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개혁을 실천하는 교회
지난해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학술발표와 세미나, 종교개혁지 탐방 등 여러 행사들을 치르느라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작년에 지교회와 교단별로 치러진 행사, 그리고 교계 차원에서 치러진 행사들을 합하면 천 여 건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올해는 도르트 신조를 작성한 지 400주년 되는 해여서 이와 관련된 행사들도 있을 예정이다. 종교개혁자들이 남겨 준 신앙고백서들과 교리문답의 작성 배경과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이것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의 빛나는 신앙유산인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을 박물관에 보관된 유물을 꺼내어 닦은 다음 다시 보관해 두는 방식으로 취급해서는 안 되고 이스라엘 왕이 율법서를 등사해서 곁에 두고 읽어야 했던 것처럼, 늘 곁에 두고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 일을 하는 것만으로 해야 할 일을 다한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성경의 가르침을 성도들에게 보다 더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가르쳐서 가장 기본적인 복음의 도리를 올바로 깨닫고 실천하게 해야 한다. 얼마 전에 한 여자 검사가 J 방송사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과거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증언하는 도중에 자신을 성추행한 사람이 한 교회에서 세례 받은 후 간증을 하는 것을 보면서 분노했다고 발언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자 일반 매스콤에서 그동안 한국교회가 가르친 회개가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회개인지 점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 되기에 이르렀다. 본래 회개를 촉구하는 일은 교회가 세상을 대상으로 했던 일이었는데, 이제는 세상이 교회를 향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주객이 전도된 일이 발생하게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믿음이 무엇인지, 회개가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그리고 구원 그 이후 신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또한 종교개혁 정신을 따라 교회를 개혁하되 구체성을 띤 실천적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a Gratia)’이란 구호만 외쳐서는 안 되고 예배 때 성경 그 자체에 대한 강론과 말씀에 기초한 교리적인 가르침을 분명히 해야 하고 이로 인해 맺히는 자연스러운 열매로서의 하나님께 대한 송영이 예배와 일반적인 삶의 현장에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교회 행정 및 재정적인 면에서도 매우 구체적인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불필요한 교회행정을 줄이고 부교역자들에게 설교자로 준비될 수 있는 시간을 배려해야 한다. 말씀 사역자들의 사례비를 현실화해야 하며 너무 큰 차이를 보이는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와의 사례비 격차를 지속적 줄여가야 한다. 회의를 할 때도 성도들의 활발한 참여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일반 신자들이 교회 재정과 관계된 부분에 대하여 발언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 아니고, 교회 안에 발언하고 질의하는 것에 대하여 정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연약한 이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라도 신자들이 의문을 갖지 않을 정도로 재정 사용을 투명하게 하고 회계 자료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교회 개혁은 지교회의 개혁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노회 개혁과 교단과 총회 개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총회 주관으로 이루어지는 각종 행사들을 점검하며 정기적인 행사들도 매번 치러야 할 이유가 있는지 살펴야 하고, 행사를 치를 때에도 기존 방식을 따르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살펴봐야 한다. ‘총회를 위한 헌금’에 적극 동참하여 교단 행사를 치를 때 지교회로부터 후원받는 일을 지양해야 한다. 지교회의 후원을 받아 행사를 치르더라도 재정을 후원하는 일과 상당한 재정을 후원한 담임목사가 강사로 선정되는 일은 분리하여 추진해야 한다.
신학교와 교단 간의 지속적인 교제와 건전한 의미에서의 견제도 필요하다. 작년부터 촉발된 합동교단과 총신대학교와의 갈등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분열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우리 교단은 이런 일을 경계로 삼아야 한다. 신학교는 교회를 위한 교회의 신학교이다. 따라서 신학교는 총회와 교단의 지도와 견제를 받아야 하고, 교단과 총회도 보편교회 교사인 신학교 교수들의 지도와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기관 중에 건전한 의미에서 감독과 견제 없이 홀로 설 수 있는 기관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개혁은 구호와 외침만으로 되지 않는다. 이제 한국교회는 ‘개혁을 논하는 교회’가 아니라 ‘개혁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어 치러진 종교개혁 500주년과 관련된 각종 행사들의 빛이 바래지지 않도록 구체성을 띤 실천적 개혁을 지속적으로 이루어 가야 한다. 이것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진정으로 기념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