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특/집|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사 9:1-7)
< 황원하 목사, 대구산성교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중보자이시므로 잉태되고 출생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우리의 죄를 그분의 순결함과 온전한 거룩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가려주신다.”
사도신경에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것과 고난을 받으신 것과 부활하신 것과 승천하신 것과 통치하시는 것과 다시 오시는 것이 들어 있다. 이들 중에서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 살펴보자.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분명하고 정확한 인식이 없으면 이어지는 그분의 일들에 대한 이해가 그릇될 수밖에 없다. 이는 예수님의 신성한 탄생이 그분의 정체와 사역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참으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없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이제 살펴보겠지만, 예수님이 세상의 구원자가 되시려면 그분은 반드시 성령으로 잉태되셔야 하며 반드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은 구원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게 된다. 그렇지만 사람이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태어나는 법이며,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태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과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것’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는 자들
주후 1세기 이후에 나타났던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였다. 그리고 당시의 가현설자들은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으신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이후 종교개혁시대에 나타났던 재세례파 가운데 일부는 예수님이 마리아로부터 인간의 살과 피를 취하셨다는 사실을 부정하였다. 역사적으로 많은 이단들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거부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출생을 부인하였고 그리스도가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신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게다가 어떤 극악한 자들은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를 교묘하게 왜곡하여 사람들을 미혹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신 사실을 고백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전자를 믿으면서 후자를 믿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사도신경에서는 한 조항을 믿지 않으면 다른 조항을 모두 믿지 않는 것이 된다. 특히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지 않으면서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들, 즉 그분의 부활과 승천과 통치와 재림을 믿을 수는 없다. 게다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의 역사성은 제외하고 그 의미만을 받아들이자는 주장도 옳지 않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역사적인 사실이며 그 바탕 위에서 실존적인 의미를 가진다. 분명히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어야만 참된 신자가 될 수 있다.
-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이야기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마태복음 1:18-25와 누가복음 2:1-7에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에는 요셉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이시라는 점이 부각되어 있다(유대인 고려). 하지만 누가복음에는 마리아를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메시아이시라는 점이 부각되어 있다(이방인 고려). 특히 마태는 이사야 7:14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이 동정녀(결혼하지 않은 처녀, 젊은 여자 아님)에게서 태어나실 것이라는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말한다.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을 통하여 임마누엘의 약속이 실현되었다고 본다.
원래 이사야 7:14은 주전 735년 이사야 시대에 아람 왕과 북이스라엘 왕이 연합하여 남유다왕 아하스를 대적하였던 일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에 여호와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아하스에게 징조를 주셨다. 그것은 아하스 집안의 한 처녀가 아이를 낳을 것이며 그 아이가 장성하기 전에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패할 것이라는 징조였다. 이 아이는 아하스의 후계자인 히스기야를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 이러한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님의 탄생에 적용된다. 이것을 이중적 성취 혹은 다중적 성취라고 한다. 이것은 구약에서 일차적으로 성취되었는데, 신약에서 궁극적으로 성취되는 것을 뜻한다.
이후에 이사야는 메시아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보다 자세히 언급한다. 그는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라고 말한다(사 9:2). 그리고 한 아기가 태어날 것에 대하여 말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그는 이어서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라고 말한다(사 9:7).
따라서 구약시대에 임마누엘의 예언이 유다에게 구원의 복음이 되었듯이, 신약시대에 예수님의 탄생이 온 세상에 구원의 복음이 된다. 마태와 누가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될 수 있는 가능성과 동정녀 탄생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하여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그것을 선포하였을 뿐이다. 기독교 신앙은 선포된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지 사건의 이유와 가능성을 따져서 받을지 말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계획과 작정에 따라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음을 믿음으로 인정할 뿐이다.
- 성령으로 잉태되심과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심의 의미
사도신경에서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라는 말로 우리가 고백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아가서 예수님은 왜 성령으로 잉태되셔야 했으며 왜 하필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셔야 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다.
1) 성령으로 잉태되심의 의미
사도신경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어’라는 문구가 지시하는 것은 예수님이 육체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장본인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즉 예수님께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셨다는 것은 성령님이 직접적으로 예수님의 태어나심에 관여하셔서 예수님을 남자의 씨와 실체가 없이 태어나게 하셨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의 육체가 신성의 실체로부터나 성령의 본질로부터 산출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이것은 예수님이 성령의 덕분으로 혹은 성령의 역사로 태어나셨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육신적인 측면은 그분의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이 전혀 없고 오직 그분의 어머니로부터 받아서 형성되었다.
2)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심의 의미
예수님이 다윗 집안의 여인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예수님은 예언들과 약속들에 따라서 다윗의 씨로 태어나셔야 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사 7:14). 특히 예수님은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심으로 예언을 완전히 성취하셨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3) 동정녀 탄생의 결과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심으로 다음과 같은 결과가 발생하였다. 이 결과는 모두 예수님이 구원자의 자격을 갖추셨다는 점과 연관된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으로서 죄가 없으시기에 하나님의 공의를 온전히 충족시켜 드릴 수 있다.
- 동정녀 탄생의 의미
1)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이시다.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은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시며, 여전히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으로서, 동정녀 마리아의 살과 피로부터 참된 인성을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취하셨다. 예수님은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참되고 완전한 사람이시다.
예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성부 하나님과 동등한 권한과 지위를 가지고 계신다. 또한 예수님은 사람으로서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가지고 계신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롬 9:5).
2) 예수님은 거룩하시며 죄가 없으시다.
만일 예수님이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태어나셨더라면 그분에게는 모든 인류가 가지는 원죄가 있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가지며 이후에 자범죄를 짓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남자의 도움 없이 오로지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기 때문에 아담의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동정녀의 뱃속에서 거룩하게 되셨고 따라서 순결하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부모에게 연결하는 죄악의 끈을 예수님께 대하여서 끊어버리셨다. 이후에도 예수님은 죄를 전혀 짓지 않으셨다. 예수님께는 죄가 전혀 없으시기에 그분은 죄인을 구원하시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시다.
3) 예수님은 사람이시므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신다.
예수님은 다윗의 참된 자손이 되시고 모든 일에서 그분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 시편 132:11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하지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왕위에 둘지라.” 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롬 1:3). 특히 히브리서 4:15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은 약속된 다윗의 자손으로 우리를 다스리시며 동시에 우리의 진정한 형제로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불쌍히 여겨 주신다.
마치는 말
그리스도의 거룩한 잉태와 탄생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가? 그것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중보자이시므로 잉태되고 출생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우리의 죄를 그분의 순결함과 온전한 거룩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가려준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가려주시되 우리가 잉태되고 출생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죄를 가려주신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죄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아담이 범죄함으로 모든 인류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다윗은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시 51:5).
그러나 우리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기 때문에 원죄를 가지고 있지 않으시다. 그러한 분께서 그분의 순결함과 온전한 거룩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가려주신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습을 보지 않으시고 우리를 가리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시면서 그리스도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받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신뢰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의지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받으시기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