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다짐_임용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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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다짐

< 임용민 목사, 새소망교회 >

 

 

“믿음의 대상이신 유일한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중심 두어야”

 

   신년을 맞이하는 성도들의 다짐은 비장하다. 새로운 마음으로 경건 생활을 힘쓰겠다는 결심으로 충만하다. 특별히 새해 벽두는 시간을 써가면서 경건 생활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 되기 위해 기도하고 소원하는 성도들이 더욱 많다.

   각각 약한 부분을 생각하면서 성경을 다시 일독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기도 하며, 예배 생활 회복을 다짐하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기도 생활의 회복을 다짐한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가 하고 있는 다짐과 행동이 옳은 것인지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참으로 영광이 되는가?”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한 방식과 일치하는가? 하나님을 계시하신 성경의 가르침, 즉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실체의 통일성과 위격의 구별성과 분리됨이 없는 신앙생활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 그것이 하나님의 방식과 다른 것이고, 하나님의 뜻과 다르며, 나아가 하나님 그분 자신과 분리된 것이라면 그 자체가 헛된 것이 될 뿐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되 우리의 열심과 노력을 기준으로 돌이키는 방식을 거절해야 한다. 성경을 통해 계시하신 그대로의 하나님을 좇아, 그의 속성과 분리됨이 없이 그를 섬겨야 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일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길이 있는가?

   칼빈은 제네바 요리문답서(1542년)에서 명확하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네 가지 방식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첫째, 하나님을 참되게 신뢰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사도들의 신앙고백을 통해 참되게 신뢰하는 법과 내용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믿는 자에게 중심이 있지 않고 믿음의 대상이 되시는 유일하신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중심이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이 상상한 하나님, 즉 자신의 이성과 경험과 느낌을 통해 산출한 하나님을 믿어서는 안 된다.

   오직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실체의 통일성과 위격의 구별성과 분리됨이 없이 믿는 자에게 복음 안에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제시된 그대로, 성령의 조명하심을 따라 믿어야 한다.

   참된 믿음은 이와 같이 거룩하신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참되게 아는 것과 분리되지 않는다. 이같은 진리를 따라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자체가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하는 것이 된다.

   둘째, 복음과 율법의 바른 이해를 통해, 즉 그분의 뜻에 복종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과 율법의 목적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옳게 이해하여 참된 경건, 즉 두려움, 공경, 신뢰 그리고 복종으로 섬겨야 한다고 가르친다.

   개혁교회는 항상 율법의 세 가지 용도를 설명하여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설명했다. 율법을 통해 우리의 죄악 됨을 알고, 그로 인해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그것에 의존돼야 함을 알게 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법을 택함을 받은 성도에게 유일한 양식이며, 삶의 유일한 규범이 되어 거룩과 영생에 유익이 됨을 알고 즐거워하게 된다.

   복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할 수 없고,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함이 없는 무질서한 복음은 존재할 수 없다. 즉 성도는 항상 복음 안에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순종하며 즐거워한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것을 삶의 양식으로 삼아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삶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존재가 된다.

   셋째, 우리의 모든 곤경 중에서 그분에게 도움을 청하며 그분 안에서 구원과 모든 선을 구하는 기도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를 통해 참된 간구의 내용과 목적에 대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풍성하게 제시되어 있다.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다. 그런데 택함을 받은 성도의 기도가 자신의 욕망과 비례할 뿐 하나님의 영광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다. 자신의 욕망에게 영광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제시하신 그대로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간구와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구해야 한다.

   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구할 때도 우리의 욕망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장 선하시고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맡기는 기도라야 한다. 특별히 우리의 필요를 위해 기도할 때, 일용할 양식, 죄의 용서, 욕망과 죄의 시험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해야 한다.

   우리 자신을 위해 이와 같이 기도하는 것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광에 묶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분은 창조주이시며, 홀로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칼빈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하나님 되심에 적합한 영예로써” 기도를 요구하신다고 설명한다.

   네 번째, 설교와 성례이다. 설교와 성례를 통해서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 그분 자신에 대해 배우고, 그 진리를 실제적인 양식으로 대면하게 된다. 이것을 통해서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에 속한 모든 피조물들과 인간들 중에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 받는 자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일하는 자로 있는 것 같지만, 우리의 일하는 방식은 철저하게 피조물로서 하나님께서 은총을 따라 베푸시는 것들을 받는 방식일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는 단순하게 육체적인 양식을 주는 수준에서 대접하지 않으신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알도록 성경의 기록된 말씀을 설교를 통해 실체와 분리됨이 없이 드러나도록 은총의 수단을 우리에게 제공하신다. 또 성례를 통해서 하나님이 아니면 죄인이 우리는 용납될 수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로 양식을 삼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만나게 하신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받는 자로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어, 이 세상에 양식과 진리의 양식을 주시는 자가 유일하신 성삼위일체 하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영광스럽게 드러낼 수 있게 된다.

   이제 다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 또 다시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제시한 방식과 분리된, 그릇된 자기 열심과 노력으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신년 벽두에 우리는 참되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가 취하고 있는 방식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회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