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 그 눈물과 기쁨
개척교회에서 교회 개척을 꿈꾸다
< 박용주 목사_나주혁신장로교회 >
말씀의 바른 선포에 사람이 자라고 교회의 사역이 세워진다
나주혁신장로교회의 개척은 한 개척교회와의 만남에서 시작했다. 2012년 초에 유학을 계획하고 잠시 부모님 곁에 있기 위해 광주에 내려왔다가 인터넷을 통해 출석할 교회를 만났다. ‘개혁신학을 충실하게 실천하는 다문화교회’를 지향하는 3개월 된 ㄱ교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다문화교회는 센터중심(구제사역)형이 많은데, 그 교회는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는 말씀사역 중심의 교회였다. 잠시 머물기 위해 간 그 교회를 2년이 넘게 출석했다. 그리고 그 개척교회에서 교회개척을 꿈꾸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교회가 실천하는 복음중심적 말씀과 훈련, 목양이 나와 우리 가정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교회가 개척하는 교회
돌아보면 그 교회에서의 2년은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교회개척 인턴십 기간이었다. 무엇보다 그 교회에는 우리 부부를 가장 잘 이해하고 코칭해 주는 탁월한 목회자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교회개척부터 지금까지 때론 교사로 때론 친구로 동행해 주었다.
2014년 10월에 나주혁신도시에서 교회를 개척하기로 목표를 정하고, 그해 6월에 광주 집에서 개척감사예배를 드린 후 4개월 동안 가정예배에 익숙해지며 그에 따른 예배 형태와 인터넷 공간 등을 준비했다. 이 시기에 광주의 ㄱ교회는 목회자의 중학생 딸과 유일한 한국인 남성 싱글 성도를 주일예배를 위해 파송해 주었다. 우리는 모교회로부터 재정 지원은 없었지만 그보다 더 귀한 코칭과 최고의 지원을 받고 교회를 시작했다.
아파트에서 교회를 시작하다
2014년 10월 드디어 나주혁신도시 아파트에서 예배를 시작했다. 첫 예배에 그해 6월부터 토요일 놀이터 전도에서 만나고 교제한 한 가정이 교회에 왔다. 이후 매주 1가정 이상 집 문을 두드리는 일이 일어났다. 한 달 남짓 지나자 6가정 정도가 모였다. 이제 광주에서 주일이면 내려오던 모교회의 두 사람은 더 이상 올 필요가 없었다. 새로운 사람들의 방문은 그 정도에서 멈췄다. 이 시기에 새로운 방문자가 멈춘 것을 두고두고 감사한다. 우리는 큰 변화 없이 4개월 동안 서로를 이해하고 교제하며, 교회의 기초를 닦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3개월의 등록 준비 기간을 보낸 5가정과 함께 12월 초에 1박 수련회를 가졌다, 둘째 날 아침에 모든 멤버들이 예배당을 알아보기로 결정하고, 당일에 태권도 도장을 빌려 쓸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태권도장을 빌려 예배를 드리다
2015년 1월부터 태권도장은 주말이면 예배당이 되었다. 집에서 층간 소음을 걱정하다 체육관으로 옮기니 온 교우가 신이 났다. 문제는 예배 시간에도 애들이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체육관 바닥에 장판을 깔고 책상과 의자를 세팅하기로 했다. 토요일엔 1시간 남짓 체육관을 예배당으로 꾸미고, 주일 예배가 마치면 건물 밖에 준비한 천막에 모든 물건을 보관하는 것을 반복했다. 자칫 지칠 수 있었으나, 도리어 교우들로 하여금 교회를 품는 기회가 되었다. 집에서 모일 때, 체육관에서 모일 때, 매번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공동체가 더욱 견고해 지는 방향으로 풀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상가시대가 열리다
체육관에서 6개월 정도 지내면서 교회는 조금씩 성장해 갔다. 교우들은 여전히 에너지가 넘쳤다. 그러나 목회자로서 장마가 다가오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옥상에 설치한 천막에 음향장치도 둬야 했기에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다. 그렇다고 높은 상가임대비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때에 가족의 지인을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상가를 임대하게 되었다. 세 번째 예배 장소로 이동을 하게 된 것이다. 드디어 2014년 7월에 상가 5층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교회의 공간은 초기부터 늘 고민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회중과 함께 공간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함께 걸음을 떼는 것이었다.
