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르트신경 400주년 기념 논단| 예정 교리의 목적과 그 참된 접근 태도 _ 박동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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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신경 400주년 기념 논단 <3>

예정 교리의 목적과 그 참된 접근 태도

 

< 박동근 목사_안양 한길교회>

 

예정 교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 역사의 교리로 인간이 말씀과 성령 안에서 스스로의 상태를 발견할 때만 인식된다

하나님의 속성과 사역을 죄에 대한 인식 속에서 경험할 때, 예정은 구원에 있어 성경적, 경험적, 논리적 귀결이 된다

 

예정 교리는 이 교리를 성경을 통해 계시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성도들이 이 교리에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유익한지를 바로 인식하는 일이 중요하다. 예정 교리의 목적을 잘못 이해하고 바른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신앙의 혼란을 초래하고, 깊은 사변의 늪에 빠져 신앙에 해를 가할 수 있다. 이 글은 예정 교리의 개념과 설명 구조를 설명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예정 교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고백해야 하는 목적과 건전한 접근 방식을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성도들은 예정 교리가 하나님의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성도의 위로를 위하여 주신 교리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이 목적이다. 예정 교리는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고, 험한 세상 속에서 분투해야 하는 성도들에게 구원에 대한 확신과 위로를 전하기 위해 계시된 교리인 것이다. 그리고 예정 교리는 오직 이러한 목적에 유익이 되는 만큼 하나님께서 성경에 적절히 계시한 교리이므로, 성도들은 성경이 말씀하신 곳까지 이 교리를 인식하고 성경이 침묵하는 부분들을 겸손히 받아들여 캐내려 하지 말아야 한다.

예정 교리가 어떤 이유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성도들에게 확신과 위로를 베풀까? 예정 교리는 칼빈이 통찰한 중요한 진리 인식과 연결되어 있다. 진정한 구원은 하나님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발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 지식에 이르는 것이다. 예정 교리는 신성의 완전하고 무한한 영광 가운데 존재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전적 타락 가운데 죄로 죽어 구원에 있어 철저히 무능한 자신을 발견할 때, 구원의 성취에 있어 이를 받아들이며, 찬송하며, 위로 받게 되는 그런 교리인 것이다. 예정 교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그 앞에 선 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발견하게 된 자가 인정하고 붙들 수밖에 없는 그런 진리인 것이다. 즉,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바로 발견한 자만 볼 수 있고 붙들 수 있는 그런 교리인 것이다.

예정의 교리는 모든 것을 아시며, 즉, 전지하시며, 당신께서 뜻하신 대로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아는 성도가 자신의 전적 타락과 전적 무능성을 발견할 때, 선명하게 인식되는 교리이다. 예정의 교리는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가르치는 교리이지만, 이 인식은 인간이 스스로의 상태를 말씀과 성령 안에서 발견할 때만이 인식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교리이다.

예정 교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동기가 되고, 성도들에게 위로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죄악의 심각성을 깨달아야만 한다. 예정의 교리는 사변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미궁 속에 빠지고 만다. 바르게 이해하였더라도 이 교리가 사변적인 정보 인식, 예정에 대한 논리적 개념적 이해만으로 끝날 때, 그에게 예정 교리는 어떤 위로도 배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정 교리는 말씀과 성령 안에서 자신의 죄악의 비참을 깨닫고, 몸부림 치고, 애통하고, 자신의 의(義)에 대하여 완전한 율법의 요구 앞에 절망해 본 사람만이 진정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의도로 이 지식을 받고 위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죄에 대한 통곡과 애곡과 깊은 고뇌의 인식 속에서 예정의 교리는 적절히 이해되고 위로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예정 교리는 그런 의미에서 차디찬 기계적 혹은 물리적 결정론과 다르다. 매우 인격적이고 따뜻하고 위로에 찬 교리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칼빈은 이 교리를 목회적 동기로 가르쳤다. 진실되고 겸손하게 죄를 깨닫고 회개한 믿음의 성도들이, 험한 세상에서 주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분투하고 애쓰다 자신의 연약함과 세상의 사악함에 걸려 넘어져 신음할 때, 그들의 지친 영혼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 이 교리는 가르쳐졌다. 그들이 이 위로를 발견할 때, 이 교리 속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과 권세 앞에 찬송하게 되는 그런 교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정 교리는 거듭나고 회심하여 창조자요 그리스도 안에 구속자 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으며, 자신이 그 하나님 앞에 회복 불가능한 모습으로 영적 죽음 가운데 놓여 있는 비참한 존재인 것을 절실히 깨닫고 경험한 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교리라는 것이다.

