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뜨락
감사 할머니 – 주님께 쓰는 일기
< 이영희 권사_역곡동교회>
주님! 제가 가난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부요했습니다.
쥐잡기 끈끈이
주님. 오늘도 종일 집에서만 있었습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살림 정리했습니다.
손빨래 해놓고 꽃을 조금 만들다가 밤을 맞아 일기를 씁니다.
낮에 싱크대 밑에 청소를 했습니다. 쥐잡기 끈끈이를 놓았었는데 무언가 꺼먼 것이 보였습니다. 집게로 끄집어내 보니 쥐가 잡혀 죽어 있었습니다.
겨울엔 쥐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죽은 쥐를 보니 끔찍했습니다. 쥐 때문에 처음에는 무척 놀라고 끄집어내지도 못하고 도움을 받아서 해결했는데 이제는 혼자 거뜬히 해결합니다.
한옥 집이 그리워 이 집을 선택하여 살다 보니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던 쥐 때문에 고난이 많았습니다. 쥐가 방 안까지 들어와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해서 그만 떠나고 싶은 생각도 간절했지만…..
주님! 꽃밭이 있는 마당을 생각하니 갈 수가 없었습니다. 여름날에 누리는 푸름을 생각하면 쥐 생각도 사라지고 그냥 여기 주저앉고 맙니다.
이제 쥐도 사랑하는 마음이 되어서 괜찮습니다. 끈끈이를 설치해 놓았더니 방 안에는 침범하지 않아 감사합니다. 아파트, 빌라에서는 쥐 구경을 못했는데 옛날이 그리워 오래된 한옥 집에서 즐기는 행복이 있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 쥐 사건도 거뜬히 이기고 살고 있습니다. 주님! 오늘도 감사드리며 이만 씁니다.
그냥 감사 할머니
주님! 오늘도 바쁜 하루였습니다. 금요철야 예배는 가고 싶었지만 평창 올림픽 개막식 보느라 안 갔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큰 아들이 연락도 없고 연락을 해도 받지 않아 무소식입니다. 제가 준 편지에 충격을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차마 말로는 할 수도 없고 해서 글로 표현했는데 전혀 반응이 안 좋았나 봅니다.
오늘은 ‘아름다운가게’가 오는 날이라 준비하고 물건 챙기다 보니 반나절이 갔습니다.
주민등록증을 잃어 버려 주민 센터에 가서 서류하고 임시 사용할 것을 챙겨 왔습니다.
그리고 모아둔 신문을 리어카에 담아 고물상에 갔습니다. 앉은뱅이저울 위에 쌓아놓고는 1500원을 주는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5000원이나 3000원은 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아니었습니다. 몇 달을 모아 둔 것인데…… 기가 막혔습니다.
다시는 이 고물상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폐지 줍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생각했습니다. 새삼스레 가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님! 제가 가난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부요했습니다. 폐지를 주우며 살지 않으니 감사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체험한 폐지 리어카 때문에 그냥 저는 감사 할머니로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 편집자 주 / 이영희 권사는 올해 79세이며 기독교개혁신보 애독자로서 원고 모집 광고를 보고 투고를 했다. 10년 전 자녀들에게서 자립하여 독거노인으로 살며 글쓰기를 하고 싶어도 시간이 모자랐지만 주님께 일기만큼은 늘 쓰면서 그 소원을 이루고 있다. 그 일기 중 두 편을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