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논단
사도에 관한 신약의 이해
< 노승수 목사, 강남성도교회 >
사도는 교회의 기초 직원이며 교회사에서 다시 있을 수 없다
신약의 ‘사도’는 ‘사자‘라는 일반적인 의미이며 복음 증거를 위한 원 사도직의 확고한 명칭이다
사도의 권위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있으려면 신약 전체 본문 속에서 사도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특별히 에베소서는 사도의 직무를 이해함에서 결정적 본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엡 4:8).
이는 시편 68:18절의 인용인데, 시편에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예물을 받으셨다’로 되어 있다. 이는 바울이 탈굼역 본문을 인용한 것으로 봐야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데 유대 랍비들의 성서 해석법에 따라 모세가 한 것과 같은 것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하고 있다. 모세가 유월절에 시내산에 올라 40일을 있으면서 율법을 받아 내려와서 오순절에 주었다고 유대인들은 믿는다. 이 전통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한 것이다. 즉, “당신은 하늘로 올라가서… 토라를 받아 사람들에게 선사했도다”를 그리스도에게 적용해서 유월절에 하늘에 오르셔서 오순절에 성령과 그 은사들을 선물로 주심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문맥에서 11절에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가 나온다. 이는 성도와 교회를 온전케 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에 베푸셔서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 까지 자라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성령만을 선물로 주신 것이 아니라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말씀을 받아 40일 만에 유대 전통에 의하면 유월절은 시내산에 모세가 오른 절기로 오순절은 말씀을 받아 전하여 준 절기로 이해 된다. 따라서 성령을 그의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시면서 그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도록 말씀의 수종드는 자들을 선물로 주셨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알다시피 교회는 기구로 이해해야 하고 그것의 핵심은 교회의 직원이다. 막 3:14에서도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라고 해서 ἐποίησεν δώδεκα 에포이에센 도데카’(문자적으로 ‘열 둘을 만드셨다’)로 참으로 예수님 자신께서 새 이스라엘을 통치하시기 위해 열 두명의 성직자회(college)를 세우셨다는 것을 확증한다. 이 말씀을 선포하는 기구로서의 교회의 직원으로서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를 주셨다는 말이다. 성경은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20)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도와 선지자를 장로교회 헌법에서도 <기초직원> 혹은 <비상직원>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 값을 주고 산 교회를 세우실 때, 이 복음을 사도와 선지자에게 위임하셔서 세우셨다는 것이다. 에베소서는 교회를 설명하는 메타포(은유)로 집을 세우는 것으로 설명한다. 집을 짓는데, 사도와 선지가가 그 기초가 되는 터라는 말씀이다.
이는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이들이 그리스도의 계시를 맡아 가졌기 때문이다. <신사도 운동>이 계시를 운운함이 터무니없는 것은 그리스도가 최종 계시이며 그 최종 계시를 사도들에게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최종 계시라는 것은 신약 곳곳이 증거한다(히 1:1-3 외). 건물을 지으면서 그 터를 3-4층 올린 후에 다시 닦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사도와 선지자는 기초 직원이며 교회사에서 다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오늘날 다시 교회의 터를 그리스도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것으로 둘 수 없음을 확증해 주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바나바가 사도라는 점이 논란이 대상이 된다 해도 역사적 신앙고백적 교회가 2,000년 동안 세워져 왔는데 근 1,900년 이상 나타난 적이 없는 사도가 21세기 들어서 갑자기 새로운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출현했다? 납득하기 힘들지 않는가? 이는 바울이 말하는 다른 복음(갈 1:7)이며 이를 전하는 자는 천사라도 저주를 받는다 한 말씀을 생각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사도는 성경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울서신에서 바울은 자신을 “사도”로 묘사하는 반면 디모데를 “형제”라고 묘사합니다(참조: 롬 16:23; 고전 1:1; 고전 16:12). 다른 곳에서는 디모데가 사도이지만(참조: 살전 2:6), 바울과 동일한 사도가 아님을 나타내고 있다(참조: H. M. Carson) 즉, 성경의 사도는 다양한 문맥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우리가 사도를 한 가지 의미로 국한해서 생각할 때 오해가 생긴다. 말의 의미는 항상 그 말의 사용법에 의해서 결정되는 법이다.
