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석좌교수 특별강좌> 한국교회 목회자의 길_박영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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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목회자의 길

 

< 박영선 목사, 남포교회, 합신 석좌교수 >

 

발췌 : 노승수 목사

이 원고는 10월 6일 합신 목회자연장교육원 주최로 합신대강당에서 ‘한국교회 목회자의 길’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석좌교수 특별강좌의 내용을 요약, 발췌한 것입니다.<편집자 주>

 

삶에 허덕이며 짜증내는 성도들 앞에서 그리스도처럼 짐을 지고 가는 것

 

목회란 하나님이 일하시는 성육신의 방법을 잇는 하나님의 지혜요 방법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 묶이고 엮여서 드라마를 써가는 것이 목회이다.

 

삶의 현장을 떠날 수는 없어

 

하나님은 스스로 지심으로 자신의 명예로 삼으시고 우리에게 항복을 받으시는 것처럼 목회란 그런 것이다. 복음서에서 그리스도는 수없이 목회를 해오셨지만 복음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무도 그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것이 목회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부부관계로 종종 설명한다. 부부간의 맺어짐은 세상에서는 진심과 열정의 문제이지만 기독교에서 부부가 되는 것은 사랑에 조건 지어져 있지 않고 믿음에 조건 지어져 있다. 사랑이 아니라 믿음이 필요충분조건이다. 목회 역시 사랑이 아니라 믿음이 필요충분조건이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목회이다.

 

목회자들의 공통적인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분노와 억울함이다. 우리가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이렇게 수고하건만 이 무슨 어이없는 현실인가 하는 자괴감과 분노가 우리를 지배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바닥에 내려놓으신다. 그것이 주님이 가신 길이다.

 

우리는 그 조건에 묶여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헤게모니(주도권)를 잡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 처분되도록 맡겨지는 것, 그것이 주님이 가신 길이요 목회의 길이다. 백성들의 분노의 대상이 되는 그리스도처럼 목회자의 길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삶에 허덕이는 것에 짜증을 내는 성도들 앞에 그리스도처럼 자신의 짐을 지고 가는 것이 목회이다. 목회는 딱 떨어지는 답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다.

 

묵묵히 처분을 따라야 할 뿐

 

목회자의 명예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 조건과 세상의 도전이 요구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데 있다. 예를 들자면, 벤허라는 영화에서 찰톤 헤스톤의 존재감 없는 존재로서 영화를 빛낸다. 주인공이 너무 멋있으면 스토리를 좇아갈 수가 없다. 우리는 본문이 아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 본문의 스토리를 드러내는 것이 목회이다. 그래서 존재감 없는 주인공 벤허 때문에 그 스토리가 빛이 난다. 목회자의 명예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목회는 주인공이지만 스타가 아닌 삶이다. 스토리를 엮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다. 역사라는 무대 위에 서서 자기 자리를 살아내는 것이 목회이다. 우리가 묶여 있고 맡겨진 길을 가는 것이 얼마나 진지한 스토리를 만드는지를 모르니 자기 자신을 살지 못한다.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그렇게 던져진 존재이다. 그것을 견뎌내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묶고 있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조건이다.

 

역사의 스토리를 써 가야

 

시편 150편 17-22절을 보면,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였도다 그를 그의 집의 주관자로 삼아 그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게 하고 그의 뜻대로 모든 신하를 다스리며 그의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시 105:22)라고 노래한다.

 

이 본문은 요셉의 생애를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는데 한 번도 주어가 안 되고 수동태 목적어로 사용되고 있다. 요셉의 생애에 재미있는 점은 한 번도 긍정적인 선택을 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때까지 그는 묶여 있다. 그는 늘 몰려서 무엇인가를 했다. 성경은 전부 수동태로 말하고 있다. 팔려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그 형들은 그를 팔아먹고 죽이려고 한 것으로 구원을 얻는다. 그것이 주님이 가신 길이고 그것이 목회의 길이다.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나날들로 분노와 억울함 속에서 총리가 된다. 총리 수업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서 총리가 되었다. 목회의 길도 그런 것이다. 우리가 선택하고 우리가 결정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에 묶여 있다. 이 시대에 묶여 있고 정반대의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자리에 서 있는 것이 목회이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위해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시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신 그 방법 그것이 목회의 길이다. 마치 요셉이 자신의 꾼 꿈과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뜻하신 바를 이루는 것처럼 견딜만하거나 이해할만하지 않다. 목회의 길에서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그 길을 가신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길은 다르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이신다. 그것이 목회의 길이다.

 

반면에 우리는 할 수 있다면 멋있게 폼 나게 살려고 한다. 그때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나중에 후회할 일도 포함이 된다. 그래서 후회 없는 삶을 살려고 강박적으로 시도한다. 이런 이유에서 자신의 삶에서 잘못했던 과거를 회개로 씻어버리려고 한다. 없애려는 이유는 잘못한 것은 필요 없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에 필요 없는 것이 없다. 자기가 자기를 저주할 수밖에 없는 자책을 지고 사는 것이 목회다. 그 앞에서 분노와 자책을 견딜 방법이 없다. 그것을 따뜻한 눈으로 보라.

 

분노와 자책도 감수하길

 

하나님은 우리를 못난 대로 갚지 않으신다. 묵묵히 견뎌내는 것이 목회요 목회자의 길이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 목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