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이 있는 책상| 교육에서 부모가 갖는 자유 _ 존 화이트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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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이 있는 책상

교육에서 부모가 갖는 자유

<존 화이트헤드 John W. Whitehead>

 

|아이들을 위한 교육|

<수잔 쉐퍼 맥콜리 Susan Schaeffer Macaulay 지음, 박경옥 역, 라브리, 1988>

프란시스 쉐퍼의 딸 수잔 쉐퍼 맥콜리가 쓴 이 책은 30년 전에 출판되어 많이 묻혀 있었지만 성경적인 교육의 의미를 성찰해 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라브리의 가정교육, 한국로고스연구원, 2006><아이들을 위한 라브리 가정교육, 그리심, 2008> 등으로 재출간되었다. 특별히 이 책의 부록으로 실린 존 화이트헤드의 글은 교육과 사회적 가치관에 얽힌 문제들로 시달리는 한국 사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의미 깊은 통찰을 주고 있어 여기 소개한다. – 편집자 주

 

   1925년 미국의 대법원은 피어스와 소사이어티 오브 시스터즈 (Pierce v. Society of sisters)와의 재판에서, 어떤 주(州)가 공립학교 교육법을 제정함으로서 사립학교교육을 침해한 그 주법원의 판결을 기각했습니다. 대법원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자유라는 근거 위에서 그 법을 기각했는데 대법원의 판결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922년에 만들어진 이 법률은 부모나 보호자들이 자신들의 보호 아래에서 아이들을 기르고 교육하려는 자유를 터무니없이 방해하고 있습니다. 모든 주 정부들이 기초하고 있는 자유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은 사실, 이 나라의 아이들이 공립학교 교사로부터만 공부하도록 함으로써 그들을 표준화시키고자 하는 어떠한 주의 간섭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아이는 단순히 국가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를 양육하고 그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람들이 고도의 의무와 더불어 그 밖에도 부가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모든 준비를 다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적어도 세 가지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아이는 국가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 속에는 아이들은 통계의 범위를 넘어선 존재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기독교적인 용어를 쓴다면 아이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말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권위 아래 청지기로서 일하는 부모는 그들의 자녀를 바로 교육할 자유와 ‘고도의 의무’ 혹은 책임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창조주로부터 권력을 받은 국가라 할지라도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들을 가르칠 수 있는 자유와 의무를 가로막을 아무런 권한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국가는 부모들이 사립학교나 가정학교들을 포함한 여러 다른 교육 형태들을 찾아 내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이것은 아이들을 교육한다는 면에서 일차적인 교육기관은 가정이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가정이 교육을 담당할 때에 가장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아이들입니다. 결과적으로 부모들은 창조주로부터 그들의 자녀들을 성경의 원리와 교훈으로 신중히 가르쳐야 할 책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신 6:6,7). 여기에 약속이 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이 원리는 신약 성경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나타납니다(딤후 3:15).

   성경에서 가르치라는 것을 실제로 언급한 것은 창 18:19인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성경에서 교육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것이 아버지가 교육의 책임자임을 말할 뿐만 아니라 그 교육의 우선적인 내용이 직업적이거나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도덕적이고 영적인 것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한 점입니다.

   따라서 가정은 인간의 가장 우선적이며 기본적인 학교입니다. 가정에서 아이는 처음으로 종교, 정치, 자기통제 그리고 요즈음에 와서 주립학교의 유일한 영역으로 생각하고 있는 광범위한 교과 내용들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가정은 무엇보다도 먼저 건강과 교육 그리고 복지 기관입니다.

   교육에 있어서의 부모 혹은 가정이 갖고 있는 자유는 정부의 간섭으로 인해 오늘날 위협당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이러한 위협은 국제적으로 피어스와 소사이어티 오브 시스터즈와 같은 법률 판례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퍼져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철학은 미국의 대법원이 로와 웨이드(Roe v. Wade)의 재판에서 내린 판결에 깊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낙태를 합법화한 이 판결은 가정과 아이들에게 심각한 의미를 안겨 줍니다. 그 후에 대법원이 낙태에 대해 결정한 사항을 보면 남편들은 아내가 낙태하는 것에 거절할 권한이 없으며, 부모들도 그들의 자녀들이 낙태하려고 할 때 가로막을 권한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판결에 대해 염려되는 것은 그들이 동일하게 가정과 부모의 권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부모의 권리는 그들의 자녀들이 낙태를 하거나 결혼 밖에서도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사적인 권리 밑에 놓이게 됩니다. 낙태는 가정 속으로 살인 행위를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부모들이 그들의 손자손녀들이 살인당하는 것을 저지시킬 수 없다는 한심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어떤 결정이 더 중요하겠습니까? 그러나 여전히 낙태는 비합법적인 행위인 것은 분명합니다. 둘째, 가정은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의 교육과 가치관을 결정짓는 기본적인 기관이 아닙니다. 국가가 부모 대신에 교사들을 통해 이 일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므로 현대를 사는 우리는 전통적인 가정과 가정의 교육적인 기능을 보호하며 또한 우리 아이들의 생명을 보호해 주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은 주 의회와 법정에 가정교육을 보호해 줄 것을 호소하는 것과 부모들이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녀들을 교육할 수 있는 권리를 확실하게 가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 존 화이트헤드 John W. Whitehead : 미국의 인권 변호사, 저술가, 버지니아 주 마나사스의 러더포드 연구소(Rutherford institute) 소장. 최근의 저서로는 <전장 아메리카>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