예정 교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며, 연약한 성도들에게 위로가 되는 교리이다. 예정 교리의 일차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러나 부차적인 목적을 먼저 설명하고 이후에 일차적 목적을 설명하도록 하겠다. 왜냐하면 구원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본성적, 도덕적 속성의 탁월한 영광은 그분의 사역을 통해 계시되었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예정 교리가 왜 성도에게 위로가 되는지부터 왜 이 교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교리인지까지 살피도록 하겠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정 교리에 대한 진정한 의식은 바른 인간론에 대한 자각에서 나온다. 구원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철저한 무능을 인식할 때, 예정의 진리가 위로된다. 전적 타락과 전적 무능을 자신 안에서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말씀을 통해 인식한 자에게 예정은 위로의 진리가 된다. 진정 회심한 성도들은 죄의 비참에 대한 인식 안에서 절대적인 오직 은혜의 가치를 발견한다. 이들은 큰 고뇌와 애통과 절망 속에서 은혜의 역사를 체험하므로, 하나님의 속성과 영광을 인식한다. 하나님께서 완전하시고 무한하신 능력과 선하시고 거룩하신 성품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구원하시는 사역에 비추이는 하나님의 본성적, 도덕적 탁월한 영광을 구원의 사역 속에 인식한다. 진정 십자가 위 예수님께 지워진 죄책이 나에게서 전가된 것임을 깨닫고, 그 십자가 앞에 드러난 나의 비참과 철저한 무능을 인식할 때, 성도는 구원에 있어 그 주권성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정체를 깨달은 사람은 구원을 경험하되, 그 구원의 시작과 완성이 결코 나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만 속한 것임을 알게 된다.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므로, 세상과 역사에 일어나고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결코 하나님의 생각과 의지를 벗어날 수 없고, 오로지 그 생각과 의지로부터 비롯됨을 인식한다. 이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구원을 생각할 때, 그 구원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생각과 의지로부터 기원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한다. 심지어 어둠까지도 허용하심으로만 발생할 수 있는 이치를 생각할 때, 이 크고 은혜로운 구원은 결코 영원 전 하나님의 생각과 의지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무능과 비참을 발견하면 발견할수록, 거듭남, 회심, 믿음과 회개, 칭의, 성화 그리고 미래의 영화의 완성이 결코 인간이 시작할 수도 보존할 수도, 완성할 수도 없는 거대한 일임을 자명하게 깨우친다. 죄인 됨을 성령을 통해 인식한 사람만이 성경에 기록된 예정의 진리가 이해되고 믿어지고 위로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죄악 된 나를 발견할 때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일이 된다. 그 기원과 시작과 과정과 완성에서 오로지 하나님의 손길만이 보인다. 하나님의 속성과 그분의 사역을 죄에 대한 인식 속에서 인식하고 경험할 때, 예정은 구원에 있어 성경적, 경험적, 논리적 귀결이 된다. 예정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죄인은 피해갈 수 없고 회피할 수 없고 부인할 수 없다. 죄인 됨을 진정 인식한 사람에게만, 이 구절들이 거대한 위로로 다가온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1-12).”

예정에 대한 바른 인식은 성경을 깨닫도록 조명하시는 성령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참된 진리와 성령께서 드러내신 나의 비참한 정체가 만나는 곳에서 예정에 대한 건전한 신앙을 일으킨다. 이곳에서만 예정의 교리가 찬송이 되고 위로가 되고 감사가 되는 것이다. 나를 알게 되면, 결코 구원의 어떤 부분에도 나의 의(義)와 능력이 드러날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구원이 영원 전 하나님의 생각과 의지의 흔들리지 않는 터 위에서 세워진 것임을 직시하게 된다.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성령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적용하신 구원이 영원한 계획과 의지의 터 위에서 그분의 능력과 선하심의 터 위에 시작되고 보존되고 완성될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로 인해 죄와의 치열한 싸움과 고뇌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연약성 가운데 분연히 일어나 소망 속에서 순례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터와 위로가 있다. 시작된 구원은 흔들리지 않으며 영원한 구원이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