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뜨락
생의 시작을 기념하는 날에 깨달은 생의 본질
< 이상용 목사_포항그의나라교회 >
내게 특별했던 날, 2017년 11월 15일. 단지 이전에 없었던 지진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그 날이 나의 생일이자 15살 첫째 아들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15년 전, 태아의 목에 감겨 초음파로도 보이지 않던 탯줄 하나가 엄마의 몸에서 나오려던 순간 아이의 목을 졸랐다. 아이는 울음도 없었고, 숨도 쉴 수가 없었기에 검푸른 색으로 태어났다. 아이는 곧바로 소아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신대원 1학년 우리 동기들과 지인들은 생일 축하의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축하가 쌓일 때마다 나는 괴로웠고, 슬펐다. 사랑한다고 수없이 말하며 기다리던 나의 아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15년이 지나며 축하해 주는 이도 없던 식상해진 생일날. 아내와 함께 집에서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담소를 나누던 때에 15층 높이의 아파트가 마치 경운기를 탄 듯 흔들렸다. 흔들릴 것이라는 의심을 해 본적이 없던 땅이 흔들리자 공포에 사로잡혀 9층 계단을 떨며 내려왔다. 15년이 흐른 그 날에 다시 문자와 전화가 쏟아졌다. 15년 전처럼 울지는 않았지만 15년 전의 그 날처럼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혹은 해야 한다고 하지만 나의 작은 아이 조차 지켜낼 수 없는 것이 인생임을, 쌓아 올린 높이를 자랑하지만 땅이 흔들릴 때에는 높을수록 더 큰 두려움에 휩싸인다는 것을, 사랑하는 아이를 잃을 위기 부딪치고, 혼비백산하여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설 때에야 겨우 세상에서 안전한 곳이 없음을 깨닫는다.
내어줄 수 없을 것 같은 아들을 내어주신 사랑. 바람 불면 넘어질 듯 세워진 십자가 아래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임을 깨닫는다.
생의 시작을 기념하는 날에 생의 본질을 깨달은 것만큼 큰 선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