성경에 충실한 복음중심적인 교회로 더디지만 자라가는 교회
모임 장소가 바뀌는 속도만큼 교회의 걸음은 참으로 역동적이었다. 하지만 실제 우리 교회는 이벤트가 거의 없다. 주일예배에 집중하고, 오후 소그룹 모임에서 그날 말씀을 나눈다. 말씀을 잘 듣는 교회로 서는 것에 방해가 되는 행사와 모임은 최대한 지양하고 있다. 수요일 오전에는 성경학교를 열어 말씀을 충실하게 가르치려고 한다. 리더 모임에서는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을 가르친다. 모든 모임을 통해서 강조하는 것은 성도의 교제이다. 서로를 돌보는 일에 힘쓰기를 강조한다.
이런 강조 속에 젊은 회중들이 반응하고 있다. 율법주의와 물질주의, 신비주의에 물든 신앙 패턴에서 자라온 젊은 회중들과 장년 교우들은 복음적 원리에 따른 가르침과 교회 방향에 조금씩 젖어 들고 있다. 이 과정 속에 배우는 것이 성경에 충실한 복음중심적 교회는 긴 시간 속에서 성장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 더딘 성장 속에서 속이 뒤집어 지고, 답답하고, 낙심할 때도 있다. 더딘 길을 가며 더디다고 불평하는 것이다. 개척3년이 지나고 이제 더욱 확신하는 것이 있다. ‘말씀의 바른 선포가 있다면 사람이 자라고 그들이 자라면 교회의 사역이 세워진다’는 것이다.
틀리면 고치면서 가면 되지
젊은 회중들과 함께 하는 것은 장점과 함께 어려움도 있다. 애들이 많기에 조용히 집중해서 모임을 가져본 적이 없다. 자신의 가정에 집중된 시선을 공동체로 돌리는 것도 매우 어렵다. 기성교회에 대한 반감, 목회 지도력에 대한 반감을 가진 이들도 있다. 그래서 내 자신은 한국교회의 30년 후의 좋은 지도력을 생각하며 그들과 함께 교회를 세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젊은 회중과 목회하며 가장 뼈저리게 배운 것은 ‘균형의 중요성’이다. 결국 기존 교회에 대한 반감으로 늘 극단으로 가 있는 그들을 바르게 세우는 것은 손뼉을 쳐주는 것도, 저편의 반대를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성경에 충실한 균형 있는 가르침과 삶이 젊은 세대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메시지임을 배우고 있다.
문제는 개척자 자신이 균형을 잡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척교회 목사의 장점이 있으니, 즉시 바로 잡는 것이다. 처음에는 틀리지 않으려고 긴장했는데, 이제 틀리면 인정하고 바로 고치려고 한다. 개척교회 목사의 고통은 아마도 복음 안에 있는 정체성이 아닌, 사역으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시도에서 나오는 완고한 고집이 깨어지는 것이리라.
3년이 지나 배우고 소망하는 것 ‘교회를 세우는 교회’
개척하고 3년이 지났다. 누군가는 가장 어려운 시기를 지났다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할 것이다. 둘 다 맞는 말이다. 내게 지난 3년은 최소한 스스로를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얼마나 믿음이 없는 사람인지, 사랑이 없는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으로 만족하는 사람인지 아는 시간. 진짜 목회에서 소망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는 시기였다. 나의 간절한 소망은 ‘복음으로 변화된 제자들’을 보는 것이다. ‘복음을 기뻐함으로 도시를 섬기는 교회 공동체’를 보는 것. 이 비전은 오직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다.
그래서 3년이 지나고 교우들에게 자주 하는 말은 “기도하자”이다.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말이다. 3년이 지나 처음과 비교할 수 없는 외적 조건을 가졌지만, 우리 교회는 알면 알수록 별 것 없는 허당이다. 생각해 보니 예수님의 제자들도 허당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갈 길이 분명하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교회와 목회, 그 안에서만 소망이 있음을 믿는다. 그렇게 가다 보면 우리 교회도 ‘교회가 세우는 교회’에서 ‘교회를 세우는 교회’로 서게 될 것을 믿고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