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천주교와의 ‘교류’ 및 ‘영세’에 대한 우리의 이해
< 박동근 목사, 강변교회 교육목사 >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언약의 표를 ‘거짓교회의 불결한 손’도 소멸치 못하였다!”
<들어가는 말>
최근 한국 사회와 한국 교계는 로마 천주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8월 14일부터 18일까지의 4박 5일의 그들 수장의 한국 방문은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 사회와 교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모든 언론이 그의 일정을 대서특필했고, 로마 천주교 신자들은 열렬히 그의 방환을 환대했다. 반면 개신교 내부에서는 로마 천주교의 신학과 신앙에 대한 입장 차이로 갈등을 보이기도 하였다.
제99회 예장합동 총회에서는 로마 천주교가 이단이라는 입장을 공교히 하고, 로마 천주교의 영세를 인정하지 않기로 결의하였다. 반면 예장통합 총회는 로마 천주교를 단지 전통이 다른 교회로 규정하기로 결의하여 예장합동 총회의 결의와 상반된 태도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개신교 내에 일반 성도들 안에서도 로마 천주교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에 대한 혼돈이 있는 것 같다.
이에 필자는 ‘로마 천주교에 의해 시행된 영세’를 인정할 것인가 부정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통해, 로마 천주교에 대해 개신교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신앙고백 앞에서 합당할지를 숙고해 보고자 한다.
로마 천주교에 대한 입장 정립은 개신교 자체에 몹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종교개혁이 로마 천주교에 대한 신앙적, 신학적 판단으로부터 기원했으며, 로마 천주교에 대한 이해가 개신교의 신학과 신앙 정체성 이해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즉, 종교개혁의 정체성은 로마 천주교와의 논쟁의 정황에서 정립되었다. 따라서 로마 천주교에 대한 판단이 정서적 접근이나 단지 교세 경쟁의 측면에서 다루어져서는 안 되리라 생각한다.
필자는 로마 천주교에 대한 교회의 태도가 어떠해야 할지를 종교개혁의 선구자이며 개혁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교사로서 존 칼빈(John Calvin)의 가르침을 통해 숙고해 보려 한다. 필자는 이 주제를 ‘로마 천주교에 의해 시행된 영세를 인정할 것이냐 부정할 것이냐’의 질문 속에서 다루려 한다. 로마 천주교와 영세의 문제에 대한 칼빈의 입장을 다룰 때, 세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첫째, 칼빈은 로마 천주교를 참 교회로 보았나 거짓 교회로 보았는가?
둘째, 칼빈은 왜 로마 천주교의 영세를 세례로 인정하였는가?
셋째, 칼빈의 로마 천주교로부터의 분리는 교회 일치의 문제에 있어서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것일까?
이 논증의 목표는 ‘로마 천주교의 영세를 세례로 받을 것인가’라는 문제 안에서 로마 천주교를 어떻게 규정할 지를 존 칼빈의 가르침 안에서 통찰하는 것이다.
1. 칼빈은 교회의 표지를 근거로 로마 천주교를 거짓 교회로 규정했다.
칼빈은 로마 천주교의 영세를 세례로 인정한다. 왜 그가 영세를 세례로 인정했는지는 차후에 다룰 것이다. 이번 예장합동 총회 결의는 로마 천주교가 이단이기에 영세를 부정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우리는 몇 가지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이러한 생각은 칼빈이 영세를 세례로 인정한 것이 로마 천주교를 참 교회로 인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빈은 로마 천주교를 결코 참 교회로 인정한 적이 없고, 그런 이유로 그들의 영세를 세례로 인정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칼빈에게 있어 영세를 세례로 인정하는 일은 로마 천주교를 교회로 인정하는 일과 무관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영세 인정이 로마 천주교 인정과 인과 관계에 있지 않다. 이 문제는 후에 다루기로 하고, 우선 우리는 칼빈이 로마 천주교를 참 교회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가 어떠한 근거로 이러한 판단을 내렸는지를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칼빈에게 로마 천주교는 왜 거짓 교회로 규정되었을까? 이에 대한 근거는 교회의 표지(the Marks of the Church)에 있다. 칼빈은 교회가 그 표지에 의해 ‘얼굴’을 가지며, 그 얼굴에 의해 눈에 보이게 된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가견적 교회(visible church) 안에 표지를 두셔서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분별할 수 있도록 하셨다. 표지는 두 가지로 ‘말씀 선포’와 ‘성례’이다. 이 표지를 잃어버린 곳에 교회의 형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도덕적인 문제와 흠이 있어도 이 표지가 존재하는 한, 그곳에 교회의 형태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칼빈은 도덕적 완전성을 내세워 표지를 가진 교회를 부정한 카타리파, 도나투스파, 재세례파를 정죄한다. 교회에도 용서가 필요하며, 용서 안에서 완전한 목표를 추구한다. 칼빈에게 교회가 참 교회되는 것은 교회의 표지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로마 천주교를 교회로 볼 것이냐 아니냐의 판단 근거는 이 표지가 로마 천주교 안에 존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귀결될 것이다.
