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논단| 한국교회 선교의 흐름과 전망 _ 이재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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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선교의 흐름과 전망<I>

 

<이재화 선교사 _ GMP 대표>

 

한국교회의 선교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붙잡힌
한국 교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한국교회의 살 길은 선교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영성이 회복되는 데 있다

 

  1. 한국교회 선교의 흐름

한국교회의 선교 역사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선교 시기는 외국인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입국하여 활동하기 시작한 1885년부터 해외 동포 사역을 위해 한국인 선교사들을 파송한 1909년까지이다. 조선 말기인 1885년부터 시작된 외국인 선교사들의 대거 입국하여 선교활동을 한 결과, 대한제국이 망하기 직전인 1909년까지 조선장로교총회의 독노회와 남 감리 선교연회 등을 통해 최초의 한국인 선교사들이 배출되었다. 1907년에는 독노회 설립을 기념하여 제주도로 이기풍을, 1909년에는 백만명 구령운동의 일환으로 일본 유학생 선교를 위해 동경으로 한석진을, 해외동포 선교를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최관홀을, 북간도로 김영제를, 서간도로 김진근을, 감리교에서는 간도 용정촌으로 이화춘, 배성식, 손정도 등을 파송하였다. 이를 통해 많은 해외 동포들 가운데 교회들이 세워졌다.

두 번째 선교 시기는 경술국치(1910) 직후인 1913년부터 1957년까지의 시기이다. 1912년 조선예수교 장로교 창립총회는 중국 산동성 선교를 결의한 후 박태로(1913-1917), 김영훈(1913-1917), 사병순(1913-1917)을 각각 파송하였다. 당시의 한국 교회는 일제에 의해 나라가 망한 직후의 식민지 상태에서 해외선교를 감당하기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나라는 잃었지만,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 한국교회는 세계 선교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 길선주 목사의 열정에 감동한 황해도노회의 총회 헌의로 창립총회는 교회의 중요한 사명으로 해외선교를 인식하고 박태로 목사를 첫 선교사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타문화권 선교에 대한 경험이 없는 한국교회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산동성을 첫 선교지로 선정하게 되었다. 첫 선교사 알렌이 입국한 1884년부터 한국 선교를 위해 헌신한 선교사들의 28년 선교 노력은 마침내 총회 창립(1912)에서 한국교회가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첫 출발로 그 열매를 맺게 되었다. 그 후 암울한 교회 현실에도 불구하고 1937년에 다시 산동성 선교의 맥을 잇기 위하여 방지일을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그는 1957년에 중국공산당이 추방하자 21년 사역을 뒤로 하고 홍콩을 거쳐 귀국하였다.

