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정암신학강좌 ‘종교개혁의 신학과 오늘’ 공개 좌담회
*2017년 10월 31일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강당
*패널 _ 정창균 총장 / 김기홍 목사 / 변세권 목사 / 이승구 교수 / 정요석 목사 / 안상혁 교수, 사회 _ 정성엽 목사
◈… 개혁신학의 확산
◈…성경이 최종적 권위
◈…비개혁주의적 요소 시정
사회자 : 우리가 신학(개혁신학)을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정창균 총장 : 반성하고 재 논의해야 할 것들이 있다. 신학을 하는 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한다는 것인가? 의례 개혁신학을 한다는 것은 16-17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세워놓은 신학의 내용을 학습, 이해, 습득해서 갖는 것. 그래서 그것을 정확하게 재 진술할 수 있는 것. 이걸 갖추는 것을 신학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단순히 신학지식 습득을 넘어 그것이 오늘 여기 교회와 개인의 삶에 대해 해석, 설명하고 신학적 사고력을 발동시키는 데로 이어져야 한다. 신학적 지식과 사고와 실천, 이것을 통합적으로 하는 것을 신학한다고 봐야 한다.
그 다음, 우리가 개혁신학의 순수성 보전에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동시에 그것의 확산을 지향해야 되는가. 우리가 오순절파를 개혁파 교회로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신들은 우리와 달라”하면서 담을 쌓고 완전히 딴 세상으로 갈 것인가? 최소한 성경관이라도 개혁파의 성경관을 저들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어야 한다. 이제는 순수성의 보전, 유지, 전수와 동시에 ‘확산하는 일’을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공적 위치에 있으니 이런 점을 많이 생각한다. 그래서 신학의 현장화, 신학교의 대중화를 말하는 것이다.
사회자 : 오늘날 ‘오직 성경이’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안상혁 교수 : 16-17세기 우리 선배들이 ‘Sola Scriptura’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말하고 싶다. 한마디로 ‘Primacy of Scripture’ 성경이 ‘최종권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마크 A 놀(Mark A. Noll)이 ‘터닝 포인트’라는 책에서 복음주의 시대에 사용했던 ‘Sola Scriptura’와 16-17세기 종교개혁 시대의 그것이 좀 다르다고 했다.
웨슬리가 “나는 한 책의 사람이다.”라고 한 것은 성경 하나만을 말한다. 복음주의 운동을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 연합을 위해, 교리를 말하면 다툼이 생길까 봐 교리를 최소화하자는 의미로 ‘Sola Scriptura’를 말한 것이다.
그런데 종교개혁자들이 처음 그 말을 쓴 것에는 성경신학과 조직신학적 배경이 있다. 중세의 대표적인 성경 신학 교과서가 표준주석(Glossa ordinaria)인데 교부들이 성경 각 구절에 대해 지난 천년 동안 무엇이라 했는지를 방대하게 모아 놓은 것이다. 이런 것도 의미가 있지만 종교개혁가들의 ‘Sola Scriptura’는 결국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최종 권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들이 많은 말을 했어도 그 구절에 대해 신약성경이 의미를 확정하면 그것이 최종적 권위를 갖는 것이다.
조직신학적으로는 피터 롬바르드의 명제집에 보면 성경에 없는 또 다른 조직신학적 소스들을 활용한다. 예컨대 고해성사는 성경에 없는데 교부 제롬이 “난파선에 첫 번째 널빤지는 세례이고 두 번째 널빤지는 고해성사”라고 말한 것에 근거하여 교리체계를 쓴 것이다. 건전한 해석들도 있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성경 이외의 다른 권위로부터 교리체계를 세우는 것을 금했다. 성경 이외의 모든 오류적 소스들을 치운 것. 그것이 ‘Sola Scriptura’의 본래 의미였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그 말을 할 때는 성경신학, 조직신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또 선배들이 이 본문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연구하고 이런 것을 포함하여 그 위에 프라이머시를 성경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Nothing but the Bible’로만 가면 뮌스터 사건 때 재세례파가 도시에서 성경 이외의 모든 책을 불살라 버렸음을 기억해야 한다. ‘Sola Scriptura’를 그렇게 이해하면 그런 양상도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
사회자 : 교리가 삶으로 연결되려면 교육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정요석 목사 : 교회 개척 후부터 신앙고백들을 가르쳤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돌트 신경까지. 그렇게 가르치면 성도들의 반응이 어떠했겠나? 학교에 온다는 느낌을 받더라. 이번에 많은 반성을 했다. 교회는 학교가 아니라 예배와 교제 등 여러 요소들이 있어야 하는데 교회를 학교로만 만들었구나. 그 이유를 살피니 내 자신이 교리를 잘 모르는 것이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그 자구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이 본래 무엇을 가르치려 하는 것인지를 이야기 해 줘야 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과 더불어 전체 성경(Tota Scriptura). 그래서 요즘엔 성경 전체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주제별로 정리하고 있다.
