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섬기며>
“나는 네 형편을 모른다”
< 강승대 목사, 합포교회 >
“주님 제 형편을 잘 아시지요?”
“나는 네 형편을 모른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전도사로 교회를 봉사하던 우리 부부에게 하나님은 첫째 아기를 주셨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낮과 밤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바닥에 눕혀 있는 것과 사람 팔에 안겨 있는 것은 정확하게 구분하였습니다. 바닥에 눕혀 놓으면 30분을 자지 못하고 죽을 듯이 울었습니다. 팔에 안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울지 않고 잠을 잘 잤습니다. 밤새도록 아기를 안고 지내는 우리 부부는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주위 어른들은 아기가 낮과 밤을 구분하는데 보통 100일이 걸리니 그때까지 잘 참고 견디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우리 부부는 100일이 빨리 지나가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아내는 밤새도록 아기를 돌보고, 나는 새벽 3시쯤 일어나 아기를 받아서 새벽 예배 갈 때까지 안고 돌보았습니다. 그러다 피곤하여 졸다가 아기를 떨어뜨린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아기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지만 전도사로서 새벽기도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갔습니다. 의무적으로 또는 사명감으로 나갔지만 육체가 피곤하여 새벽예배를 드리고 난후에 졸음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허벅지를 꼬집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럴수록 은혜는 받아야 한다고 제일 앞에 앉았는데 왜 그렇게 잠이 쏟아지는지……
당시 새벽예배는 작은 교육관에서 드렸습니다. 피곤을 이기지 못하여 잠잘 곳만 찾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새벽에는 이층 예배실이 비어 있었습니다. 새벽예배를 드린 후에 개인기도시간이 되면 아무도 없는 예배당으로 살짝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장의자에 누워 ‘주님 내 형편 이해해 주시죠?’ 하며 다리를 쭉 뻗고는 모자라는 잠을 보충했습니다. 아기가 태어난 지 100일이 오기를 주님 오시는 것보다 더 기다리면서 새벽기도 시간에 예배당 2층에 올라가 대신 잠을 잤습니다. 그렇게 기다렸던 100일이 지나갔습니다만 이 녀석은 여전히 밤낮을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1994년 3월의 어느 새벽, 밤새도록 아기의 울음에 잠이 부족했던 나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새벽예배를 마치고 본당 2층에 기어 올라갔습니다. 어제처럼 장의자에 누워 다리를 쭉 뻗으며 독백으로 ‘주님 제 형편을 잘 아시지요?’하며 눈을 감으려고 하는데, 내 독백보다 더 단호한 주님의 음성이 마음에 분명하게 들려왔습니다. “나는 네 형편을 모른다!!”
너무나 분명한 책망의 음성에 나는 깜짝 놀라 잠이 확 달아나며 용수철처럼 후다닥 일어나 의자 위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머리카락이 서는 것 같고 놀랍고 두려움으로 그 새벽에 얼마나 회개 기도를 했는지 모릅니다.
“주여! 육신의 피곤 때문에 기도를 쉬어도 봐 주실 줄 알았습니다. 100일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 될 줄 알았습니다. 이 일이 영적인 문제인 줄 몰랐습니다. 주여! 이제 육신을 쳐서 주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기도하겠습니다.”
육신의 생각과 안일주의를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그 새벽에 알게 되었습니다. 100일이 지나도 계속 밤에 울어 대는 아이가 민감한 성격을 가졌다고만 생각했지 그런 형편 가운데서도 기도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몰랐습니다. 영적 소경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아무리 아이가 울어서 몸이 피곤해도 하나님께 전심으로 기도로 나아갔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언제 그랬는가 싶게 깊이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의 요구를 이루어 드리니 주님께서 힘든 환경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또한 둘째 아이 때는 아예 밤에 우는 일이 없이 잘 넘어 가게 하셨습니다. 그날 그 새벽의 사건 이후로는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주님은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