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안수 논의에 신중하라
김재성 교수
최근 한국교계의 지도적인 장로교회 합동측과 성결교단에서 여성들
의 목사 안수를 가능하게 하고자 교단의 규칙을 수정하려는 입장에서 움직이
는 발언들이 자주 나오고 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과 관련하여 기독교계의
심각한 우려를 전달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여성안수를 가능하게 만들려는 진정한 의도가 과연 무엇인가
를 묻고 싶다. 과거에 하지 않던 여성안수를 주장하고 있는 목사들이 신학적
수정 혹은 변혁을 한 것이라고 한다면 좀더 정확하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밝혀
야 할 것이다.
세속화된 풍조의 흐름에 영향을 입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은 다원
주의 사회,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전개되는 ‘해체주의’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들은 수 천년 전에 세워진 전통적인 제도와 관습을 해체시켜 버리
고, 새로운 질서를 강조한다. 그래서 전통적인 관례를 답습하는 사람들을 수
구주의자들이라고 공격하고, 그런 자들은 성공하거나 살아남기 어
렵다고 강조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기독교의 기본진리 가운데서 그대로 영원토록
지켜야 할 것이 남아있겠는가?
쉴라이에르 막허 이후로, 서구 유럽에서 발전시킨 구자유주의 신학
자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성경의 영감과 권위는 파괴되고 손상되고 말았다. 예
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 부활과 승천이 문자 그대
로 이루어진 사실 등을 믿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한 신학의 세속화는 결국
해방신학, 흑인신학, 민중신학, 여성신학, 영성신학 들을 줄줄이 발전시켜 나
왔고, 몇 교단들이 여성목사 안수를 채택하게 되었다. 이런 현대 신학들은 인
간의 필요를 따라서 인간의 문화와 사회에 도움을 주는 것을 세우고자 노력
한 ‘환원주의 신학’을 생산하였다. 인간의 정서와 마음에 맞는 인본주의적인
세속화 신학이었다. 이들은 성경의 가르침보다는 인간의 필요성을 더욱 더 우
선시 하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가히 여성정치인들의 시대가 한국사회에서도 열리
고 있다. 거의 모든 세상의 영역에서 여성들의 탁월함이 인정받고 있는 시대
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풍조를 따라서, 교회에서도 여
성 목사의 시대로 가
야하는가? 과연 교회가 성경 위에 서야 하는가 아니면, 세상의 필요성을 따라
서 영합해야 하는가?
둘째, 여성신학의 영향으로 인한 한국 신학의 세속화를 염려한다.
성경에 근거한 목사제도를 확고히 지켜야 할 교단들이 여성안수를 논의하고,
특히 한국의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목회자 몇 분이 매우 의도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심각한 교회의 세속화를 몰고 올 것이다. 목회자들 중에는 신학논
쟁에 관해서 매우 관용적인 분들이 많다. 철저한 신학적 검증을 거쳐서 세워
진 확고한 성경관에 입각하여 세워진 근본진리들을 예민하게 분별하기보다는
영혼을 건져내는 일에 몰두하다보면, 너그럽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러기에 신학적인 문제에 대해서 목회자들이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
은 금물이다.
목회적인 동기에서 나오는 것이라 하더라도, 여성안수 문제를 일종
의 낭만주의적인 발상에서 접근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심각한 신학적 세속화이
다. 이미 유럽의 교회나, 미국의 교계에서 충분히 입증된 것이다. 한 두 명
의 영향력 있는 목회자들이 나서서 교단 내의 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은 엄청난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직분론은 교회론에 속한 것이며, 창조
질서에 관련된 것이다. 네 가지 교회직 (목사, 박사, 장로, 집사)을 회복시
킨 칼빈은 직분론이야말로 성경에 입각한 교회를 세우느냐 무너뜨리느냐를 결
정하는 매우 핵심적인 교리라고 강조한 바 있다.
셋째, 여성안수논쟁은 교단의 분열과 한국교회 전체의 양분화를 초
래할 것이다. 최근 (1995년) 미국 기독교 개혁교회가 여성안수 문제로 분열되
었다. 정통보수주의 신학을 표방해온 ‘칼빈신학대학원’의 교수진이 분열하
고, 결국 교단내 안수 반대파에 앞장 선 보수적인 분들이 소수로 밀려나서 연
합개혁교회를 세웠다. 미국 개혁주의 장로교회 연합회에서는 이를 심각한 진
리의 훼손으로 생각하고 몇 차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였고, 지금은 여성안수
를 허용한 ‘기독교 개혁교회’와의 강단 교류를 금하는 문제를 고려하고 있
다. 신학의 세속화는 교단의 분열로 귀결된다. 장차 우리 한국교회가 당할 심
각한 혼란과 대립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고린도전서 14장 34절은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시오, 여자들에
게 말하
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다”고 말씀하였다. 이 성경 구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여성안수를 주장하는 분들은 이 구절이 과연 삼위일체론이
나 구원론이나 기독론처럼 중요하냐고 반문한다. 그러한 안이한 인식은 성경
이 가르치는 교리들을 대하는 기본자세가 잘못되어 있음을 반영한다. 자기 마
음대로 어떤 구절들은 소중히 여겨서 따르고, 시대에 따라서 편리하게 어떤
구절들은 재해석하여서 마음대로 바꾸어도 되는 것인가?
한국교회가 성경적인 신앙을 순수하게 지키고자 노력하면서, 엄청
난 희생을 치르고 신사참배 거부 (일부에서는 국민의례라고 묵인함), 세계교
회 협의회 불참선언 (1959년 총회분열) 등을 겪으면서도 건전한 개혁주의 신
앙을 세워왔는데, 이제 3세대 지도자들이 물러나야 하는 마당에 선진들의 신
앙을 하루아침에 바꾸려 하는 것은 심각한 교회의 퇴보를 의미한다.
왜 지금에 이르러서 그러한 문제를 거론하는지?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이유는 무엇인지? 과연 주님을 위한 것인지? 결과에 대해서 과연 누가
책임을 지게 될 것인지? 등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성안수 문제가 그토록 절
박한 것이라
고 생각된다면, 이미 여성안수를 허용하는 교단들이 있는데 그리
고 가서 활동하면 될 것이 아닌가? 왜 건전하게 지켜온 성경적 직분론을 흩트
려 놓으려 하는지 묻고 싶다. 교단과 교계에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고자 하는
그 저의가 과연 무엇인가? 영웅심인가? 자신의 영향력 과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