조직신학의 경우와도 같다. 이를 표현할 때, 예컨대 원에 대한 정의가 ‘평면에서 한 정점으로부터 일정한 거리에 있는 점들의 자취’라 한다. 그런데 이 정의를 듣고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 원을 그리거나 해서 실상을 보며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원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먼저 더 많은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교리가 역사적으로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를 이해하고 우리의 전 삶을 통해 재미있고 쉽게 설명하려고 애쓴다. 교리가 와 닿지 않는 이유는 교리의 추상적인 부분들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다. 그것을 극복하려면 도리어 교리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탁구를 잘 치는 사람은 다른 것보다는 ‘많이’ 쳐서 그렇다. 그렇게 연구도 하고 즐거워진다. 여행과 독서 등, 삶의 여러 소소한 경험들을 활용하여 교리를 더 잘 가르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유력을 높이고 구체성을 갖고 일반 성도들이 쉽고 재미있게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사회자 : SNS 홍수 시대에 그것의 활용에 대한 생각은?
이승구 교수 : SNS 활용은 개혁신학의 구체적 현장 속에서의 소통이라 하겠다. 물론 인터넷 윤리, 셀프컨트롤이 필요하다. 그렇더라도 마치 종교개혁시대에 수없이 많은 트랙(track)들, 소책자들이 나왔던 것을 생각하자. 성경만 인쇄된 게 아니라 ‘오직 성경’을 강조한 분들이 수없이 많은 책들을 냈다. 그러나 아무도 안 읽었다면 소용이 없다. 그런데 상당히 많은 책들이 몇 년 안에 20만부가 팔리기도 하고 그랬다. 오늘날 신학 서적들이 그렇게 많이 팔리지 않는다. 많이 읽어야 많이 쓰게 되는 것이다. 그걸 도울 수 있는 것이 SNS이다. 덧붙이자면 나쁜 이야기보다는 좋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포장해서 거짓을 말하자는 게 아니라 부정적 감정을 직접적으로 노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왕이면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들을, 좋은 얘기들을 많이 해야 한다. 마치 종교개혁시대의 그 많은 트랙들처럼 말이다.
사회자 : 목회자에게 종교개혁이란 어떤 의미인가?
변세권 목사 :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나와 좀 더 성경을 깊이 이해해 보자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에겐 기본적으로 개혁주의 씨앗이 있으니까 그걸 키워서 사역지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성경의 정신과 본질에 따라서 수행해 나갈 때 보람 있고 행복한 것이다. 이것이 어색하고 어렵다고 해서 자꾸 피하고 거기에 넘어진다면 목회 현장에서 합신 출신들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힘들어도 개혁주의 교회관을 인식하고 나아가면서 이 사상 체계를 또 다른 후배 사역자들, 성도들에게 이식을 시켜야 한다. 싹을 키워 내보내야만 한다. 같은 체계 안에서 보호자,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개인이 개척해 나가서 혼자 이런 문제로 방황, 고민하는 게 아니라 잘 짜인 정돈된 질서 안에서, 그 사상 안에서 이 문제를 풀어 줘야 한다.
사회자 : 앞서의 언급에 대해 덧붙여 달라
김기홍 목사 : 여기에는 30대 초반부터 70대 후반과 젊은 신학생까지 모여 있지만 사실 온전하게 생각을 공유하진 못한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한 쪽 면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만 옳다’, ‘우리만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자. 우리 주변에 우리와 조금 다르지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는 분들이 많다. 우리는 우리가 바르다는 것 때문에 상대를 비하하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을 내포한 연약한 존재들이다. 여기 신학생들, 당연히 학생 시절 공부도 해야 하지만 옆을 볼 줄 알고 함께 갈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목회사역,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이 매우 어려움에 직면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연합과 일치, 화합, 용서하는 것이다.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는 것이다.
합신 재학생 김동권 전도사(3학년) : 종교개혁은 어찌 보면 소통의 활자 개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청소년들과 유대 중이다 보니 그들의 언어로 다가가는 것이 어디까지 가능한지에 대한 고민들이 생긴다. 또 그들과 부르는 ccm들도 많다. 개혁주의로서 어디까지가 허용 범위이고 기준은 무엇인가?