세 번째 선교 시기는 6.25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시작한 7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이다. 이 시기 이전인 1961년에 이화여대 선교부와 한국 감리교회가 파키스탄으로 전재옥, 조성자, 김은자 3인의 독신 선교사를 파송하는 등 간헐적 해외선교사 파송이 있었으나, 본격적으로는 1973년에 있었던 빌리 그래함 목사의 여의도 집회 등으로 인한 전국적인 기도 운동의 확산과 교회 성장, 1975년 오엠선교회의 로고스호 선박의 입항 등으로 인한 해외선교에 대한 관심의 고취 등으로 청년들이 단기선교사들이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 80년대 초반 국제선교단체들이 한국으로 진출하면서 선교 이해와 해외선교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고, 그 결과 한국교회의 자생적 선교운동의 일환으로 1987년에 한국해외선교회(GMF) 등 한국 선교단체들이 생기면서 활성화된 한국교회의 해외선교는 유례없는 성장을 거듭하면서 선교사 파송수 2위가 되는 등 세계선교의 강국으로 기여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한국교회의 선교의 흐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붙잡힌 우리 교회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의 선교 역사에서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첫째,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 자신에 의해 주도된다는 사실이다. 한때는 조선의 쇄국정책으로 말미암아 세계교회는 한국 선교를 기피하였다. 예를 들어보자. 조선 말기에 유럽과 미국, 호주 등 선교강국들은 중국과 인도, 버마, 일본까지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였으나 조선 선교는 “Mission Impossible”이라고 보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 머문 하나님의 마음을 읽은 선교사들에 의해 일본과 중국의 조선인 디아스포라 선교를 통해 성경이 한국어로 번역되고, 자발적인 평신도 전도자들이 배출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둘째, 하나님의 선교는 환경에 의해 좌절되거나 중단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초대교회 이후 세계교회는 순교자들의 핏값으로 세워졌다. 박해와 핍박 가운데 있었던 교회와 성도들의 삶은 도리어 천국복음의 긴급한 필요성을 온 세계에 분명히 제시하는 “읽혀지는 편지”가 되었다. 한국교회가 겪은 조선 말기의 연이은 핍박과 순교, 일제의 강압과 신사참배, 남북분열로 인한 북한교회의 와해, 6.25 동란의 처참한 파괴, 74년째 계속되는 분단, IMF의 경제대란 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통해 자신의 선교를 계속해 오셨다. 이는 여전히 핍박과 환란 가운데 신음하는 세계교회의 성도들에게 선교의 큰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셋째, 하나님의 선교는 우리의 힘에 의해 확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초대교회 이후 교회의 선교역사는 가진 자보다는 가난한 자, 힘을 지닌 자보다는 약한 자, 지혜 있는 자보다는 미련한 자, 교육받은 자보다는 배움이 짧은 자를 통해 지속되고 확장되어 왔다. 예루살렘 교회는 당대 유대사회로부터 별로 주목받지 못한 자들로 구성되었으나 성령의 능력과 그 지혜로 인해 칭찬을 받았고, 안디옥 교회는 그 사회의 무능력자들로 구성되었으나 훗날 안디옥 도시 전체를 복음화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바울과 그 동역자들에 의해 개척된 도시 교회들은 종교 신전이 아니라 가정에서 모인 소수자들이었으나 하나님의 큰 일을 감히 증거할 수 있었다.

한때 자신이 노예생활을 한 끔찍한 땅 아일랜드의 복음화에 헌신한 ‘아일랜드의 사도’ 패트릭이 보여준 약함의 선교, 이 아일랜드 출신 선교사 콜롬바에 의한 다신교 켈트족 선교, 동아프리카 고원의 고고한 에티오피아인의 삶을 기독교로 바꾼 무명인들의 선교는 정치적 강국 로마의 힘이 아닌 복음전파에 의한 변혁의 역사를 증언한다. 소국 중의 소국 한국의 교회를 들어 세계선교에 쓰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은 오늘도 비서구교회의 선교에 큰 교훈이 된다.

 

  1. 한국교회 선교의 진단과 전망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선교는 한때는 미국에 이어 파송 선교사 세계 2위로 오르는 등 세계선교의 강국으로 급부상하였다. 그러나 매년 선교사 파송 수의 증가는 2007년의 2801명을 정점으로 점차 감소하면서 2017에는 231명만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었다. 한국선교사들은 주로 교회개척과 제자훈련에 집중하면서, 캠퍼스 사역, 신학교육, 구제 및 개발 사역 등 점차 다양한 영역으로 그 사역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선교사 파송 수의 증가와 더불어 건강 악화, 교통사고, 자녀교육, 탈진 등으로 인해 중도 포기하거나, 비자 발급 제한이나 연장 거부, 강제 출국 명령, 추방, 입국 거절 등으로 본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사역 현지를 떠나게 되는 비자발적 철수 선교사들의 숫자 또한 늘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전체 한국인 선교사들의 절반 이상이 집중된 10대 선교국가들 중 중국, 인도 등 일부 국가들 및 창의적 접근지역인 이슬람 국가 등의 비자 발급 조건의 강화, 종교법, 추방 등으로 인해 선교사들의 전략적 재배치가 본격화되고 있다. 또한 세계화로 인해 선교국가들의 고물가로 인한 재정 악화 등도 이에 한몫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도전들은 선교의 위기이기도 하나 동시에 선교의 기회이기도 하다. 세계선교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하나님의 허락하심 가운데 발생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런 선교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또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앞서는 선교는 없다.

