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섬기며| 흑염소 목자_박종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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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며 섬기며
흑염소 목자

< 박종훈 목사, 궁산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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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로서 양을 치는 원리를 창조 세계에서 체득하며
말씀을 더 생생히 깨닫는다  

   친환경 농법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작물을 괴롭히는 온갖 풀들이다. 농부의 관리가 없다면 어떤 농작물도 못 이기는 잡풀을 제거하는 일은 힘든 노동이요 전쟁이다.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풀을 잘 활용하기 위해 흑염소를 사육한지 벌써 삼년이 돼 간다. 세 마리로 시작했는데 이제 한 무리를 이루었다.

   시대가 변해 시골의 지천에 자라는 풀의 가치가 예전과는 다르다. 농경 중심 시대에 조금 넉넉한 집에서는 한우를 사육했었다. 소는 수레도 끌며 쟁기를 채워 논밭을 가는 재산목록 1호이기도 했다. 날마다 일정한 꼴을 먹는 소에게 좋은 풀이 있는 곳을 알아내어 먼저 베는 것을 머슴들의 능력으로 여겼다. 남의 전답을 가리지 않고 풀을 뜯어 가면 토지 주인에게도 이로운 일이었다.

   또 산의 풀들은 땔감으로 사용했다. 그래도 남는 풀들은 거름에 이용했다. 풀을 먹고 난 후 배설한 쇠똥은 쇠똥구리의 먹이였고 이를 운반하는 과정을 관찰하는 것은 아이들의 최고의 놀이였다. 마른 쇠똥은 불놀이용 불쏘시개로도 그만이었다.

 풀을 귀하게 보던 시대는 가고 지금은 무서운 농약을 살포해 없애야 하는 농사의 방해꾼으로 여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생육하고 번성하는 특성은 같지만 오늘날 풀은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나는 흑염소를 키우면서부터 다시 옛날의 가치를 회복하려고 애쓴다. 흑염소는 초식 동물이라 사방의 모든 풀들을 먹는다.

   울타리 뒤로 애써 만들어 놓은 넓은 무궁화 동산이 있다. 길이 잘 들면 이곳에서 방목을 한다. 염소들은 무리 지어 다니는 습성으로 대장 염소가 앞장서면 나머지는 줄줄이 따라서 이동하기에 돌보기가 아주 쉽다. 보통은 목자가 되어 따라 간다

   양이라면 앞장서서 가지만 염소는 뒤에서 몰아가야 한다. 필수 도구는 지팡이다. 약간 경사진 동산이라 대나무 지팡이는 힘이 되기도 하고 필요시 염소를 다스리는 막대기 역할도 한다. 이 지팡이는 천적들로부터 안전히 보호하는 무기도 된다. 염소들이 나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면서도 자신들을 보호해 주는 주인임을 알고 안심하는 것을 보면 경외한다는 말의 의미를 실감한다.

   이로써 성경에 나오는 목동 다윗의 생활을 체험한다. 최고의 시편 중 하나인 23편에서 다윗은 하나님과 자신을 목자와 양의 관계로 아름답게 노래했다. 여러 의미로 이스라엘의 목자였던 다윗의 위대한 능력들이 목동 시절에 훈련됐음을 느낀다. 양치는 현장, 하늘과 땅과 초장이 펼쳐진 창조 세계 속에서 다윗은 신앙과 시심을 길렀고 모든 삶을 신앙적으로 다양하게 표현한 탁월한 시인이 된 것이다.

   그는 양을 노리는 포식자들을 지키며 물맷돌을 던지는 훈련을 했고, 맡은 일에 철저한 책임감을 갖게 되었으며 후에는 훌륭한 지도자로 쓰임 받았다. 또한 양을 치며 한가한 시간에는 수금을 타다가 그 실력을 인정받아 사울 왕에게 음악치료를 해줄 정도가 되었다.

시대와 환경은 다르지만 나도 목자의 심정을 알아가고 있다. 염소들이 흩어져 풀을 먹기 시작하면 나만의 시간이 주어진다. 소나무 그늘 아래서 높은 하늘과 푸른 산,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며 묵상기도를 한다. 목회자로서 양을 치는 원리를 창조 세계에서 체득하며 말씀을 더 생생히 깨닫는다. 요즘엔 기특한 휴대전화로 말씀도 듣고 찬송도 부르며 삶의 여유를 누린다. 예상치 못한 노동의 즐거움을 맘껏 누인다.

   칠 년 동안 동산을 관리하며 힘들고 외로웠지만 이제는 악착같이 타고 올라가는 칡덩굴 종류도 염소들이 제거해 주므로 관리와 사료 획득 면에서 일거양득이다. 마을을 아름답게 하겠다는 의지로 가꾸기 시작한 무궁화 동산이 이제는 흑염소들의 가장 중요한 먹이 공급처가 되었다. 그 동안 수고한 대가를 받는 느낌이다.

   순환 농법이고 가족농으로 적당한 흑염소 사육을 통해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삶의 방식을 알게 되었다. 현실에 맞게 적용한다면 환경오염 방지는 물론 안전하고 건강한 식탁도 책임지리라 여긴다. 부족하나마 시골의 목사이자 흑염소의 목자로서 섬기면서 하나님과 인간, 창조 세계와 성경을 더 깊이 알아 마을의 가치와 내 자신의 유익이 조화롭게 발전되길 바라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