이승구 교수 : 두 가지를 생각하자. 먼저, 어린 대상들과 교수들은 접촉점이 약하지만 학생들은 더 나을 것이다. 많이 소통하며 그들의 언어로 접촉점을 찾는 것은 좋은 일이다. 둘째, 그러나 예배 때는 예배에 맞는 언어와 찬송이 있다. 이 점을 지켜 나가야 한다고 본다.
사회자 : ’나에게 종교개혁은 무엇이다’ 한 마디씩 부탁드린다.
안상혁 교수 : 한스포르트의 경우도 그렇지만. 우리의 사역은 조건적이다. 내가 말씀에 붙어 있는 한 하나님의 사역자이고 그 백성을 위해 쓰임 받는다.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한가?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이 사역자들에게 요청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마치 바울이 인간의 부패한 본성을 지적하고 자신도 회개했듯이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 중심, 말씀 중심으로 자신을 갱신하는 것. 종교개혁의 의미란 나에게 그런 점에서 긴장을 준다.
이승구 교수 : 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나면서 최소한 세 가지 실천적 캠페인을 하고 싶다. 개혁주의 교단으로서는 적어도 올해 이 후에는 반드시 시정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예배당 앞부분을 제단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아무나 못 올라가고 목사님과 청소하는 자만 올라간다. 루터와 개혁자들의 가장 큰 가르침이 예배는 제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배 인도자는 제사장, 사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안에 지금도 사제라 생각하는 일이 있다. 따라서 새벽제단, 가정제단 등, 예배하는 것을 제단 쌓는다고 표현하는 일도 없어야 하겠다.
둘째, 개혁자들은 모든 성지 순례의 관습을 없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디든지 성지이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이 순례자의 삶이다. 따라서 우리 개혁파 교회에서는 성지 순례라는 말이 나오면 안 된다. 그걸로 다른 신자들을 비난하라는 게 아니라 이것을 아는 우리가 먼저 그렇게 하자는 얘기다.
셋째, 예배당 전면에 십자가를 거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 개혁파 전통이 그렇다. 루터파는 상은 없앴지만 십자가는 남겨 두었다. 장로교회는 없앴다. 우리는 그 전통이 있다. 당장 없애진 못하더라도 모두가 이 문제를 인식해야 하며 결국엔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정요석 목사 : 개혁주의는 옳고 그름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비판하기 쉽고 서로 분리하기도 쉬운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옳고 그름을 드러내는 이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이 충돌이 되면 더 이상 옳은 것을 취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면 옳음(바름)을 드러내고 주장하는 사람이 틀린 길을 가는 것인데 그래서 많이 비판을 받고 미워 보이고 그런 듯하다. 그래서 나는 SNS에 글을 올릴 때도 항상 아내에게 허락을 받고 올린다. 더 자극적으로 표현을 하면 더 많은 사람이 호응할 수 있겠지만 내가 지킬 수 있는 말 정도만 하고 절제하는 것이다. 내게 종교개혁의 의미는 내가 말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내 자신을 얼마만큼 부정하는가. 여기에 있다.
변세권 목사 : 합신 신학을 하고도 교회 밖을 나가면 복음주의의 옷으로 갈아입고 이중적 생활을 하는 상황을 보면서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를 들자면, 프랑스 신앙고백서.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들을 공부하거나 설교하고 나서 그 뒤에 뒷받침해서 성경본문을 중심으로 그 근거를 가르치면 훨씬 개혁주의 신학으로 설교하고 목회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오늘 내게 종교개혁이란 매우 실제적인 부분으로서 교회나 노회적 차원에서 재산 전부는 아니더라도 사례비나 기타 수입들을 공동의 통장에서 관리하며 필요한 만큼 함께 쓰는 공여의 정신을 실천해 가는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 실천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정창균 총장 : 돌아가신 지도 교수님이 늘 개혁주의란 것은 두 가지 방향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먼저는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즉 ‘어떤 전통을 가지고 있는가’이고 또 하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즉 ‘어떻게 살고 있는가?’이다. 개혁주의의 핵심은 ‘오직 성경’,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다. 그것을 배우고 그것이 우리의 전부가 되는 삶을 살다 보니 모르는 사이에 지나는 현실에 대해 삶의 현장들에 대하여 매우 담대해진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 하나님은 참 좋은 분이시다. 오늘 여기서 죽이신다 해도 감사할 것 같다. 개혁신학을 품은 개혁주의자라서 아니라 ‘개혁신앙가’로 사는 것이 나를 담대하게 한다.
김기홍 목사 : 나에게 종교개혁 500주년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위하여 주어진 자리에서 작은 일부터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는 다짐과 실천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