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칼럼| 진리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때가 아닌가? _ 박동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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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칼럼

 

진리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때가 아닌가?

에베소서 6:14 _ 묵상

<박동근 목사 _ 안양 할길교회>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에베소서 6:14)

 

성도들은 성령 안에서
진리로 거짓을 분별하고
물리쳐야 한다

건강한 교회와 신앙은 
말씀으로 허리를 동인
신앙으로 세워진다

 

“진리의 허리 띠”는 사도 바울이 교훈한 하나님의 전신갑주의 첫 번째 목록이다.

여기서 “허리 띠”는 바울이 살던 시대에 병사들이 사용하던 가죽으로 된 허리 띠였다. 고대의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는 소매가 짧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튜닉이라는 속옷을 입었다고 한다. 허리띠는 이 속옷을 여미고 칼을 매다는 역할을 했다. 허리띠를 매는 곳은 허리가 아니겠는가? 허리띠의 역할 중에 하나는 허리를 동이는 것이다.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힘을 모으고 행동할 준비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고대인들은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말의 의미를 그렇게 사용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렵고 힘겨울 때 ‘허리띠’를 졸라매고 역경에 대항하고 어떤 상황들을 넘어서고자 애쓰고 행동할 준비를 한다는 의미로 이 말을 쓰기도 한다. 역도 선수들은 힘을 모으고 집중시키기 위해 허리에 가죽 띠를 힘껏 졸라맨다. 허리띠를 하지 않으면 힘이 분산되고 모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허리띠는 무기는 아니지만, 전쟁에 나갈 때 가장 중요한 무장 수단인 것이다. 허리띠는 전쟁에 임하는 병사에게 기본이다.

또한 허리띠는 옷을 여미고 무기를 장착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고대 병사들은 허리띠에 칼을 매달고 전쟁터에 나갔다. 허리띠를 제대로 졸라매지 않으면 옷이 흘러내리고 거친 행군과 행동 중에 무기를 거치하지 못하여 활동에 큰 지장을 갖게 된다.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전쟁 중에 활동이 부자연스러워 행동이 둔해져서 목숨을 잃을 수 있다. 현대 군인들도 요대라고 허리띠를 군복 위에 착용한다. 이 허리띠는 옷을 여미고, 역시 탄창과 수통 그리고 대검 같은 것을 걸어 착용하도록 만들어졌다. 요대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으면 활동하는 데도 지장을 받고 전쟁에서 생명과 같은 총탄과 검, 수통과 같은 필수 장비들을 잃어버리게 된다. 허리띠는 병사가 행군하고 전투하는 데 있어 기본이 되는 장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기본이다. 기초이다. 그것이 없으면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워지고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다. 최고의 방패와 최고의 검과 활도, 그리고 고단수의 무도로 단련된 병사도 허리띠가 잘못 매어져 옷이 흘러내리고 착용한 장비가 제멋대로 돌아다니면 모든 것이 본연의 기능과 화력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진리’를 ‘허리띠’에 비유하였다. 바울이 말한 진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경을 통해 전해진 복음의 계시”라 할 수 있다. 마귀의 딴 이름이 거짓말쟁이, 사기꾼이다. 마귀의 궤계는 사람의 마음을 굳어지게 만들어 말씀을 거부하게 하거나 왜곡하게 하는 역사이다. 인류의 첫 조상, 행위언약의 머리 아담도 마귀의 거짓말에 유혹되어 생명을 잃었다. 그 안에서 모든 인류가 죄의 비참과 방황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이게 된 것도 마귀의 거짓말로 인한 것이었다. 마귀의 거짓말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고 왜곡해 그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를 이간하고 파괴시키는 그런 거짓말이다.

마귀는 말씀의 잘못된 해석을 통해 성도와 교회를 무너뜨린다. 마귀는 거짓된 교리, 곧 이단의 교리를 통해 성도와 교회를 파멸시킨다. 마귀는 삶의 번영과 고난, 여러 환경들 속에 하나님의 뜻을 왜곡되게 인식시켜, 성도들을 혼란, 의심, 회의, 불평, 원망, 냉담 속에 끌어넣는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마귀가 말씀을 왜곡해 거짓으로 속삭일 때, 성도들은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깨어 거짓을 진리로 분별하고 거짓을 진리로 물리쳐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시험 당하실 때, 마귀의 거짓말로 유혹받으셨으나, 기록된 말씀을 바로 선포하심으로 승리하셨다.

성도와 교회는 말씀을 바르게 해석해야 한다. 성도와 교회는 바른 교리를 전하고 배우고 고백해야 한다. 성도와 교회는 우리에게 다가온 삶의 정황과 환경들을 말씀으로 바르게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번영 속에서도 교만하지 않고, 역경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모든 상황 속에서 교만해지거나 절망하여 마음을 굳어지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고, 바른 교리 위에서,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읽어낼 때, 마귀의 거짓을 선명하게 걸러내고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허리띠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근본이고 토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삶의 파편적인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 삶의 기초이다. 말씀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교회와 신앙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엡 2:20). 마귀의 최고의 목적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라면, 하나님과 멀어진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마음이 굳어진다는 의미이다. 마음이 굳어진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하지 못할 만큼 강퍅해진다는 의미이다. 강퍅하다, 굳어진다는 말의 반대는 마음이 온유하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온유하다는 의미는 말씀의 수용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말씀을 분별하여 말씀이 이끄는 데로 믿고 순종하는 마음이 온유한 마음이다. 하나님께서 우하면 우하고, 좌하라 하시면 좌하는 마음이다.

건강한 교회와 건강한 신앙은 말씀으로 허리를 동인 신자들의 신앙으로 세워진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지시한 대로 방주를 지었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성막을 짓고 성물들을 제조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고, 솔로몬 역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양식을 따라 성전을 지을 때, 그곳에 하나님께서 임하셨다. 구약의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예표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복했던 것처럼, 신약의 모든 제자들과 사도들과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말씀 위에 교회를 세우고, 신앙을 세우고, 하나님의 신령한 복을 그 안에서 누린다. 말씀은 기본이고 근본이고 토대이다.

마귀는 하나님과 성도의 교제를 끊어내려 온갖 궤계를 동원할 때, 성도들은 오직 말씀을 그들의 생명으로 삼고 말씀을 붙들 때,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와의 영적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그리고 성도와 교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성도들과 교회는 말씀에 대한 바른 해석, 교리 정립, 그리고 온갖 삶의 정황 속에 하나님의 뜻을 말씀과 교리의 조명 아래 분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에 힘쓰고, 이것을 훈련하고, 공유하고 나누어야 한다. 삶과 생활을 말씀과 교리 위에 세워나가는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싸움을 기쁘고 진지하게 싸워 나가야 하는 것이다. 마귀가 파괴하려는 것이 하나님과 성도의 교제라 할 때, 교제는 믿음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나오니 말씀 없이 어찌 주님과 교제할 믿음이 나타나겠는가?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위하여, 믿음을 지켜야 하며, 믿음은 말씀에 근거한 것이요, 믿음이 붙들고 바라보는 것이 말씀과 그 약속이니,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 안에 거하고자 하는 자는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의 참된 교훈을 알기에 힘쓰고, 확신과 신뢰로 응답하며 생활 속에서 영혼의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하는 것이다. 영적 싸움에서 이기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와 경험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요, 말씀 위에 자신의 생활과 삶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이 일이 가능하도록 성령께서 충만해 달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