칼빈에 따르면, 로마 천주교는 말씀 선포의 표지를 잃었다. 말씀의 표지란 성경과 성경이 가르치는 중요한 교리(praecipua religionis doctrina), 모든 신자들이 인정해야 하는 신조들(religionis capita)을 포함한다.
칼빈에게 로마 천주교는 필수적인 교리의 핵심(summa necessariae doctrinae)과 성례(sacramenta, 영세만이 세례의 형태를 유지)가 파괴되었다. 교황 제도는 성경 위에 군림하고, 교회의 오직 하나인 머리, 그리스도의 지위를 가로챘다. 교황은 신자들의 양심을 주재하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의 표, 성례의 순수성을 빼앗고, 두 가지 표지를 부패시켰다.
칼빈은 성경을 따라 교회의 기초(Ecclesiam fundatam)가 사도와 예언자들의 교훈 위에 있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칼빈에게 “교회의 모퉁이의 머릿돌”은 그리스도시다(엡 2:20).
삼위일체를 인정한다고 하여 그들이 온전한 교회의 형태를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뿐, 그 하나님께서 예배와 경배와 찬양과 섬김을 받으시며, 그 백성들을 통치하시는 진리의 표준인 선지자와 사도들의 교훈을 버리므로, 자신들이 부르는 하나님을 모독한다. 교황과 천주교의 전통은 성경 위에 군림했고, 성도들의 양심을 속박했다. 이와 같이 부패한 성경관은 교회의 교리를 부패시켰고, 구원과 예배를 인간의 유전과 미신으로 부패시켰다.
칼빈은 로마 천주교의 교리와 예배와 직제의 부패를 여로보암 시대의 극심한 우상숭배에 비유한다. 교회의 표지가 파괴된 로마 천주교의 상태를 칼빈은 이렇게 비유한다. 교회의 표지 파괴는 “목을 찔리거나 심장에 치명상을 입은 사람이 죽은 것과 같다.”
로마 천주교는 근본 교리를 떠났고, 공중집회는 우상 숭배로 부패되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지만, 그의 이름을 성경을 떠나 자의적으로 숭배하므로, 부패된 교리를 통해, 미신을 통해 오염시켰다.
칼빈은 로마 천주교를 적그리스도, 거짓 교회로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말씀의 표지가 파괴된 거짓 교회는 “그리스도의 으뜸 되는 대적”이면서 “교회의 이름으로” 참된 교회를 괴롭히고 위협한다.
칼빈이 로마 천주교를 어떻게 규정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분명히 로마 천주교를 교회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호를 부르면서도 사도와 선지자의 교훈, 성경과 근본적인 교리들을 떠났고, 성례는 부패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한다는 것은 그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의 중심이신 그리스도를 대적함을 의미한다. 말씀을 떠나, 바른 교훈을 떠나 그리스도를 숭배하는 것은 그를 모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 로마 천주교를 거짓 교회로 규정한 칼빈은 왜 영세를 세례로 인정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칼빈은 로마 천주교를 교회로 인정하여 영세를 세례로 인정한 것이 아니다. 칼빈에 따르면, 로마 천주교에는 교회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 진술에서 중요한 것은 남은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 남은 것은 지금까지 칼빈이 신랄하게 비판한 것들에 대한 일종의 타협적인 발언이나 비일관적인 번복이 아니다. 그가 남았다고 말하는 것은 로마 천주교에 하나님의 기적 안에 남겨진 ‘남은 자들’과 아직 하나님께서 애초에 주신 형태를 남기고 있는 ‘세례’를 의미한다.
