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바람직한 선배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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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바람직한 선배의식

 

우리 사회는 유교적, 가부장적 전통을 기반으로 한다. 장유유서와 상명하복의 문화 때문에 흔히 선후배의 서열적 질서에 상당히 민감하다. 이런 유교적 가부장적 질서가 사회의 상식적 예절의 영역에서는 일정한 타당성을 얻기도 하지만 더 깊은 뜻의 사회적 전망으로 성찰하면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래전 최재석 교수는 『한국사회의 성격』이라는 책에서 “한국의 거의 모든 가정은 집단이 요구하는 착실한 심복을 만드는 훈련장으로서 항렬, 연령, 성(性)의 기준에 따라 사회생활에 임하는 자세를 가르쳐 왔다. 형제가 싸우면 무조건 동생을 나무라고, 오누이가 싸우면 누이를, 숙질이 싸우면 조카를 꾸짖는 비합리성을 쌓아 온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가정에서부터 평등한 입장에서 당당하게 경쟁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고, 귀속적인 지위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는 생활방식을 훈련시킨 것이다.”라고 신랄하게 일갈했다.

한국 기독교인들도 이런 문화적 배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남녀노소 차별이 없고 서로가 존중해야 할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평등한 인간 존엄에 대해 성경적 가치관을 배우지만 실생활에서는 몸에 배인 한국사회의 유교적 가부장적 질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대로부터 반복되는 “요즘 젊은이들이 문제야”라는 푸념이 현대 기독교 사회에서까지 통용되고 있다.

예컨대 노회와 총회 안에서도 이모저모 서열이 있다. 나이는 물론이요 가입한 순서나 신학교 졸업 기수별로 선후배가 존재한다. 선후배의 건전한 관계가 오류일 리는 없다. 또 그것을 의식하여 서로 예를 갖추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즉, 후배가 선배를 대하는 기본적 예절이 무용하다고 말하면 잘못이다. 그러나 예절의 범위를 넘어선 불평등하고 과도한 서열 의식과 차별적 줄 세우기 행태가 성경적 질서일 수는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선배는 사전적으로 단순히 출신학교를 먼저 졸업한 사람이라는 뜻도 있지만 지위, 나이, 덕행, 경험 등이 자기보다 앞서거나 높은 사람을 말한다. “앞선 사람이니 일단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고 하지만 지위나 나이, 경험이 많다고 당연히 존경받을 자인 것은 아니다. 덕행이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밑바탕이 될 때 비로소 존경받을 진정한 선배의 자격을 획득한다.

따라서 자신이 선배의 위치에 있으니 마땅히 존경하라고 주장하고픈 사람은 덕행에 있어서도 진정 앞서 있는지를 냉엄하게 진단해야 한다. 특히 일반적 의미의 덕행에서 나아가 경건과 삶과 인품에서 성경적 의미의 덕행과 모범을 보이는 사람인지 자아 성찰해야 한다.

선배이니 무조건 존경하라고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그들의 면전에서는 효과가 있는 듯해도 실제로는 마음 깊은 존경을 얻어 내지 못한다. 그건 억지이고 선배로서 할 일도 아니다. 존경은 후배들의 마음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선배가 강요해서 표면적으로 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저 유교적 가부장적 질서에만 의존하여 선배 대접을 받으려 하는 사람은 후배들의 기피 대상이 될 뿐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실상을 정작 선배인 본인만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러니 후배들이 건방지다는 말만 되뇌며 불만을 표하곤 한다. 그런 선배에게 접근하려는 후배는 더 줄어들고 악순환은 지속된다.

노회나 총회에 왜곡된 선배의식으로 후배들을 대하는 사람이 많으면 그 노회나 총회는 화목하거나 단합하기 힘들다. 후배들의 발언을 쉽게 차단하고 그들을 존중해 주지 않는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비록 선배의 눈에 어리석어 보이는 의견이라도 후배들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발언할 기회를 주는 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 충고와 지도는 그 후에 이루어져도 된다. 선배들이 진을 치고 후배들을 제어하는 행태의 노회나 총회는 평등하고 화목하며 생산적인 모임이 아니다.

만남이 부담과 피곤이 되는 현장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거기엔 젊은 후배들이 많이 모여들지 않는다. 여러 노회의 이야기들을 모아 보면 대체로 젊은 후배들이 노회나 총회에 무관심하고 각종 모임에 참여율도 저조하다고 한다. 왜 그럴까. 선배들을 만나 무엇인가 유익한 것이 있고 즐거움이 있다면 참여하라고 독촉 안 해도 자연스레 모여들 것이다. 단순히 그들이 건방져서, 선배를 존경할 줄 모르고 제멋대로인 가치관을 가진 세대라서 그렇다고 후배들 탓만 하며 매도해야 하는가.

물론 후배들 중에 실제로 안하무인이요 무례함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이 없잖아 있다. 또한 “존경할 만한 모습을 보여야 존경하겠다.”고 직접 도전하는 태도는 후배로서 할 일이 아니다. 후배들은 선배들의 모습에서 완전성을 요구하며 존경을 보류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선배들의 부족한 면이 보여도 최선을 다하는 선배들의 모습에 존경을 표하고 기본적 예의를 갖추어야 맞다.

그러나 어느 사회에서나 더 중요한 것은 후배보다는 선배의 역할이다. 흔한 갑을의 관계로 표현하지는 말자.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후배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선배이다. 선배로서 모범을 보이고 후배들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선배가 존경을 받아야 한다면 후배는 존중을 받아야 한다. 이 점을 후배들이 잘 배워야 그들도 좋은 선배가 될 수 있다. 후배들을 동등한 동역자로서 존중하며 진정한 존경을 받는 선배들로 가득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