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섬기며
무학숯불갈비교회
< 강승대 목사_합포교회 >
우리교회에도 식당처럼 손님이 찾아오면 좋겠다는 꿈과 소원이 생겼다
1996년도에 ‘합포제일교회’라는 이름으로 개척했다. 시내버스터미널 근처 식당 거리였다. 마침 5층 상가 건물의 빈 사무실을 4년 동안 전세로 얻었다. 1층은 ‘자연횟집’ 2층은 ‘무학숯불갈비’ 3층 바둑학원, 4층 명문종합학원, 5층 영,수 전문학원이었다.
우리 교회는 바둑학원이 있는 3층 절반을 사용했다. 3층 화장실 앞에 예배당 입구가 있어서 교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돈이 없어 교회 간판을 제대로 달지 못했다. 옥상에 철제 종탑을 세워 교회 이름 네온은 달지 못하고 간신히 십자가 네온만 들어오게 한 것이다. 그렇게만 해 두었어도 근사해 보여 감사했다.
교회를 시작했으니 교회를 알려야 했다. 아내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주위 아파트 호별 전도를 하러 다녔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고 인터폰을 향해 교회를 알리면 얼마나 냉담한 반응이 돌아오던지….. 그때마다 전도를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을 갖곤 했다.
어느 날 아파트 전도를 하다 계단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청년을 만났다. 교회에 한번 나오라고 했더니 건네 준 전도지를 보며 하는 말이, “무학숯불갈비교회에서 왔네요.” 했다. “???… 그게 무슨 말인가?” 하고 청년에게 물었더니 “밤에 보세요. 무학숯불갈비교회가 맞거든요.”하고 웃었다.
그날 밤에 교회 건너편 빌딩에 올라가 바라보니 무학숯불갈비 네온 위에 작은 십자가가 켜졌다. ‘합포제일교회’ 네온이 없어 작은 십자가 바로 밑에 큼직한 갈비집 네온이 들어와 합쳐지니 영락없이 교회 이름이 ‘무학숯불갈비’였다.
횟집과 숯불갈비 집과 학원은 항상 손님(?)으로 붐볐다. 부러운 마음에 우리교회에도 식당처럼 손님이 찾아오면 좋겠다는 꿈과 소원이 생겼다. 그러나 개척교회에 찾아오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고기 굽는 냄새가 예배 시간에도 올라와 후각을 자극했지만 한 번도 그 ‘무학숯불갈비’ 식당에 가서 식구들과 고기를 구워 먹은 기억은 없다. 몇 년 되지 않아 부모 없는 아이들이 교회에 모여들며 ‘무학숯불갈비교회’에다 ‘고아원교회’라는 별명이 하나 더 늘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니 횟집도 숯불갈비 집도 바둑학원, 입시학원도 각자의 사정으로 전부 문을 닫았다. 그러나 그 상가에서 가장 초라했던 우리 교회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때의 갈빗집과 횟집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공간을 하나님이 주셨다. 우리교회에도 식당처럼 손님이 찾아오면 좋겠다는 그 꿈과 소원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꿈은 현실이 되어 갔다.
“무학숯불갈비교회”, “고아원교회”라는 소리가 당시에는 우리의 마음을 찌르는 화살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소리도 마냥 그리워진다. 그때를 생각하면 여러 의미가 버무려진 눈물이 맺힌다. 가진 것은 적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이 꾸게 하시는 꿈을 꾸며 기도하고 순종했던 참으로 복된 개척의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