가?
목사이기 때문에 말씀을 들고 설교자로 선다. 그리고 반문해본다. 성경을 대충 읽고 그냥 알고 있는 상식선에서 설교할 것인가? 아니면 치열하게 본문에 들어있는 주님의 의도를 알아내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그 결과물을 들고 강단에 설 것인가?
우리는 성경 말씀의 토대 위에서 목회를 한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설교하며 사람들 앞에 선다. 그런데 솔직히 목회 하는데 제일 방해 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우습게도 성경이 아닌가 생각된다.
성경을 읽긴 읽되 본문 해석에 연연하지 않고 몇 마디 필요한 말들만 인용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한다면 참 편하고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주님보다 앞서며 주님의 뜻을 곡해하는 것이 두렵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적당히 때우며 관록과 재주만으로 목회를 하다가 일선에서 물러나는 날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고백하건대, 며칠 전 설교하다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본문 내용이 눈에 들어와 당황했었다. 솔직히 이런 기억이 없거나 있더라도 아주 드물었으면 좋겠다. 사실 생각보다 이런 사고를 많이 치는 편인 것 같다.
그럴 때는 반드시 반성을 하지만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면 똑같은 잘못을 자주 되풀이한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설교자가 되려면 한참 먼 것 같다. 그래도 주님께서 30년 전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나름대로 반성하게 하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싶다. 언젠가는 하나님의 의도에 아주 근접한 말씀을 근사하게 전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하며 다시 성경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