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거룩한 삼위일체 이해_배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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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거룩한 삼위일체 이해

<배현주 목사, 주교개혁장로교회>

 

 

웨신은 간결하지만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 가장 분명하게 진술하고 있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장 3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신성의 통일성 안에 하나의 본체, 권능 그리고 영원성의 세 위격으로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계신다.”

이어서 각 위격의 고유성에 대하여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이렇게 진술한다. “성부는 어느 누구로부터도 나시거나 나오시지 않는다. 성자는 영원히 성부로부터 나신다. 성령은 영원히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 이처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간결하게 삼위일체 교리를 담고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가장 분명한 진술을 하고 있다.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성의 통일성은 이미 앞의 두 절에서 다루었다.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이 하나라는 것과 그것이 다양한 진술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제2장 3절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위격의 관계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성부는 어느 누구로부터도 나시거나 나오시지 않는다. 성자는 영원히 성부로부터 나신다. 성령은 영원히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

이러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진술을 따라서 볼 때 항상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위격적 관계는 그러한 순서로 표현되며 다른 순서는 불가하다. 그렇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 위격 상호간에 질서의 순서가 있다. 항상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계신다. 그러나 이것은 삼위일체 본질의 차이는 아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저서 삼위일체론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우연성에 관한 말은 없으며 오직 본질과 관계에 대한 말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변하시는 것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모든 말이 그의 본질에 관한 말이 아닌 것은 하나님의 세 위격의 관계에 대한 말 때문이다. 곧 성자에 대한 성부의 관계나 성부에 대한 성자의 관계가 있다.

이 관계에 대한 말은 우연성에 대한 말이 아니다. 한편은 항상 성부이시고 한 편은 항상 성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아들을 낳으셨다.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나셨다”는 표현은 삼위일체 상호간에 관계에 관한 표현이다. 오직 아들이 있기에 아버지를 성부라 부르고 아들도 오직 아버지가 있기에 성자라 불린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삼위일체 본질에 대한 표현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표현이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성호들은 우연성에 대한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부로 불리는 분이나 성자로 불리는 분은 그 자신이 영원하며 변하심이 없기 때문이다.

17세기 개혁주의 신학자 헨리쿠스 알팅(Henricus Alting)은 그의 신학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서 진술하였다.

“아버지는 삼위일체 신성의 첫 위격이시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발생하신 신성의 두 번째 위격이시다. 아들은 피조된 것으로 진술되지 않는다. 오히려 만물이 그 자신을 통하여서 피조되었다. 성령은 신성의 세 번째 위격이시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발출하신다. 성령은 피조되었거나 생명이 없으신 분이 아니시다.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성령은 하나님의 영, 혹은 아버지 하나님의 영, 혹은 여호와의 영,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불리운다. 신성의 세 위격으로서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은 모두 전 신성이 본질에 있어서 하나이며 동등하시다.”

이러한 헨리쿠스 알팅의 신학 저서의 진술은 고대 교부 아타나시우스의 신조(Athanisan Creed)로 알려진 그 신조의 교리적 입장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거룩한 아버지이신 한 위격이 계시고, 거룩한 아들이신 다른 한 위격이 계시며 거룩한 영이신 다른 한 위격이 계신다. 그러니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신성은 모두 하나이시다. 그 영광이 동등하시고 그 엄위하심이 함께 영원하시다.” 이러한 교리적 입장은 삼위일체에 대한 매우 정통적인 견해이다.

요하네스 하이데커는 [기독교 신학 통론]에서 다음과 같이 삼위일체론을 전개한다.

“삼위일체 안에 각 위격 상호간에 질서의 구별이 있다. 아버지는 첫 번째, 아들은 두 번째 그리고 성령은 세 번째에 위치하신다.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만물에 행하시는 내적인 사역의 방식이 있다. 아버지는 아들과 성령을 통하여서 역사하신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통하여서 일하신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일하신다.”

프란시스 고마루스(Franciscus Gomarus)도 그의 신학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삼위일체론을 전개하였다.

“삼위일체 위격의 상호 관계에 있어서 아버지는 신성의 근원이시다. 성 삼위일체 하나님의 첫 위격이신 아버지는 그의 영원한 신적 본질을 통하여서 오직 독생자를 낳으셨다. 삼위일체 관계에 있어서 아들은 성 삼위일체 하나님의 두 번째 위격이시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발생하셨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또한 성령과 함께) 하나이시다. 성령은 세 번째 위격이시다. 영원한 신적 본질을 통하여서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교통하신다.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성령은 하나이시다. 성령은 위격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에 대하여서 작지 않으시다.”

종교 개혁 시대에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이러한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진술은 정통 신학의 시금석이다. 성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개혁주의 정통 교리는 고대 정통 교부들의 신학을 재정립한 그대로이다.

1647년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결정된 신앙고백서 제2장 제3절의 삼위일체 교리는 개혁주의 정통 삼위일체 교리를 그대로 받아서 간결하게 진술한 것이다.