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신앙| 간신과 직언_김현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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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신앙>  

간신과 직언

< 김현일 목사, 증평언약교회 >

 도서관에서 간신을 검색하니 두어 권의 책이 눈에 띤다. 간신은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의 비위를 맞추며 알랑거리는 말을 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지혜롭기도 하고 말도 잘하고 사람을 주도하고 관심을 끄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눈과 귀를 장악한다.

   간신이라도 간혹 국가가 어려울 때 충신으로 불렸다. 그러나 많은 왕들이 이뤄 놓은 평화와 번영은 간신의 탐욕에 의해서 서서히 무너졌다. 그들은 겉으로 나라를 위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자기 이익밖에 모른다. 결국 위대한 왕조차도 간신을 곁에 둠으로 자신의 업적을 역사의 뒤안길로 내던지기 일쑤였다.

   책을 계속 읽자니 간사한 수법을 이용해 보려는 마음이 꿈틀댄다. 잘만 이용하면 사람의 마음을 얻는데 매력적인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현세적 욕망을 추구하는 옛 본성과 간사함은 아주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아니 성공과 번영이라는 목적을 이루려는 사람에게 간사함은 필연인지도 모른다.

   비단 간신만의 문제일까? 부르짖는 사자처럼 포악한 왕들,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눈앞의 탐욕을 채우는 굶주린 늑대 같은 재판장들, 거룩한 삶을 포기하고 율법과 상관없이 사는 제사장들, 그들의 말에 미혹된 백성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이들의 비위를 거스르거나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 누굴까? 그들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은 곧 좌천이고 가난이자 변방의 삶을 의미할 텐데 누가 나서서 그들에게 직언을 하려 할까?

   스바냐 선지자는 하나님을 찾으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지 않겠느냐고 설득한다. 여호와는 의로우셔서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심을 말하는 이유는 공의가 교회의 본분임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매일 뜨는 태양이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신의 공의를 비추시는 하나님께서 계심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확인시켜 준다.

   사람이라면 간신들의 성공을 은근히 부러워하는 욕망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스바냐 선지자는 직언을 계속한다. 우리는 이 역할을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당연하게 여겨야 할까? 그렇지 않다. 스바냐 선지자로 하여금 사자 같은 왕들과 늑대 같은 재판장들의 불의와 거짓을 대항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간사한 선지자들과 거꾸로 율법을 범하는 제사장들의 위선을 반대할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그 대답은 아주 가까이 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