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예배를 주도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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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예배를 주도해야 하는가

김재성 교수 / 합신

현대 교회의 예배 형태가 급속히 변모하고 있는 이 시대에, 음악 
순서로 예배의 주요 부분을 형성하는 경향이 늘어나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 모
습인가? 예배는 창조주되시며 구속주 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바라보면서 모
든 영광을 돌리는 시간이다. 하나님 중심의 예배 정신을 지켜나가면서 기도
와 찬양과 말씀과 헌신의 순서들을 진행하는 것이다.

교회의 예배가 해야할 진정한 소임은 언제나 변할 수 없다. 하나님
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높이는 일이다. 요즈음 개혁주의 신앙을 
갖고 있는 교회들도 ‘복음송가’와 ‘찬송가’를 혼용해서 부르고 있고, 악단의 
수준에 버금가는 악기를 구입하여 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상은 미국의 대중문화가 바뀌면서 형성된 현대 예배의 변천
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미국 초대형교회의 상당수가 음악에 큰 비
중을 두고 있으며, 이런 방법론이 한국교회에 많이 소개되고 있다. 복음 송가

의 대다수는 미국 교회가 부르는 것을 번역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도 전문 
복음송가 가수가 많이 등장하였다. 창작 복음송도 많이 나왔다. 한국 교회가 
미국 전도집회나 부흥집회의 모습을 닮아간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집회 시에 전문적인 성악가를 동원하는 미국의 문화와 예배 형식을 그러한 정
서적 요청이 있어서 따라가는 것인가? 한국 교회가 음악을 중점적으로 해서 
변모해 간다면 과연 어떻게 변화하고 말 것인가? 

하나님 중심의 의식과 판단을 회복하면서 오늘의 예배를 바르게 갱
신하려면 먼저 하나님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감사의 마음을 마련하는 것이 우
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도 없이 그냥 입술로만 찬양의 분위기에 
들떠서 보내고 나면 내실없는 외형에만 그치지 않을 까 염려된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마음 자세가 없이 입술로만 하는 ‘노래’에 그친다면 그 어떤 ‘찬
양’이라도 ‘음악’에 그칠 뿐이다. 세상의 어떤 음악회나 연주회가 아니라, 교
회의 예배는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와 감격이 있어야 한
다. 

찬양은 매우 중요한 예배의 요소이다. 더구
나, 현대인들은 서구적
인 도시집중 문화를 형성하고 삭막한 회색 빛 아파트 속에서 살아가면서 마음
의 여유와 풍요로움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찬양은 예배 시간에 접하는 감정
의 회복이자, 은혜로운 축복의 시간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올바로 
사용되는 한 예배에서 찬양과 찬송은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또한, 칼빈주의자들의 예배가 항상 판에 박힌 전통주의자들의 모습
이어서는 안된다. 분명히 문화적 보수주의는 편파성을 띄게 될 위험성을 내포
하고 있다. 오늘의 문화는 옛날처럼 예배당 밖에서 큰 종을 치는 정서적 풍요
로움마저도 공해라고 거부하는 시대가 아닌가! 분명히 예배를 드리는 공간이 
바뀌었고, 사람들의 문화적 감각도 달라졌다. 반드시 어떤 순서를 고집하고 
어떤 패턴만을 개혁주의 예배라고 강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해지고 달라졌
다. 오히려 현대인들은 정서가 메마르고, 삭막해져서 감정의 충만을 바라고 
있으므로 과거 보다 더 적극적으로 찬양을 통해서 마음을 주님께 드리고 은혜
를 받을 수 있다. 

찬양의 도구와 보조수단들도 역시 필요하다.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
은 오묘한 재능을 가진 
창조적 기능을 부여해 주셨다. 인간의 두 손은 나라마
다, 시대마다, 독특한 솜씨로 다양한 악기를 만들어서 사용해 왔다. 구약성
경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시에 수금과 비파와 각종 현악기와 북
과 나팔이 사용되었다. 음악 자체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이며, 버릴 이유가 없
다.
그러나, 현대 교회의 음악순서와 내용이 지나칠 정도로 인간의 귀
를 즐겁게 하고, 인간의 마음에 대한 감성적 호소가 아닌가 걱정스러운 것이
다. 가사와 음악 표현의 방식이 인간의 심성을 압도하여서 하나님께 대한 경
외와 찬양의 요소는 없어지고, 일종의 연주를 감상한다거나 전문적인 음악의 
기교를 드러내는 연주에만 흐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오늘의 교회가 이전의 프로그램을 갱신하는데 필요한 적절한 음악 
활용의 방안은 아직 뚜렷한 답변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교회에는 오케
스트라 수준의 현악연주단이 있는 가 하면, 수준급 성악가들의 특송도 있다. 
모두 다 교회 형편에 맞추어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거듭 지적하지
만, 복음의 내용이다.

음악이 설교보다 훨씬 더 비중을 차지하고, 찬양이나 ‘씽 어
롱’ 
(기타 반주에 맞추어서 함께 부르는 복음 송가시간)이 기도와 회개를 촉구하
는 말씀의 가르침을 대신하는 경우라면 지식과 의지의 요소보다는 감정에 치
우쳐서 신앙인격의 불균형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공
부하므로써 믿음을 키워나가는 것을 대체해서는 안된다. 세상의 노래들처럼 
인간을 찬양하고 인간의 정서를 자극하는 ‘노래’들도 곤란하다. 이 시대의 젊
은이들이 좋아하고 익숙한 박자와 악기를 사용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
러나 너무나 지나치게 인간들의 축제로 전락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문제
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의 표현인가 아니면, 모인 사람들에게 좀 더 감
성적인 반응을 얻어내기 위한 의도에서인가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로
만 그친다면 교회의 예배는 본질을 회복해야만 한다. 오직 하나님을 인정하
고, 오직 하나님만을 노래로서, 악기의 연주로서 기억하면서 영광을 돌리는 
시간이라야 참된 예배가 되는 것이다. 2002.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