사도를 뜻하는 아포스톨로스(apostolos)는 누가복음에서 6회, 사도행전에서 28회, 바울서신에서 34회, 히브리서에서 1회, 베드로서에서 3회, 유다서에서 1회, 요한계시록에서 3회 발견된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에서는 각 1회씩 사용된다. 이 사용 빈도의 통계가 보여 주는 시사점은 사도에 관한 성경의 언급이 주로 바울과 누가에 의해서 체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는 오직 ‘사자’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무엇보다도 하나의 특정한 직무 즉, 주님께서 복음 증거를 위해서 세운 원 사도직에 대한 확고한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누가의 경우 이 단어는 더 사도직에 대한 의미로 국한해서 사용한다. 눅 11:49; 행 14:14의 경우를 제외하고 누가는 12제자와 바울에게만 사용한다. 누가에게 있어서 아포스톨로스(apostolos)라는 말은 12제자직의 칭호이다. 그런 누가가 왜 행 14:14의 말씀에서 바나바를 사도라 칭하였을까? 이는 누가의 기록이 그의 표현에서 나타난 것처럼 “처음부터 미루어 살핀 것”임으로 자신의 글이 아니라 다른 자료에 나타난 표현에 대한 인용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는 인용의 차원으로 이해해야지 누가가 성경의 저자로서 영감된 말씀을 집필할 때, 그가 가졌던 신학이었다고 보기 는 어렵다. 다시 말해서, 바나바에 대한 사도의 언급과 신약에 언급된 12사도와 바울, 야고보를 제외한 이들에 대해 쓴 ‘사도’는 사도의 일반적 의미 곧 ‘사자’라는 의미로 봐야 한다. 왜냐면, 이미 언급한 대로 누가는 그리스도의 계시를 맡은 특정 직무로서 사도직으로 14:14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누가는 16장의 드로아의 소위 <we-text>라 불리는 곳에서부터 바울과 합류한다. 14장은 그 이전에 남겨진 자료를 참고하여서 기록하였다는 뜻이다. 즉, 성령께서 누가에게 영감하셔서 사도를 그런 의미로 국한하여 사용토록 하셨음을 말한다.
누가의 이런 빈번한 사용에 비해 나머지 세 복음서에는 단 세 번 각각 한 번씩 이 단어가 등장함은 주목할 만하다. 직무로서 사도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이 된다. 요 13:16에 나타나 있는 그 말은 ‘직무’로 이해될 수 없다. 왜냐면 여기에선 그 말이 사자를 의미할 뿐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참조: K. H. Rengstorf, TDNT 1, 421; R. Bultmann, The Gospel of John, 1971, 477n. 4).
그래서 개역성경도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라고 해서 ‘사도’가 아닌 보냄 받은 자로 번역했다. 마 10:2에서 그 말은 12 제자들이 세우기 전의 그들의 명단 맨 앞에서 발견되며 막 6:30에서 그들은 과업을 마치고 돌아올 때 즉, 그들의 보냄 받은 사역과 관련하여 이 명칭이 사용된다. 바울서신은 누가–사도행전의 기록보다 앞서며 여기 등장하는 바울의 사도의 직무에 관한 개념은 신학화되었고 누가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바울서신에 등장하는 사도에 관한 표현은 아래 몇 가지 신학적 개념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사도에의 부름과 임명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및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갈 1:1; 참조: 롬 1:5; 고전 1:1; 고후 1:1).
2. 사도직에의 부름은 이방인들 사이에서 복음의 전파해야 할 의무와 결속되어 있다(롬 11:13; 갈 2:8; 참조: 롬 10:15; 고전 1:17).
3. 고난은 사도의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고전 4:9-13; 고전 15:30이하; 고후 4:7-12; 고후 11:23-29).
4.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고전 4:1; 엡 3:1-6).
5. 사도라는 특별한 지위(고전 4:16; 빌 3:17 등)가 교회보다 더 존귀하게 여겨진다거나 영적 은사들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다고 언급하지 않는다(고전 12:25-28; 참조: 엡 4:11; 롬 1:11이하).
6. 바울은 마지막 사도로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는데(고전 15:8) 본문에 “맨 나중에”라는 말이 참으로 그런 의미로 사용된 것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사도직에 부름을 받음으로써 그 직분을 계속 수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