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안만수 목사 소천> 고 안만수 목사님을 추모하며_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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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안만수 목사님을 추모하며 

<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선교목사,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  

 

   한평생 주님과 신앙의 선배님들과 교회와 신학교를 충성스럽게 섬기다가, 그래서 얼마 동안 지쳐 쓰러져 있다가 평안한 모습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자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세상을 떠나 주님 품으로 돌아간 안만수 목사님을 추모하며 몇 자 적어 봅니다.

   안만수 목사님은 의리가 있는 진실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안만수 목사님이 누구보다도 존경하고 따르던 박윤선 목사님과 장경재 목사님에 대한 의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장경재 목사님이 박윤선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존경하고 따랐듯이, 안만수 목사님은 박윤선 목사님과 장경재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존경하며 따랐다고 생각합니다. 안만수 목사님이 편집한 『박윤선과의 만남』 1, 2, 3권의 출판은 대단한 공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140여 명과의 만남과 대담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시간과 정력을 쏟아 부은 힘든 만남과 대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안 목사님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박윤선 목사님께서 한국복음주의협의회를 귀중하게 보시면서 월례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기 때문에 장경재 목사님도 안만수 목사님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장경재 목사님은 한복협 모임에 빠지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안만수 목사님이 한복협의 총무 일을 9년 동안 충실히 수행한 것도 특히 한복협이 벌여온 주일성수 운동을 앞장서서 이끌어온 것도 박윤선 목사님과 장경재 목사님에 대한 의리에서 비롯한 것이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한국 교회 신앙 전통에 대한 충실한 의리에서 비롯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좀 더 폭넓은 한국 교회의 연합 운동을 전개하면서 진보적인 지도자들과의 교제와 협력을 시도했을 때 안만수 목사님이 좋아하지 않은 것도 사실은 하나님 말씀과 정통 신앙에 대한 충실한 의리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합니다.

   안만수 목사님은 맡은 일에 대한 충성과 의리가 두드러졌습니다. 특히 양 무리들을 돌아보는 목회에 대한 충성과 의리는 대단했습니다. 전화를 걸면 언제나 심방 중이었습니다. 안만수 목사님은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소련선교회, 할렐루야축구단후원회,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등 맡은 일이 많았지만 그런 모임들에는 자주 빠지면서도 자기가 맡은 화평교회의 담임목사의 일과 합동신학교의 이사장의 일에는 빠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27년 동안 충성스럽게 섬긴 화평교회는 귀중하고 아름다운 교회로 발전했습니다. 천국환송예배 때 화평교회 권사님들이 눈물로 부른 찬송과 이광태 목사님이 마음을 쏟으면서 전한 설교는 너무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안만수 목사님은 동료 교역자들에 대한 신뢰와 의리가 두드러졌습니다. 화평교회 안에서는 동료 교역자들이 조그만 잘못을 범할 때는 야단을 치는 일도 있었지만 언제나 동료 교역자들 편에 서서 동료 교역자들을 감싸 안곤 했습니다. 후배들에 대한 신뢰와 의리와 칭찬도 두드러졌는데 특히 후임으로 오게 된 후배 교역자들에 대한 신뢰와 칭찬은 대단했습니다.

   안만수 목사님은 계획 세우는 일과 시간 관리에 두드러지게 철저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철저한 준비를 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저는 안만수 목사님과 여러 번 여행을 함께 했는데 제가 철저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형편에 따라서 대강대강’ ‘자유롭게움직일 때는 항상 불안해했습니다. 정해 놓은 시간표대로 움직이자고 강하게 주장을 하곤 했습니다. 세계 어디에 가든지 한국 시간과는 상관없이 현지 새벽 4시 경에는 언제나 일어나서 부스럭거렸습니다. 새벽 기도 시간이라던가? 그래서 룸메이트를 하던 저는 항상 새벽잠을 설치곤 했습니다.

   안만수 목사님은 결국 철저한 의리의 사나이였습니다. 안만수 목사님은 합신 3회 졸업생인 나의 제자였지만 합신 1회 졸업생들인 김종군 목사님과 박범룡 목사님들과 함께 동료 친구들처럼 친하게 지내곤 했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우 만수, 좌 범룡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제가 귀중하게 여기던 김종군 목사님과 박범룡 목사님은 지금 중국에서 나병 환자들과 현지인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선교 사역에 종사하고 있고 안만수 목사님은 주님과 신앙의 선배님들과 교회와 신학교를 충성스럽게 섬기다가 먼저 주님 품으로 갔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박범룡 목사님은 오월에 북한강변을 함께 드라이브 하자고 했는데 먼저 가서 너무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2008310일에 쓴 인생은 즐거워라는 제목의 글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그 다음 날인 37일 금요일 11시 경엔 나의 제자 목사들 다섯 사람이 내 사무실에 찾아왔다. 1년에 한 두 번씩 나를 찾아와서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서 스승이라고 나를 대접하는 제자 목사님들이다. 안만수, 박범룡, 윤석희, 임석영, 박요나 목사님들이다. 퇴촌에도 양평에도 설악산에도 동해에도 가곤 했는데 이번에는 내 사무실에 와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흑염소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내가 좋아하는 흑염소 고기를 대접하는 것이었다. 이것저것 못 다한 이야기들을 흠 없이 나누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란 말도 했다. 스승과 제자들이(사실 이제는 제자들도 아니다. 꼭 같이 늙어가는 동료들이다.) 함께 모여 흠 없이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 즐거운 일이다.”

   저는 지난 며칠 동안 안만수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행20:24 말씀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안만수 목사님은 사도 바울의 뒤를 이어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주님과 신앙의 선배님들과 교회와 신학교를 충성스럽게 섬기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다가 기운이 다해서 세상을 떠나 주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신앙의 선배님들과 함께 하늘 집에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과 존귀와 영광을 세세토록 돌리시고 조만간 반갑게 만나기를 바라고 기다립니다. 유족들과 성도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과 축복을 부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안만수목사영정 앞 김명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