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일본 북해도 졸업여행
– 장로교육원 1기 –
< 오동춘, 화성교회 원로장로 >
2016년 11월 14일 장로교육원 1기생 부부 일행 20명은 대한항공편으로 일본 북해도 치토세 공항에 낮 12시반경 내렸다. 함께 온 정경선 가이드의 안내로 큰 버스에 올라 초겨울에 접어든 조금은 삭막한 도로변 숲 경치를 바라보며 노보리베츠부터 가 보았다. 산길을 좀 올라가니 유황연기 깔리는 지옥계곡이 나왔다. 신기하게 생각하며 사람들이 몰린 곳에 가 보니 온수가 끓어오르는 샘이었다. 유황불이 치솟으니 죄인이 형벌 받을 지옥이 떠올랐다.
전망대로 향하자 자동차 다닐 정도의 큰길이 나오고 그 아래 푸른 호수가 누워있었다. 여기가 지홀동야국립공원이었다. 호수 언덕에는 유황연기가 수증기처럼 하늘로 치솟았다.
우리는 곧 노보리베츠 타키모토판 호텔로 왔다. 온천 중심의 호텔 촌이었다. 웅장한 시설에 놀라며 시원하게 목욕을 마치고 숙소에 쉬면서 정 가이드가 한 말을 떠 올렸다. 알다시피 일본은 시카고, 규슈, 본토, 북해도 네 개의 큰 섬을 비롯 7천 개의 섬을 가진 나라이다. 남북 3,600킬로미터에 면적은 한반도 4배인데 그중 북해도가 전체의 22%이다. 북해도 인구 540만 중 160만이 삿포로에 산다. 면적은 남한땅 8배,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가 겨울이다.
일본 본토와 북해도는 1988년 개통한 해저터널로 왕래한다. 1953년에 착공 38년 만에 개통됐고 지금은 하꼬다떼와 삿포로 간 해저터널 공사가 진행 중인데 2035년에 개통될 예정이다. 북해도 개척은 130년 정도 되었고 원래 아이누 족이 살았는데 메이지유신 때 일본의 통치를 받게 됐다. 아이누 족은 털이 많은 민족으로 현재 2만 명 정도라 한다.
호텔에서 1박한 우리는 아침 9시경 버스에 올라 다데 지다이무라 민속촌에 갔다. 옛날 식 집이 있는 거리를 지나 조그만 극장에 가서 에도 시대 애정극인 오이란 쇼와 시라이성의 우에스가 가문과 코쥬로 가문과의 주도권 싸움 연극을 보고 나왔다. 그 후 이달 시의 쇼화신 산에 갔다. 1943년 12월의 화산폭발로 생긴 화산이다. 300미터 높이의 민둥산인데 당시 삼송정부 일본인 우체국장이 사진을 찍어 그 기록을 상세히 남겼다. 그 공로로 정부 표창도 받았다 한다.
쇼화신 산에서 점심을 마치고 도야호 선착장에 갔다. 호수가 아닌 바다처럼 둘레가 43킬로미터란다. 유람선을 탔는데 정중렬 장로가 선상에서 모두에게 커피 대접을 해 주셨다. 호수 가운데 오시마, 벤젠지, 간논지, 만주지마 등 네 섬이 형제처럼 나란히 있다. 나는 즉흥시 <도야 호수 커피 잔을 들고>를 지어 낭독했다. 순간적인 미적 감동에 모두 손뼉을 쳤다.
하선한 우리는 근처 사이로전망대에 갔다. 바람이 불고 눈이 내렸다. 도야 호수가 시원하게 코앞에 보였다. 갑자기 악천후가 되어 곧 전망대를 떠나 호숫가 도야썬팔레스호텔로 갔다. 아침에 아내와 함께 성경을 읽으며 예배를 드렸다. 식사 후 밖을 나서니 눈보라가 치며 바람은 거칠고 춥다. 눈꽃을 보며 오타루 항구를 향해 달렸다.
정 가이드는 일본의 기독교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다. 일본은 신이 8만개나 있고 임진왜란 때 잡혀 온 도공 심수관, 이삼행을 모신 신사도 있다고 한다. 귀신의 나라 일본엔 기독교가 1%밖에 안 된다고 했다. 이 미신의 나라 일본이야말로 철저히 선교를 해야 할 나라로 생각됐다. 합신 출신 선교사들이 성령의 불을 활활 지펴 속히 일본을 예수 믿는 나라로 바꿔야 할 사명이 큰 것을 알 수 있었다.
오타루 항구는 인구 13만 6천명으로 한때 청어 산지였다 한다. 오타루에 이르자 바닷가 옛날 창고였던 건물이 식당가였다. 옛 창고 안에 있는 한 식당에서 일본식 점심을 먹고 옛 운하의 거리와 시가지를 걸어 보고 상가에 들어 가 보기도 했다.
마지막 코스로 한 시간을 달려 동계올림픽으로 유명한 삿포로 시계탑 앞에 갔다. 삿포로농업학교가 이전하며 남은 20미터 정도의 탑이다. 가이드는 오오리공원을 거닐어 보라 했으나 이미 어둠이 깔린 터라 사양하고 근처 백화점에 가서 주로 약류 선물을 샀다. 마지막 밤은 삿포로 프린스 호텔에서 지냈다. 산이 창밖 가까이에 와 있었다.
17일 귀국하는 날. 조식 후 우리는 북해도 옛 도청에 갔다. 5층 건물 2층에 전시된 옛 자료들. 북해도 역대 도지사 사진, 생활용품, 인근 환경 등을 둘러보고 1888년에 지어 1968년까지 사용한 북해도 도청 청사에 대해 설명을 듣고 나왔다. 옛 도청 뒤에 1968년부터 쓰는 10여 층의 새 도청 건물이 육중하게 서 있었다.
우리는 뜻깊은 졸업여행을 무사히 마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귀국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