그 동안 한국교회는 수적인 증가를 통해 교회 성장을 가름하였던 것처럼 선교사를 많이 내보내는 것이 선교의 성장 또는 확장이라고 보고서 서로 경쟁을 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아래의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하여 주춤거리고 있다.

첫째, 한국교회의 성장 둔화가 선교활동에 영향을 미치면서 양적 성장에 대한 자기반성과 함께 질적 선교로의 전환이 고려되고 있다. 한동안 프로젝트 등을 통해 경제적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했던 신학교나 교회건축, 구제와 봉사 활동 등이 이제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사역들이 선교 현장에 따라서는 여전히 유효함에도 불구하고, 좀 더 효과적이고 전략적인 선교정책이 개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한국교회의 선교 역할에 대한 변화가 생기고 있다. 한국교회는 88올림픽을 계기로 열린 여행자유화가 한동안 해외선교를 촉진하고 확산하는 역할을 하면서 “나가고” “보내는” 선교에 열중해 왔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비자발적 철수 선교사들이 늘어나고, “들어오는 선교사들”에 대한 배려와 돌봄의 필요가 증가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멤버케어”에 대한 전문성 확보와 전문가들의 양성이 필요하다. 이를 간과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기울여 온 유능한 선교인력을 배출하기 위한 교회의 선교적 투자가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셋째, 한국교회의 선교 인식에 대한 이해가 변하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는 외국인 근로자나 유학생 및 다문화 가정의 확산, 난민 유입 문제, 출산인구의 급격한 저하 등으로 인한 한국사회의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전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과거에는 해외에서 하던 선교 사역들이 국내에서도 필요해졌다. 그로 인해 선교사들과 선교단체들의 해외선교 경험과 노하우가 국내교회들에게 협업과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되고 강화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선교사들이 사역하는 대부분 국가들의 인구 구조는 30대 미만의 젊은 인구가 다수이기에, 이런 경험이 한국의 다음세대 선교와 연결될 수 있다. 중국, 중앙아시아, 동서남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런 선교국가들에서 비자발적으로 철수하는 선교사들의 재배치를 제3국으로 할 수도 있으나, 국내의 외국인 유학생들, 다문화가정들,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배치하면 훨씬 효과적인 선교가 지속가능해 질 것이다.

현 시점에서 우리는 초대교회 이후 선교역사에서 한 가지 교훈을 되짚어 보아야 한다. 즉 선교는 개인의 변화(Change)와 사회적 변혁(Transformation)까지 이를 때 진정한 복음의 능력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를 가져온 나라들과 민족들과 그 교회들만이 하나님께서 원하신 자기 시대의 선교적 과업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었다. 선교역사는 양적인 성장과 함께 제자도를 통한 선교적 삶이 초래하는 질적인 변화가얼마나중요한가를“기독교 사회”(Christendom)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것을 넘어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를 추구하지 못하면서 세속화의 물결에 무너지고 있음을 보라. 한국교회의 살 길은 선교를 통한 철저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영성이 회복되는 데 있다.

현재 한국교회는 해외에서는 선교 현지들에서의 비자발적 철수로 인해 돌아오는 선교사들이 늘어나고 국내에서는 세속화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그 뜻에 합당하게 행하며, 예수께서 공생애를 통해 몸소 보이시고 실천하신 선교의 지상명령에 헌신된 선교가 회복되어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 이재화 선교사 _ 합신 졸업 후 T국에서 사모 안마리아 선교사와 더불어 오래 무슬림 사역을 하다가 2017년 GMP 총회에서 전체 회원들의 직접 투표에 의해 제5대 대표로서 선출되어 2018년부터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