로마 천교회의 영세는 세례의 원래적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로마 천주교의 영세는 로마 천주교 체제와 무관하게 하나님께 기원을 두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것의 부패를 막으셨다.
따라서 로마 천주교의 합법성 때문에 영세가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의 기원과 그분의 보호하심에 의한 그 형태 보존 자체 때문에 세례로 인정된다. 칼빈의 말을 들어 보자.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과 언약을 한 번 맺으셨으나, 그것을 보존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언약이 그 자체의 힘으로 그들의 불경건과 싸우면서 생명을 유지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언약이 그들 중에 존속한 것은 확실하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한 것이다. 그들의 배반은 주의 진실을 말소할 수 없었고, 비록 그들의 불결한 손이 할례를 더럽혔을지라도 그것은 여전히 여호와의 언약의 진정한 표징이며 거룩한 성례였다.”
로마 천주교의 교회 인정과 부정의 문제는 영세 인정의 문제와 인과 관계를 갖지 않으며 무관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 천주교가 이단이기에 영세를 세례로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는 신학적 문제를 가져올 수 있고, 역사적 개혁신학의 판단과도 맞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가 옛 재세례파나 도덕적 완전주의자들의 오류를 반복할 수 있기에 위험하기도 하다.
성례는 언약의 표지이다. 그러므로 성례는 하나님의 말씀 선포와 그리스도께 묶여 있다. 성례는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주신 약속에 대한 표지요 약속으로부터 받은 은총에 대한 확신의 표지이다. 성례의 효력은 집례자의 능력이나 성례 자체의 마술적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은총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영세에 남겨진 세례의 형태는 로마 천주교로부터 기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요, 언약의 표의 형태를 유지하신 것도 하나님이시니 그 형태를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칼빈의 말을 빌리면, 비록 불결한 손으로 집행된 영세라 할지라도, 그 영세의 형태는 하나님께서 주신 세례의 형태이므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을 구분해야 한다.
그러므로 로마 천주교에서 누군가 개종한다면 세례 자체는 인정해주고, 그의 신앙고백을 점검하여 참된 교훈을 가르친 후 교리적 전향을 전제로 영세를 세례로 인정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마치는 말>
결론적으로, 참된 신앙고백 안에만 참된 일치와 연합이 있다. “주의 말씀을 떠나서는 신자 간에 일치가 없다”는 칼빈의 가르침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칼빈도 그랬듯 우리도 로마 천주교가 회복되길 소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로마 천주교와 연합은 로마 천주교가 그들의 잃어버린 교회의 얼굴인 표지를 회복할 때만 가능하다는 전제를 유지해야 한다.
칼빈은 로마 천주교를 거짓 교회로 규정했고, 오늘날 로마 천주교는 전혀 ‘말씀 선포’와 ‘성례’의 회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예장통합이 진리의 일치를 배제한 사랑의 연합을 주장하는 일은 위험해 보인다.
한편 예장합동처럼 로마 천주교가 거짓 교회라는 사실을 영세 부정과 인과 관계 속에 놓는 일도 위험하다. 왜냐하면 옛 종교개혁자들을 괴롭혔던 도덕적 완전주의자들과 재세례파의 망령을 불러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혁교회의 교훈을 따라 로마 천주교와 세례의 문제는, 불결한 손으로 집행되었지만 하나님께로부터 기원한 언약의 표의 형태를 영세가 가지고 있으므로 교리적 전향을 전제로 영세를 세례로 인정하자는 방향으로 인식됨이 합당하리라 본다.
이상에서 살펴본 결과 로마 천주교는 거짓 교회라는 점을 유지하면서, 영세를 세례로 인정하는 것이 개혁교회의 신학적 입장에 가장 일관된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